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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Oct 23. 2021

프롤로그_아직은 과정 속의 이야기

말이 씨가 된다는 게 이런 건가보다.

내가 다니던 두 번째 회사 근처 미술관에서 전시를 보던 중 찍은 사진을 개인 소셜 플랫폼에 업로드했다. 그 사진 밑에 친하게 지내던 전 직장 동료가 댓글을 달았다. "큐레이터 같아요!" 나는 댓글에 답글을 달았다. "이렇게 직업을 바꿔봅니다.. ㅋㅋ"


농담 반 진담 반처럼 했던 이야기였다. 농담이었던 건 미술은 그저 취미였을 뿐 업으로는 나와 절대 닿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진담이었던 건 무엇인지 모를 꿈을 찾아 그걸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7년 전 장난처럼 했던 말은 어느 순간 소망이 되었고, 그 소망은 반은 현실이 되었으며 반은 아직 미래 속에 있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류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주로 전래동화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나올법한 이런 결말을 좋아했던 이유는 내 인생의 종착지가 행복일지 아닐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은 과정 속에 있는 많은 나날들이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할 이유도 많았지만 행복하지 않을 이유도 많았다. 행복은 닿을 수 없는 것, 내 손끝 저 멀리에 있는 것 - 그렇기에 내가 폴짝 뛰어올라야지만 쟁취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꿈을 찾고자 했던 것도 궁극적으로는 행복해지기 위해서였다. 꿈을 찾고 그 안에서 나를 찾고 이렇게 하다 보면 나는 걸어도 걸어도 보이지 않는 행복이라는 것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직은 과정 속의 이야기이다. 과정을 굳이 이야기하는 것은 살아가고 있는 순간순간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기 위해서이다. 저 멀리 빛나고 있던 꿈에 다가간 대가로 이카루스의 날개가 되어버렸지만 다시 일어나서 내게 주어진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기 위해서이다.


출퇴근길 역사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늘 의아했다. 저 많은 사람들은 무얼 향해 저리도 바삐 움직이고 있을까. 저 무표정 뒤에는 어떤 생각과 감정들이 숨어있을까. 나도 모르게 정해진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걸까 아니면 그 속에서도 나의 이야기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걸까. 속에 드리우진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래서 내 속에 들어찬 이야기를 꺼내보기로 했다. 개별성이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이 예술이라면, 예술계 종사자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조심스럽게 내 이야기를 꺼내어 사람들 속 각 이야기의 면면에 닿아보는 시도를 하는 것이었다.


아직은 과정 속의 이야기. 끝을 알 수 없어 더욱 주저앉을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가 당신에게 닿길 바란다. 혹여나 닿지 않는다면 그건 나의 미숙함일 것이다. 그렇지만 글을 쓰고 싶었을 때부터 입버릇처럼 한 이야기가 있었다. 단 한 명이라도 내 글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할 거라고. 나의 너무도 미시적인 이야기가 당신 안의 사소하지만 숨겨져 있는 반짝임과 마주하게 되길. 우리 모두의 과정은 반짝거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길.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줄리안 오피의 그림이 생각나곤 했다. 어디로 향해갈까, 무슨 이야기를 품고 있지-줄리안 오피, <Winter night 2>, 2021 국제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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