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줄(별 걸 다 줄인다)'의 영향으로 수많은 줄임말이 나왔지만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없지 않을까? 여기서 한걸음 더 물러선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가 2025년 대한민국 트렌드를 이끌 단어로 선정되었다(by 트렌드 코리아 2025).
너무 행복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불행하지도 않은 그냥 보통의 오늘. 무난하고 무탈하고 안온하게 보낼 수 있으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말한다.
좋은 기회로 참석한 ‘트렌드 코리아 2025’의 공저자 전미영 교수의 강연에서 이 단어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은 최인철 교수의 ‘아주 보통의 행복’이란 말이 좋아서 키워드를 ‘아보행’으로 하려고 했는데, 젊은 연구원들이 요즘 MZ세대들은 ‘행복’을 꿈꾸지 않는다며 극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아니 왜? 행복하면 좋은 거 아냐?” 했는데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남에게 인정받는 행복’을 지양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만족하는 행복을 추구하려고 감사 일기를 쓰고, 필사를 하며, 달리기를 하는 것이라고. SNS에 올려서 모두의 부러움을 살 수 있는 샤넬 백이나 샤넬 립스틱이 아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나에게 만족을 주는 ‘비싸고 좋은 치약’이 바로 ‘아보하’를 만드는 것이었다.
선물 받은 MARVIS 치약. 나의 아보하는 이미 진행중이었나? 관점을 바꿔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다. 내가 어떨 때 기분이 좋고 행복한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말 별 거 아니다.
* 아이들과 꼭 껴안고 서로 뽀뽀공격하기
* 단골 가게에서 포장해 온 즉석떡볶이를 야끼만두(빠지면 안 된다)와 함께 먹기
* 조용한 곳에서 방해받지 않고 읽고 싶었던 책들 쌓아두고 읽기
* 애정하는 배우의 목소리로 좋아하는 뮤지컬 넘버 듣기
* 유머게시판 보면서 낄낄거리기...
너무나 소소하고 개인적이라 남들이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고, 딱히 공감을 바라지도 않는 나만의 행복들. 그런데도 나는 ‘로또 일등 당첨’, ‘서울 신축 자가 보유’와 같은 허황되고 물질적인 만족을 이루어야 행복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가족 중에 특별히 아픈 사람 없고, 늦지 않게 회사에 출근하고, 별 일 없이 근무하고, 아이들도 무사히 학교와 학원에 갔다면 이미 나에게 오늘 하루는 보통 이상이다. 집에 무사히 귀가하고, 집안일을 마치고도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은 기력과 여유까지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아, 이게 ‘아보하’ 구나!
사소한 기쁨과 만족이 모여 행복이 된다.
보통의 날(日)들이 쌓여 보통의 달(月)이 되고, 보통의 해(年)가 된다.
2024년의 나의 나날들은 큰 사건사고 없이 무난했고, 계획했던 일들도 100%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대략 반보다는 조금 더 많이 해냈다. 그럼 대충 보통은 되는 것이니, 나에게 2024년은 ‘아보해’가 맞다.
연말이 되니까 자꾸 이렇게 한 해를 돌아보고 내년을 기대하는 글을 쓰게 되는 것 같다. 올 해보단 조금 더 멋진 나로 살아야지. 어느 누구에게도 아닌 2025년 12월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일 년을 보내고 싶다.
조금 덜 세속적이고 조금 더 긍정적인 행복을 좇으며 ‘아보하’의 소중함을 아는 나인채로.
*썸네일 사진출처 : 교보문고 '트렌드 코리아 2025' 북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