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데 단계가 있나요

by 수인

“우린 stage가 달라”

언제 헤어져도 이상할 것 없는 관계 속에 있던 그와 나. 어느 날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전 여자 친구도 자기에게 이렇게 말했노라고. 나는 그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stage가 다르다고? 그게… 중요한 건가? 서로 좋아하는 사이에서 대체 그게 왜 중요하지?’


정확히 어떤 stage인지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 내가 더 많이 좋아해서 을이었던 관계 속에서 나는 할 말을 쏙 감추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추측해보건대 연애의 단계가 달랐다는 이야기 같았다. 당시 나는 이십 대 후반, 전 남자 친구는 삼십 대 초반이었다. 꼴랑 두 살 차이였으나 그와 나의 연애경험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나는 믿기 어렵겠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이와 관계없이 이십 대 초반의 감수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연애경험도 적었다. 그리고 그는 삼십 대 초반에 어울리는, 혹은 이것도 추측컨대 그보다 더 많은 연애 경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게 아마도 그가 말하는 stage의 차이였을 것이다. 소심하기도 하거니와 신중하게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연애를 많이 안 했고, 그에 따라 아직 감수성도 촉촉했던 나는 그렇게 단계가 다르다는 이유로 한 연애에 실패했다.


미술계에도 엄연히 stage가 존재한다. 명시적으로 말하지는 않아도 묵시적으로 행해지는, 그리고 온몸으로 느껴지는 그 stage의 차이. 물론 회사와 사회에 존재하는 건강한 단계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다. 업무의 효율성이든 무슨 이유에서든 존재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애초에 이 단계를 단번에 건너뛸 생각은 없었다. 나는 내가 비전공자인 데다가 아직 경력도 부족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전시기획의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요소를 배우고 싶어서 전시기획을 대략적으로 할 줄 알았음에도 일부러 좀 더 큰 미술관의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자리로 옮겼다. 그렇게 내 자리에서 그저 충실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stage에는 차별과 배제라는 것 또한 숨겨져 있었다. 분야를 옮긴다고 이런 게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내가 지나치게 순진했을 뿐이었다.




나는 종종 같이 일하는 큐레이터 분들에게 고민 상담을 하곤 했다. 또래여서 말이 잘 통했을 뿐 아니라 업무 외에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아도 잘 듣고 성심성의껏 답해주었기에 상담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SOS를 쳤다. 그중 한 분이 내게 이야기했다. "요즘은 예전의 반짝반짝하던 열정이 사라진 것 같아요, 그게 안타까워요." 나는 답했다. "이젠 잘 모르겠어요."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옆에서 다 지켜보았던 그분은 내게 또 말했다. “선생님, 목표를 잘게 쪼개 보는 건 어때요? 지금 준학예사 시험에 합격했잖아요, 그리고 여기서 경력을 쌓고 있고. 그 경력을 인정받아 준학예사 자격증을 얻고 그다음은 대학원을 가고 그렇게 하나하나 이루어 나가면서 큐레이터가 되는 거예요!” 또 다른 친하게 지내는 큐레이터 분도 내게 말했다. "선생님,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쌓이는 것도 있는 법이에요."


나도 내가 너무 조급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큐레이터’라는 하나의 목표를 앞에 두고 너무 크게만 생각했다는 것도. 하지만 내가 속해 있는 인생의 단계는 이제 중급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커리어에서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초급이라는 사실이, 그 괴리가 불안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단계 마다도 행복하고 싶었다. 늘 미래와 인생의 다음 단계를 생각하며 현재의 행복을 저당 잡히며 살아왔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교만 가면, 대학생 때는 취업만 하면- 이렇게 다음 단계만 바라보다 보니 현재의 단계를 충분히 살아낼 수 없었다. 이렇게 나아간 미래의 다음 단계가 또다시 현재의 단계가 되면 이 현상은 반복되었다. 내가 서 있는 단계의 계단은 그렇게 흔들흔들거렸다.




어느 날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는데 신발끈이 풀려버렸다. 종종 있는 일이긴 했지만 그날따라 잠시 앉아서 신발끈을 묶으려고 하면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고 또 바뀌고 했다. 나는 신발끈을 채 고쳐 매지 못한 채 누가 봐도 칠칠치 못한 모습으로 약속 장소에 도달했다. "언니, 신발...!" "응, 신발끈을 묶으려고 할 때마다 신호가 바뀌어서 고쳐맬 수 없었어."


나는 늘 내가 교착상태에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결혼이라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이십 대 후반 즈음에 나는 한동안 결혼이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일도 사랑도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내 인생은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들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때에도 나는 진정한 '일'을 찾기 위한 영역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그 상태가 대학교 졸업 후 십 년이 넘도록 지속되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나는 단계마다 끈을 야무지게 고쳐 매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지만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결국 끈도 제대로 매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아무것도 매듭지지 못한 채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 그러나 조금 달리 생각해 보면 나는 매듭짓지는 못했을지언정 매 순간마다 시도를 했고, 어찌 되었건 내가 원하는 방향을 찾아 계속 걸어 지금 이 자리에 있다. 매듭이야 지금부터 지으면 된다. 혹은 꼭 짓지 못해도 된다. 신발끈이 묶여있든 풀려있든 지금 있는 지점에서 행복하게 나아가면 된다.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인 채 그렇게.


지금의 단계 속에서 행복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한 나는 한 가지를 더 다짐한다. 내가 지금보다 한 단계라도 더 올라가게 된다면 결코 나보다 아래 단계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행복할 권리를 빼앗지 않겠다고. 내가 지금의 단계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행복할 권리가 있듯이 그들도 그렇다고. 나는 한 단계 한 단계 넘을 때마다 많이 아프고 힘들었지만 그들이 단계를 넘는 게 수월하도록 이끌어 줄 것이라고.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나는 지금 힘들어도 참고 견디겠노라고, 나의 최소한의 행복할 권리를 지킨 채. 나를 아껴주고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선의에는 선의를 베풀고 악의에는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사회가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가 진보하기 위함이라면 나는 진보하는 사회의 일원이 되겠다고. 그렇게 오늘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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