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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껍질 Aug 07. 2024

갑자기 팜플랫을 만들라니요?

엄마의 집짓기




천안 광덕산 호두마을에는 ‘시안 CYAN'이 있다. '엄마의 집짓기'의 주인공이자, 작년부터 짓기 시작해서 올해 준공허가를 받은 신축을 시안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시안 CYAN은 파란색이자 초안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호두마을은 온통 산과 숲으로 둘러싸여 봄여름 내내 초록으로 물든다. 이런 초록 숲과 대비되면서 또 닮은 바다와 파도의 이미지를 주고자 했다. 또한 초심, 시작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시안의 저녁 풍경 (마침 엄청 파랬던 하늘!)

브랜드의 슬로건은 “예술적으로 쉬다”라고 했다. 잠도 잘자면 예술이라는, 지인의 말에서 인사이트를 얻었다. 내부에 전시된 예술작품과 집을 둘러싼 자연으로 둘러싸여 감도 높은 쉼을 만끽하도록 하고 싶다는 바람을 담았다.


앞으로 시안의 성장 과정을 기록하려 한다. 어떤 브랜드로 성장할지 여정을 함께하며 응원해 주시길 바라며, 처음 가본 길이라 때로는 대담하고, 그러다가 아주 조심스럽기도 할 도전들을 공유할 예정이다.




시안을 둘러싼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샘솟고 있다. 그림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갤러리, 스테이/워크숍/브라이덜샤워/스몰웨딩 등 장소 대여, 공방에서 진행하는 만들기 클래스, 시안만의 제품 제작... 이 모든 생각들을 하나씩 실행해 보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도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재미있는 일이다.


시작부터 열정은 가득하고 방법은 모르는 초심자다운 실수가 있었다. 너무 많은 아이디어들을 한 번에 진행하려는 욕심을 부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백그라운드에 다양한 창을 띄워놓은 휴대폰처럼 가만히 있어도 방전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한 번에 하나씩 하자! 굳은 다짐을 하고 부모님께도 우선순위를 정하자고 했다.


고민 끝에 가장 먼저는 팜플랫을 만들기로 했다. 요즘 부모님은 갤러리 사업을 준비하며 작가분들을 만나 시안을 소개할 일이 부쩍 많아졌다. 이때 말로 전달하기보다 멋지게 내놓을 수 있는 소개자료가 필요했다. 공간이 궁금해서 물어오는 지인들에게 주기에도 딱이었다.




Ch 1. 아이디어들


"실제 엄마가 원하는 팜플랫 초안을 그려 주면 좋겠어, 종이로 만들어줘도 좋고"라는 말을 하고 이틀 뒤에, 엄마는 자그마한 팜플랫 초안을 보여줬다. 손바닥만 한 작고, 귀여운 팜플랫이었다. 실물을 놓고 보니 훨씬 생각이 말랑말랑 해지는 느낌이었다.


"첫 표지와 이걸 열었을 때 뒷장의 색 차이가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 “라는 말에 앞장을 하늘색 뒷장을 진파랑으로 색의 차이를 두기로 했다.

앞 장이 뒷장보다 폭이 좁아, 접으면 뒷장이 조금 보인다.


“뒷면에는 초록색 잔디 같은 이미지의 일러스트가 있으면 좋겠어"라는 엄마의 제안에 ”‘똑똑 초록입니다.’라는 인사말을 덧붙이는 건 어때? “라는 나의 피드백이 더해져서 초안이 잡히기 시작했다.

뒷면 아이디에이션 중!
당시 카톡한 내용


그렇게 창의적이고, 뻔하지 않고 , 재밌는 팜플랫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물론 정보 전달도 중요했다. 브랜드 소개, 공간 그림과 사진,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까지 알뜰하게 담아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시안 공간에 대한 설명 구상


Ch 2. 초안


고심 끝에 두 가지 안이 나왔다. 시안 하우스와 갤러리를 일러스트로 표현한 것이 1안이다. 사진을 사용한 것이 2안이다.


1안


2안



Ch.3 최종안


2안은 산만한 느낌이라 1안의 일러스트를 가져가기로 했다. 하지만 1안을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브랜드 소개, 공간 소개도 넣어야 했기 때문에 수정이 필요했다.


브랜드 스토리와 슬로건 배경에는 광덕산의 자연을 담고 싶었다. 고민 끝에 광덕산의 풀숲을 뛰어가는 사진을 골랐다. 두 페이지에 걸쳐 있던 공간 소개와 시안 갤러&하우스의 일러스트를 한 페이지로 모으고, 소개글과 상세 사진을 마지막 페이지에 추가했다.


야무지게 오는 길을 안내하는 지도까지 넣은 팜플랫 최종안의 모습이다.

겉면!
안쪽면!



Ch.4 인쇄


대량 인쇄를 맡기기 전에, 최종안으로 2번의 샘플을 만들어봤다. 먼저, A4 용지에 프린트했다. 가까운 프린트 카페에서 칼러 프린트를 하고 잘라서 앞뒤면을 겹쳐서 붙였다. 이때 사이즈를 세로 12cm로 작게 했는데, 개인적으로 손에 쏙 쥐어지는 게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너무 작다는 부모님의 피드백이 있었다.


두 번째 샘플 파일은 인쇄소에 의뢰했다. 1장만 맡기니 장당 단가가 매우 높아졌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사이즈를 가로 10cm 세로 16cm 키워서 조정해 보았다.


고민 끝에 최최종안은 가로를 1cm 줄여서 가로  9cm X 세로 16cm로 제작했다. 종이는 이전에 스노우지 180g을 사용했고, 양면 무광코팅을 넣었다. 깔끔하게 접어주는 오시접지도 부가서비스도 같이 의뢰하기로 했다.


주문 화면 (태산인디고)


"자 이제 주문한다!" 1,000장을 주문하려니, 약간의 용기가 필요해서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마지막 선포를 했다. 그리고 결제 완료. 이제 팜플랫 제작의 대장정이 끝났다. 다음날 인쇄소에서 수정 연락만 오지 않으면, 픽업만이 남았다.




Ch5. 제품 수령과 배송


바로 사일 뒤인 작가분들의 미팅 전에 받아보고 싶다는 게 엄마의 요청이었다. 촉박하다고 툴툴대면서도, 짠! 하고 원하는 시점에 받을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제작과 배송까지 다소 빡빡한 일정을 가져갔다.


월요일에 최종 파일의 가제본을 받아보고, 그날 저녁에 수정사항을 반영한 최종본을 맡겨서 화요일 중에 우체국에서 익일배송으로 붙이는 계획을 세웠다. 수요일에 천안에서 부모님이 수령하고, 목요일에 따끈한 팜플랫을 들고 미팅을 하는 야심 찬 구상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예상치 못한 변수들 투성이었다. 3단 팜플랫을 만들 때 일부러 페이지 간격을 같게 하지 않고, 뒷면의 색이 보이게 가로길이의 차이를 두었다. 그래서 파일이 잘못된 줄 알고 종이를 접어주는 오지와 접지 과정이 늦어졌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완성된 팜플랫을 붙이려고 했었던 계획이 틀어졌다. 어쩔 수 없었다.


우체국에 통화해 보니 5시 30분에 배송차가 떠난다고 했다. 5시 30분이 넘으면 다음날로 넘어가서, 가장 빠른 익일 배송으로 보내도 모래 도착이었다. 일단 퇴근하자마자 냅다 인쇄소로 뛰었다.


그런데 인쇄물을 찾아서 박스를 드는데 정말, 정말, 정말 무거웠다. 180그램의 종이로 된 팜플랫이 1000개였다. ‘종이가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겠어?’하며 가방에 노트북까지 야무지게 챙겨 온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곳 6시, 우체국이 닫을 시간이었다.


말 그대로 낑낑, 박스를 들고 우체국을 갔다. 박스를 뜯어서 안에 있는 팜플랫 다발을 한 개 꺼내고 나머지는 다시 동봉해서 후다닥 택배로 붙였다. 정신이 쏙 빠질 것 같은 시간들이었다.




후들후들 떨리는 팔로 저녁을 먹으며 뭐든, 처음 하는 일을 빨리 하려면 좌충우돌이 2배는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완성된 팜플랫을 보면서, 뿌듯함과 아쉬운 마음이 동시에 밀려왔다. 귀엽고 따뜻한 느낌을 주려고 한 일러스트와 손 글씨는 원하는 딱 그대로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무광 코팅을 하니 흠집은 왜 이리 잘 보이는지, 갤러리의 세련되고 모던한 더 느낌을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여러 질문들이 들었다.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항상 동경해 왔던, 디자이너와 제작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 본 값진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 추가 인쇄를 할 때는 어떻게 수정해 볼까,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까,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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