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현장 속 숨은 낭만

엄마의 집짓기

by 귤껍질


"딸, 지금 무지개 떴어? 서울에서는 안 보이지?"


부모님이랑 좋았던 시간도 잠시, 서울로 돌아오고 부모님과 작은 이유로 싸워서 서로 삐져 있었는데 갑자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보다 짧게 3번 정도 신호음이 가고 끊긴 전화를 다시 걸어서, "왜 무슨 일인데?" 하니 무지개가 떴다고 그래서 딸 생각이 났다고 했다. 싸운 기억이 사르르르 없어졌다. 영상통화 거는 법이 익숙지 않아 해서 잠시만, 하고 카톡으로 영상통화를 거니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예쁜 무지개를 보여주셨다.


평소 수도 없이 해지고 해가 뜨는 모습을 봤던 그 풍경 속에 무지개 하나가 그림처럼 걸려 있었다. 천안집 테라스에서 보는 하늘은 언제 보아도 눈에 걸리는 것 없이 광활하고, 탁 트여 멋졌는데 무지개까지 있으니까 너무 예뻤다.


건축 현장이라고 하면, 기계나 철골이 떠오르고 뭔가 미완성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도 연상되는데 이렇게 곳곳에 낭만이 숨어 있어서 엄마아빠가 몸은 지쳐도 기분은 좋아 보였던 거였구나 싶었다.


건축중인 집과 그 뒤의 무지개


이외에도 시골에서 집 짓기의 매력은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으로 아빠가 구워주는 고구마도 건축 현장에서 구워 먹으니 더 낭만이 있었다. 토대를 올리기 전에 땅을 다지기 위해 정원이 있던 곳을 다 뒤집어엎었다. 드러난 맨 땅 위에 건축 아저씨들이 겨울 추위를 피하기 위해 불을 피워놓았었다. 그곳에 고구마를 은박지로 돌돌 말아 넣고 구워 먹으니 세상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곧 맛있게 구워질 고구마들
불멍하기 딱이죠?


또 상대적으로 작은 건축물인 만큼 구석구석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바구니로 쓰이고 있는 건축 모자 같은 걸 발견하면 귀엽기도 하고, 색다르기도 했다.

초록 배경과 대비되는 빨간 작업 모자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동네 주민들의 모임 장소! 시골은 어디든 의자를 놓고, 커피랑 간단한 다과만 가져다 놓으면 이야기보따리를 풀며 쉬기에 딱인 장소가 만들어진다. 사람들이 없을 때는 혼자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기에도 정말 좋다.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처럼 놓아져있는 의자들


음식도 빼놓을 수 없는데, 건축물 사진 사이에 숨어있던 완두콩 사진을 발견했다. 중간중간 식사 대신 또는 새참으로 먹는 이런 음식들도 시골 건축의 묘미인 것 같다.

아직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완두콩들


아빠가 만들어주는 블루베리 베이스의 건강 주스는 건축으로 바빠진 뒤에도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견과류가 잔뜩 씹히고, 딸의 건강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만큼 온갖 건강한 것들이 차고 넘치게 들어있는 주스가 부담스러웠는데 먹다 보니 그 고소하고 달달한 맛에 익숙해져 버렸다.

아빠표 블루베리 주스


서울에서 본 건축 현장은 횟빛이 도는 조금 무서운 느낌이었는데, 시골에서 마주한 우리집 짓기 현장은 따뜻하고 낭만적인 구석이 있었다.


물론 나는 부모님처럼 적합한 사람을 찾아 컨택하고 일정을 조율하고, 비용을 협상하는 복잡한 일들을 직접 수행하지 않아서 더 평화롭게 느껴졌을 수 있다. 하지만 부모님도 이런 일상 속 소소한 순간들에서 집 짓기라는 어려운 과제를 해나갈 에너지를 얻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D

keyword
이전 01화천안에서 서울로 오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