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스텔라 Nov 18. 2024

연극 비명자들 3막-나무가 있다 리뷰

직장인의 가성비 문화생활 5편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브런치에 올린 '직장인의 가성비 문화생활'을 보고 연극에 초대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다. 글을 써서 무언가를 받아본 것이 처음이라 내가 정말 '작가'가 된 것만 같은 우쭐함을 안고 대학로 예술극장으로 향했다.


 '비명자들 3막-나무가 있다'. 그럼 1막이랑 2막도 있었나? 초대해 주신 분이 친절하게도 모바일 프로그램북과 관련 자료를 이메일로 보내주셨다. 앞선 비명자들 2막과 1막을 보지 않았기에(이 연극은 특이하게 2막이 먼저 오르고 프리퀄 형식의 1막이 이 년 뒤에 발표되었다) 더 꼼꼼하게 자료를 확인하고 갔다. 인터미션 없이 두 시간이 넘게 이어지는 긴 공연 시간 동안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 봐 염려가 되어서였다.

일단 두 명은 꼭 알고 봐야 한다. 박요한과 이보현. 요한은 아예 3막에는 등장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비명자들' 삼부작의 핵심 인물이다. 보현은 비명자들에 대한 대책을 연구하다 비명자가 되어버린 사람이다. 이들의 행적과 현재 상황을 알고 있어야 '비명자들 3막'을 이해할 수 있다. 다른 등장인물들도 알고 보면 좋겠지만 극을 보면서 알아가도 무리는 없다. '고통'과 그것을 견디는 '수행'의 과정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불교용어가 나오는데 이것은 어차피 읽고 가도 기억하기 어렵기 때문에 패스해도 좋다.

 극의 분위기는 밝지 않다. 밝을 수가 없다. 증오, 학살, 갈망, 혐오.. 극의 핵심 키워드로 먼저 떠오르는 것들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가득하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보면서 내내 마음이 아팠다. 비명자들은 왜 비명자가 되었어야 했을까. 그들이 가지고 있는 표현할 수 없는 아픔과 견딜 수 없는 슬픔이 그들 스스로를 '비명'이란 틀에 가둘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닐까?

조금은 불친절한 연극이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으나 이를 연극에 다 담아내기는 어려웠을 테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 연극을 보고 공부를 해야 한다. 더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만연한 혐오와 그 사실을, 외면이 아니라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그 아픔을 알고, 공감하고, 진심으로 애도할 수 있다. 다행히 내가 아니었다고, 우리 가족 일이 아니었다는 안도감에만 머무를 수는 없다. 언젠가 나도 그 혐오의 대상이 되어 피해를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연극을 보면서 한강 작가의 작품들과도 결을 같이 한다고 생각했다. 피해자들이 '잊기'만들 기다리고 있는 듯한, 대한민국이 외면하고 모른 척했던 아픈 과거들. 예전에는 이런 내용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내가 아니어도 다른 사람들이 하겠지 하는 마음에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알아야 한다. 나부터가 바뀌어야 한다. 바뀌지 않으면 또 다른 형태의 혐오와 폭력이 생겨난다. 피해자가 아닌 사람들의 침묵과 가해자들의 적극적인 은폐로 인해 비슷한 사건들은 끊임없이 파생되어 뉴스에 오르고 있다.

혐오를 극복하고 '찬란하게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너, 나, 우리.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자기 이익만 챙기는 기득권자들과 권력자들이 아니다. 평범하지만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알고 공감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더 위대하다.


 '비명자들 3막-나무가 있다'는 영상과, 소리와, 연기를 조화롭게 잘 연출했다. 극장을 현명하게 잘 활용했다고 해야 할까. 오케스트라와 무대 장치가 어우러져 배우들의 연기를 더 돋보이게 하고 연극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비명자들'이 언어를 잃고 몸짓으로만 표현하는 감정도 굉장히 인상 깊었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 전작을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관람시간이 길다 보니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다. 그래도 나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겨준 좋은 연극임에는 틀림없다.




* 이 글은 해당 연극의 초대권을 제공받고 자발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래서 키워드도 제공받은 게 없고 제가 본 느낌과 감상을 적었기에 극단의 입장과는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고, 극을 잘못 해석한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연극이 더 궁금하다면 첨부한 모바일 프로그램북 QR코드를 통해 알아보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가을에는 시를 읽어 보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