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으로 나가 현재 전시 중인 작가님의 인터뷰 영상을 보았다. 사회문제를 주로 설치 작품으로 다루어온 작가인데 이번에는 작업에 새로운 요소를 가미해 변주를 주었다. 왜 자신이 이런 작품을 만들게 되었는지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어떤 알 수 없는 연결점 같은 것을 느꼈다.
현대미술은 어렵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잘 모른다. 그리고 늘 궁금하다. 미술계에서 연차가 많이 쌓인 분들은 보자마자 이런 난해한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걸까? 그렇다면 대체 그 안목과 통찰력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오랫동안 해온 끊임없는 공부일까 어떤 감일까 나는 모르는 그 무엇일까. 이미 미술계에서 검증된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에 좋다고 하는 걸까, 정말 그 작품 자체가 좋은 걸까. 미술관 벽면이 부여하는 권위 때문에 그 작품이 돋보이는 걸까, 그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아우라 때문인 걸까. 현대미술 작품을 보면 이런 갖가지 생각들이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잘 모르기에 더 들여다보고 깊게 생각하며, 작품의 설명을 찾아보고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다. 직관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내가 몰랐던 이야기가 작품 속에 펼쳐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작품 속에 흐르는 작가의 생각, 가치관, 감성, 그리고 이야기를 좋아한다. 예술가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예술가는 사람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것,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을 섬세한 감각으로 집어 올려 작품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바쁘다. 특히나 현대사회에서는 내 몸 하나 간수 잘하고 내 정신 하나 잘 지키기만 해도 성공한 하루가 된다. 이런 생존본능과 투쟁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자연이나 사회문제, 인간성 등의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곧잘 특이하거나 배부른 사람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흐르는 좀 더 깊은 생각과 다양한 감성에 대한 본질적인 욕구 때문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예술을 찾는다. 내가 보지 못한 것, 듣지 못한 것을 시각, 청각, 촉각 등의 감각을 이용해 표면화한 작품을 보며 마음과 정신을 환기한다. 혹은 공간이 주는 위로 그 자체에 심취하기도 한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면, 나는 전시를 통해 그 대화를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다. 지금은 어시스턴트이기에 큐레이터보다는 조금 더 멀찍이 이 일을 하고 있다. 한 마디로 얇은 층이 하나 더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전시장에서 마주치는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나도 즐겁다. 뿌듯한 충만함이 차오른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주는 분위기를 사랑한다. 전시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제 옷을 입은 작품들이 뿜어내는 아우라를 느낀다.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그리고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도 절대 생각하지 않지만 계속 미술을 하고 싶은 이유이다.
물론 섣불리 단정 지으려고는 하지 않겠다. 얼마간 살아보니 인생은 단정 지으면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힘듦을 이겨냈다고 언제나 장밋빛 미래가 펼쳐진다고 볼 수도 없고, 새로운 바람에 따라 다른 길을 탐색할 수도 있다. 여러 관심사를 좇는 다능인답게 내 미래 또한 어느 하나에 묶어놓으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마음이 이곳을 향해있는 한 이 일을 하고자 한다. 내 마음이 하고 싶은데 외부적인 상황이나 요소 때문에 그만두는 일은 하지 않겠다. 왜 '미술'인지 왜 '그래도' '미술'인지에 대한 뚜렷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의미가 있으면 그 일을 추구할 수 있다. 의미가 있으면 생을 살아나갈 수 있다. 그러니까 그래도 미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