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심을 조금 발휘해, 방향 때문에 겪는 혼란은 진정한 직업을 찾는 정당한 행위에 꼭 필요한 과정임을 깨닫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길을 잃었다는 느낌은 자신이 불행한 운명에 매여 있다는 증거라기보다, 결실을 맺기 위한 탐사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첫 단계다.
알랭 드 보통, <영혼의 미술관> 중
모든 건 지나친 내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꿈 찾아 천직 찾아 돌고 돌아 미술계에 들어온 나는, 그럼에도 끝끝내 머릿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생각 때문에 여전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무지의 열정이건 열정의 무지이건, 혹은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라는 명명 대해 속에서 빠져 허우적거리건, 지금의 이 단계가 행복하지 않건 이 모든 것을 떠나 한 가지 나를 더 괴롭히는 문제가 있었으니 내가 과연 미술인인가? 하는 문제였다.
자격의 문제는 끊임없이 나를 괴롭힌다. 무언가를 시도할 때 제동을 거는 건 '내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을까?' 하는 마음속 소리이다. 혹은 이런 내 생각이 외부로부터 들려오기도 한다. 타인과 사회는 자격과 제도라는 이름 하에 끊임없이 우리를 판단하고 재단한다. 어쩌면 외부의 소리가 내 마음에까지 스며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너는 미술 전공자가 아니니까, 너는 경력이 부족하니까 자격이 없어! 이 모든 울림을 기민한 감각으로 알아채고 가슴에 품은 것일지도.
나는 이 자격이라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작더라도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왔고 준학예사 시험을 봐서 통과했으며 지금은 준학예사 자격증을 얻기 위해 서류를 제출하고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준학예사 자격증이 나오면 예술인 패스를 받을 수도 있다. 예술인 패스를 받게 되면 나는 예술인이 되는 걸까? 자격증을 가지게 되면 비로소 미술인이 되는 것인지. 혹은 대학원을 가고 미술 관련 전공을 해야지만 미술인이 되는 건지. 이런 외부의 자격과는 상관없이 내가 가지고 있는 예민한 감각과 많은 생각, 이 모든 것을 글이든 전시든 매개체를 통해 풀어내고자 하는 표현 욕구와 충동이 내가 예술인임을 증명하는 것인지. 외부와 내부, 주어진 자격과 내가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자격 사이에서 나는 한동안 갈팡질팡했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는 내가 예술을 하고 있다는 이상한 자부심이 있었는지 직업인으로서 문득문득 찾아오는 너무나 범상한 순간들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꿈이라는 것은 크고 추상적인 것이어서 내 손으로 잘 만져지지 않는다. 심지어 그 꿈이 현실이 되었을 때도 그렇다. 꿈은 나에게 그 환상의 모습을 면면이 보여주기보다는 오히려 비루하고 소박한 면을 몹시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뭉쳐놓으면 의미가 되는 일이 분자화 되면 그 가치를 잃었다. 실은 가치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더라도 너무나 마이크로 한 일에 함몰될 때면 이따금씩 회의가 드는 것이었다.
어쩌면 나는 예술로서의 큐레이팅만 생각했고 노동으로서의 큐레이팅은 간과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실망하고 현타를 느낀 건 그렇기에 당연한 수순이었을게다. 예술의 숭고함만 생각하고 노동의 신성함을 생각하지 않은 것, 일에 너무 큰 가치를 부여한 나머지 그 일을 이루고 있는 노동의 중요성을 생각하지 않은 결과는 일에 대한 흥미 상실과 그로 인한 무기력이었다.
지금은 내가 예술인이라고 생각한다. ‘미술인'이라고 특정하기보다는 좀 더 포괄적으로 예술인의 범주에 나를 넣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언젠가 꼭 다시 글을 쓰고 책을 내겠다는 소망을 품어왔다. 글을 쓰고 싶었지만 한 줄도 쓰지 못하던 시간을 건너, 노트북을 켜고 조금 타다닥거리다가 이내 그만두고 울곤 했던 순간들을 지나 비로소 내 이야기를 쓰고 있다. 아직 가시적인 책의 형태로 결과물이 손에 잡힌 건 아니지만, 내 안의 생각과 감정을 풀어놓고 있다는 것 자체로 기쁨과 충만함을 느낀다. 드디어 스스로에게 부과했던 엄격한 자격의 잣대를 내려놓고 예술하는 행위 자체에 동참하며 정체성과 자격을 되찾았다. 아직 미술인으로서의 나는 자신이 없지만 내가 찾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나를 찾고 그다음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직업인으로서의 나도 간과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 일이 얼마나 잘게 나뉘어 있든 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묵묵히 그 조각들을 끌어올려 하나의 조각상을 만드는 것이다. 애초에 내가 상정한 꿈이라는 조각상이 겪어보지 않은 탓에 전시장 속에 고고하게 놓여있는, 닿기에는 어쩐지 멀게 느껴지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현실 속에서 부서진 조각들을 재조합하여 더 단단하고 밀도 높은 나만의 작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일과 예술의 사이, 직업인과 예술인의 사이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던 나는 스스로 이를 잇는 가교가 되어 꿈과 일상이 섞인 삶을 살고자 한다. 나는 예술을 하는 직업인이고 회사를 다니는 예술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