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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스텔라 Jan 10. 2024

덕질불패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루나’라는 분이 있다. 본업은 카피라이터지만, 만화도 그리고 시도 쓰고 에세이도 쓰는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얼마 전에 그분의 강연에 참석했는데 질의응답 시간에 "그렇게 많은 직업을 가지고 다양한 일을 하려면 힘드실 텐데 어떻게 시간 관리를 하기에 가능하셨나요?" 란 질문을 받고 루나 님께선 한마디로 대답하셨다. "덕질불패"


덕질

나무위키에 따르면 오타쿠 → 오덕후 → 오덕(덕후) → 덕으로 변화해 온 것에 무언가를 하다를 낮추어 말하는 '질'을 붙여 만들어진 단어이다. 어떤 대상-이건 사람일 수도 있지만 물건이나 취미가 될 수도 있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깊이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데 부정적으로 쓰일 때도 있지만 나는 좋게 생각한다. '덕질'을 하려면 자신의 취향을 확고하게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안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가장 '덕질'한 대상은 연예인이다. 국내 최장수 아이돌로 불리는 나의 영원한 오빠들 '신화'. 팬클럽에도 가입하고 얼마 안 되는 용돈을 모아 CD는 기본이요, 잡지며 사진들을 사 날랐다.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오빠들의 노래를 MP3 플레이어로 나눠 듣고, 비디오로 녹화된 영상을 돌려보았다. 요즘처럼 '굿즈(연예인들의 사진이나 그림을 이용하여 제작한 상품)'가 활발하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진작에 가산(이라고 쓰고 용돈이라고 읽는다)을 탕진했을 것이다. 

학생 신분에는 고가라 손 떨며 샀기에 차마 버릴 수 없어 아직도 가지고 있는 신화의 첫 화보집

 내가 해봤기에 '덕질'에 너그러운 것이 아니라, 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오빠들을 '덕질'하며 보냈기 때문에 딱히 사춘기의 반항을 하지 않았다. 반항은커녕 오빠들이 "신화는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습니다."라며 공부하라는 소리를 종종 했고, 콘서트를 보러 가기 위해서는 부모님과 약속한 성적을 내야 했기 때문에 더 열심히 공부했다. 캠퍼스 커플은 감히 생각도 안 했지만, 학교 선후배 사이 정도는 되길 꿈꾸며 문제집 한 장을 더 풀었더랬다. 비록 같은 대학을 가지 않았지만 '덕질'이 내 입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건 "그놈의 신화가 뭐가 좋다고"를 입에 달고 사셨던 우리 엄마도 결코 부정하지 못하신다.  


 '덕후' 옆에 '덕후'가 모이는 건 당연한 건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덕질'하다 자신도 모르게 일본어 능통자가 되어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현재까지 일본에 살고 있는 친구도 있으며, 중국 드라마에 빠져 중국어 공부를 하다 통번역 전문가가 된 친구도 있다. 온갖 게임을 섭렵하더니 결국은 게임 개발자가 되어 자기가 만든 게임을 자기가 하는 '덕업일치(덕질의 대상과 직업의 대상이 같은)'를 이룬 지인도 있다. 앞에서 언급한 루나 작가님도 만화를 좋아하던 ‘덕질’이 직업으로까지 이어졌으니, 덕'질'이라며 낮게 취급하고 부정적으로 보기엔 어떤 것을 그렇게 열성을 다해 좋아한 결과는 한 사람의 인생까지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커다란 힘을 가지는 것이다. 

 그렇게 거창한 내용까지 가지 않더라도 단지 일상에 지쳐 힘들고 스트레스받고 위로가 필요할 때, '덕질'하는 대상의 사진 한 장, 노래 한 곡이 나에게 힘이 되어 준다면 이게 바로 시·공간적 제약도 받지 않는 가성비 넘치는 심리치료가 되는 것이다.


 바게트처럼 딱딱한 세상에서 생크림처럼 부드럽고 촉촉하게 내 마음을 어루만져줄 무언가가 필요하다면 당장 주위를 둘러보고 '덕질'할 대상을 찾아보라. ‘덕질’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감정은 삶의 동력이 되고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는 걸, 내 26년 ‘덕질 인생’을 걸고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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