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위로

마음의 방 바라보기

by 수인

때때로 공간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어느 공간에 있느냐에 따라 기분과 감정이 달라진다. 좋아하는 공간이란 대략 이런 곳들이다. 사람의 발길이 드문 호젓하고 정돈된 전시장, 역시나 사람이 많이 없는,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카페, 어두운 조명 속에 홀로 앉아 무대를 바라보며 인생과 나를 바라보는 공연장, 아름다운 자연과 고양이, 강아지, 아기들이 있는 공원. 내가 좋아하는 공간은 주로 혼자 나답게 있을 수 있는 곳이다. 나라는 사람을 애써 포장하지 않아도 되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얼마간의 진심과 얼마간의 가식이 혼합된 웃음을 지어 보이지 않아도 된다. 무표정의 나이건 자그마한 것에 행복을 느끼며 웃음 짓는 나이건 그냥 나답게 있으면 되는 곳을 사랑한다.


그래서 전시장을 사랑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는 그림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중요해지는 곳, 다른 사람이 말을 걸기보다는 그림이 나에게 말을 거는 곳. 그리고 그 물음에 답이라고 요구되는 대답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사실 대답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곳. 이런 곳에서 나는 그림을 보며 내 안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공간 자체가 주는 고즈넉한 분위기도 내 안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을 은근하게 부추겼다. 하지만 전시장이라는 공간 뒤에는 얼마나 많은 땀방울과 치열함이 숨겨져 있는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겉으로는 고고하게 떠다니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치열하게 물을 젓고 있는 백조처럼 표면의 침착함과 고요는 그 안에 숨겨진 사람들의 노고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관람객을 위한 평화롭고 정돈된 공간, 업계 종사자들에게는 치열한 삶의 현장 - 공간의 이중성이 지배되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 사무실에서는 각종 업무와 인간관계, 생각과 감정으로 마음이 어지럽거나 아예 무기력해진다. 그러다가 전시장에 나가면 전시장만이 가지고 있는 그 특유의 분위기에 머릿속은 깨끗해지고 마음은 정화된다. 그리고 다시 사무실에서 현실을 맞닥뜨리는 일을 반복한다. 나는 이렇게 환상과 현실이 혼재된 곳에 존재하고 있다.


애초에 나에게 위안을 주는 공간의 이면을 보고자 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내 눈앞에 드리워진 장막이 거기에 있는 것은 이유가 있을 터인데 나는 굳이 그 장막을 걷어 안을 보고자 했다. 그렇게 안으로 걸어 들어가 내가 기꺼이 속하고자 했던 공간 속의 공간을 보았다. 그저 밖에서 바라만 보았다면 오히려 찾았을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기꺼이 더 안으로 들어간 탓에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환상과 현실이 혼재된 곳에서도 현실만 있는 곳과 다름없이 흔들렸다.




나는 여전히 다른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전시장을 찾곤 한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미술이 그저 취미였을 때보다 자주 가지는 않는다. 전시장에만 들어서면 공연히 공부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전시장 벽면의 전시 소개글을 보며 공부하고 작품 배치와 조명 위치, 동선, 편의시설, 작품을 설명하는 캡션 등을 보며 왜 이렇게 배치했을까 무슨 의도일까 이리저리 생각하기에 바쁘다. 그러다 보면 작품 자체가 가져다주는 감상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전시장을 찾는 이유는 여전히 전시장이라는 공간이 가진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뒤에 숨겨진 사람들의 땀방울과 눈물이 보이지만, 그렇기에 더 와닿는 마음으로 공간이 주는 위로와 힘을 만끽한다.


내가 사는 곳 근처에 있어서 자주 가는 미술관이 있다. 그곳에서 열리는 거의 모든 전시를 봤는데 갈 때마다 공간이 휙휙 변해 있다. 다른 주제를 가지고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공간을 채우기에 당연한 것이지만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어, 내가 기억하던 공간이 아닌데?' 하는 신기하고 경이로운 마음까지 든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또 공간이 주는 매력에 빠진다. 내가 어떤 생각으로 어떤 주제를 가지고 수많은 요소를 고려해서 작품을 배치하느냐에 따라 분위기와 공간이 달라지는 게 너무 매력적이고 재미있다. 때때로 허물을 벗어 전혀 다른 모습의 전시장으로 탈바꿈하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며 나라는 공간을 정비하고 바꿔나가야 하는 것 아닐까? 내가 기꺼이 걸어 들어온 공간, 그곳의 이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이제는 외부가 아닌 나의 공간 속으로 한걸음 더 들어가는 것. 그림을 보며 내 안으로 침잠한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내 마음 깊숙한 곳에 도달하지 못했기에 언제나 흔들렸다. 이제는 지난 내 마음속 막을 걷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을 바라봐야 하는 것은 아닐지.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고요가 찾아오는 것은 아닐는지.


마음의 방 바라보기 - 정보영, <바라보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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