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집짓기
“엄마아빠만 건강하게 먹는 것 같아서, 밥 할 때마다 딸들 생각이 나. 밥은 잘 먹고 있나. 딸들은 불량식품 먹고 있는데 우리만 건강하게 먹고 있는 건 아닌가 해서. “
엄마는 서울에 남은 우리 둘의 식사가 제일 걱정이라고 했다. 엄마의 걱정만큼, 좋은 건 딸들도 먹이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만큼 부모님의 천안 생활은 서울의 식사에도 영향을 줬다.
계절마다, 광덕산에서 서울로 오는 것들이 있다. 봄에는 광덕산 골짜기에서 구한 고로쇠 물과 칡즙, 늦여름에는 다래와 오디 같은 마트에서는 팔지 않는 열매들이, 가을에는 마당에서 제멋대로 자란 농작물과 감, 호두가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함께 왔다.
그중에는 직접 키운 농작물도 있었다. 옆집 가지는 쭉쭉 예쁘게 컸는데, 우리 집 가지는 똘똘 말려 도넛처럼 생긴 걸 보면 바로 옆 땅인데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밌었다. 분명히 못생기고 맛없어 보이지만 왠지 정겨워서 맛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멜론만 한 참외와 콩만 한 자두도 있었는데 어떻게 키워야 저렇게 제멋대로 자라나 싶었지만 아주 귀여웠다.
올해는 특별한 메뉴가 추가되었는데, 바로 쑥떡이다. 부모님이 농약도 없고, 자동차 매연도 없는 산속에서 봄 쑥을 뜯어서 쑥떡을 만들어 줬는데 엄청나게 맛있었다. 맛있는데 건강하기까지 하니 죄책감 없이 술술 들어가서 앉은자리에서 다섯 개 정도는 가뿐하게 비웠다.
뭐든 잘 먹는 큰딸이지만, 정성스럽게 만든 야심작을 정말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던 것 같다. 엄마는 “너희 아빠가 저렇게 잘 먹는데, 큰딸 줄 쑥떡 또 만들어야 한다고, 지금 아니면 여린 쑥 못 캔다고 성화여서 피곤해 죽겠는데도 같이 또 산 깊은 골짜기까지 가서 따 왔어.” 라며 아빠가 아주 적극적이었다고 했다.
두 분이 열심히 따 온 쑥은 물에 몇 번을 삶고 나서도 비닐 세 봉지를 거뜬하게 채울 정도로 많았다. 따온 쑥은 그대로는 못쓰고 여러 번 삶고 물을 짠 뒤, 방앗간에서 가루로 빻아 떡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쑥을 세네 번 삶고 물을 짜서 보관하는 단계만 부모님과 같이 해봤는데, 이 하나의 과정도 손이 꽤 가서 역시 음식은 정성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돌아온 서울에서 매일 아침 쑥 떡 두 개와 엄마가 만들어준 요거트를 먹고 출근하는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떡은 금방 다 먹었고, 엄마가 새로 만든 떡과 함께 서울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서울에서 온 엄마에게 쑥떡은 잘 만들어지고 있냐고 했더니 잔뜩 풀이 죽어서 문제가 생겼단다.
“쑥떡을 맡겼는데, 쑥 가래떡을 줬어. 상자를 열었는데 가래떡이 있는 거야. 순간 너무 당황해서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고. “ 라며 그때의 당황스러움이 생각나는 듯 황망한 표정으로 말하는 엄마를 보니, 고맙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가래떡도 좋아한다며, 뭐 그리 당황했냐고 하자, “아니 우리 딸이 좋아하는 건 쑥떡인데, 저번이랑 똑같이 해주세요 했는데 가래떡을 뽑아줬지 뭐야.” 라며 속상해했다.
서울로 올라온 소박하고 다소 못생긴 음식들 뒤에 딸들 주겠다고 산도 오르고, 재료를 씻고 다듬고, 상하지 않게 잘 보관해서 가져오는 정성이 있다는 걸 알아버리니 그 뒤로부터 더 고맙게 느껴졌다. 계절이 바뀌는 건 날씨가 달라지고 입는 옷이 바뀌는 일이었는데, 이제는 천안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음식들이 변하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다음 해에는 또 어떤 먹거리를 만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