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로폼으로 만든 나만의 집

엄마의 집짓기

by 귤껍질

"여기 두고 갈 테니 꼭 이렇게 지어주세요."


퇴직하면 자신만의 공방을 만들고 싶다는 엄마의 말에, “좋지, 엄마 하고 싶은 대로 해”라며 가족 모두가 응원해 줬다. 처음에는 건축의 골조를 세우는 일을 하시는 외삼촌에게 컨테이너 하나 얻어서 가져다 놓으시려나 보다 하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보니 마당에 제대로 된 집 한 채가 지어지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생각해 보니, 바로 떠오르는 사건이 있었다. 엄마가 만든 스티로폼 집이다.


붓글씨, 도자기, 재봉 등등 미술을 전공한 엄마는 퇴근 후 시간이 남으면 항상 뭔가를 열심히 만들었다. 재주꾼 손이라는 엄지발가락을 닮은 엄지손은 엄마의 콤플렉스였지만, 엄마같이 맨날 뭔가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그런 손을 가져야 할까 싶었다.

엄마가 만든 휴지곽, 노트북 파우치, 엄마의 재봉틀
엄마가 만든 도자기와 지갑들

어느 날은 아침에 일어났는데 스티로폼으로 된 집이 책상에 놓여 있었다. 엄마에게 물으니 친구 집에서 한참 퇴직 후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와서 새벽 다섯 시까지 만들었다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 스티로폼이 진짜 집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뭐든 뚝딱 만들어 내는 엄마답다고 생각했고, 집에 오는 손님마다 장난감 같은 집을 구경하고 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서울대 건축학과를 다니고 있는 엄마 친구 아들이 집에 구경하러 왔을 때는 건축에 대해 일도 모르는 친구 엄마가 지은 집이 그 아이에게 어떻게 비칠지 궁금하기도 했다.

스티로폼 집 '요요407' (가명)
집의 뒷면 (30도 회전 전)

하지만 엄마의 행동력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퇴직한 그해 여름, 엄마는 스티로폼 집을 들고 건축설계사 사무소를 찾아갔다.


건축설계사의 사무소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을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함께 가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무슨 집을 짓고 싶은지 매일매일 말하던 소녀 같은 엄마의 모습을 알기 때문에 상상이 저절로 되었다. 어떻게 공방과 갤러리를 구분하고, 1층과 2층을 어떤 색의 계단으로 연결할 것인지, 집에 들어왔을 때 어떠한 느낌을 주고 싶고 그러기 위해 핀터레스트에서 봐 둔 참고 사진들은 무엇인지 눈을 반짝이며 말했을 모습이 지금도 잘 그려진다.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나올 때 스티로폼 집을 설계사무소에 두고 나오며, “여기 두고 갈 테니, 그대로 만들어 주세요.” 했다고 말해주시는데, 그런 엄마를 보고 사무소 분들이 얼마나 당황스럽고 재밌었을지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엄마 그때 그 스티로폼 집 어디에 있지?” 라도 물으니 창고 한구석에 모셔놨다고 했다. 사진 찍어야 하니 꺼내달라는 말에 엄마가 들고 온 집은 기억에서보다 훨씬 귀엽고 깜찍했다.


내부에 장식한 비즈와 그림들
강아지 가족 사진

“식탁에 비즈까지 붙인 것 봐”라면서 어릴 적 놀던 장난감을 오랜만에 들여다보듯이, 그때의 즐거움이 생각이 난다는 표정으로 엄마가 말했다. “강아지 가족사진도 그려놨어.” 라며 자신이 만든 집을 새롭게 들여다보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근데 처음에는 이 정도로 본격적으로 집을 짓겠다는 건 아니었잖아?”라고 물어봤다.


“집을 짓다 보니 제대로 짓는 게 났겠다 싶었어. 너희 생각해서 그런 게 크지. 다음 세대도 이 자연을 누릴 수 있도록. 엄마아빠가 집 지으면서 너희들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하는 줄 알아 “라는 답변에서 하고 싶은 일을 좇아 귀농한 줄 알았는데, 부모의 사랑은 생각보다 크다는 걸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부모님이 꿈꾸는 미래에는 나와 동생이 내내 있다는 건 놀랍다기보다 알고 있었던 걸 다시 한번 새롭게 곱씹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부모가 모르는 자식의 모습들이 있듯이, 자식도 살면서 종종 부모님의 의외의 모습들을 마주하게 된다. 나만의 것을 하겠다고, 내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하는 건 나였는데 나보다 먼저 엄마가 창업하게 되었다.


이해 안 되던 엄마의 모습들도 있지만, 요새는 나의 많은 부분이 엄마에게서 왔다는 걸 발견한다. 호기심 많고, 뭐든 해보자, 하고, 하고 싶으면 그냥 질러버리는 성격, 그래서 대책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 등 내 성격이 어디에서 왔나, 누굴 닮았나 발견하고 있는 요즘이다.


그 스티로폼 집은 이층이 30도 정도 틀어진 것과 시멘트보다 비용이 좀 더 저렴한 H빔 철골을 사용하면서 공간 사용에 제약이 조금 생기는 변화의 과정을 겪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거의 최초의 형태를 유지하고 진짜 집이 되고 있다.


“그땐 그랬지” 하며 우당탕탕했던 옛날이야기를 하는 건 언제나 즐겁다. 너무나 엄마다웠던 집 짓기의 첫 시작을 돌아보면서 즐거웠던 지금 또한 나중에 그때 참 좋았지 하고 돌아볼 수 있는 순간이 되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계속되고 있는 집 짓기의 순간들은 다른 글을 통해 더 담아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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