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미운 아기오리>
어미 오리는 마지막 알에서 깬 새끼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뭔가 이상한데…’
사실 아기 오리가 들어있던 알은 처음부터 그 생김새가 다른 알들과 달랐다. 다른 알의 족히 1.5배는 됨직한 크기에 거무죽죽한 초록빛을 띠고 있었다. 애초에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둥지에 들어있던 터라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고 품었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알에서 갓 나온 새끼를 보자니 기가 막혔다.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었다! 다른 새끼들보다 몸집도 크고 생김새도 이상했다. 그리고 날개를 비롯한 몸의 힘이 남달라 보였다. 어미 오리는 더럭 겁이 났다. ‘이 아이는 위협이 될 거야, 다른 내 새끼들과 나에게. 그러니 잘해주지 말아야지.’
아기 오리는 그때부터 찬밥 신세가 되었다. 어미 오리를 따라 길을 걸을 때면 늘 마지막에 서서 따라갔다. 아무도 아기 오리를 챙기지 않았고, 아기 오리는 걸음을 걷다가 서러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곤 했다. 햇살이 부드럽고 바람이 시원한 날이면 오리 식구들은 아늑한 농장의 마당에서 벗어나 건너편 수풀로 소풍을 가곤 했다. 그럴 때면 늘 꽥꽥 거리는 합창이 시작됐는데 타고나게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던 아기 오리는 자신도 모르게 목청 높여 꽉꽉 노래를 불렀다.
“잠깐만! 이게 무슨 소리지?”
“어휴, 너무 시끄러워! 소리도 참 볼품없지 뭐야!”
“너, 좀 조용히 할 순 없겠니? 덩치도 제일 크고 못생겨서 그렇게 이상한 소리까지 내면 어쩌자는 거니?”
앞서 가던 어미 오리와 형제 오리들의 비난이 잇따랐다.
“나는 그저… 같이 노래하고 싶었을 뿐이야. 나는 노래하는 게 좋아. 그리고 엄마와 언니 오빠들과 함께 노래하고 싶어요!”
아기 오리는 조그맣게 항변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말을 마친 어미 오리와 형제 오리들은 아기 오리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걸음을 재촉했을 뿐이었다.
푸드덕푸드덕, 마당으로 돌아온 후에는 다 같이 날갯짓 연습을 했다. 어미 오리는 한 마리씩 돌아가면서 세심하게 돌보아 주었다. 모두들 들쭉날쭉했다. 어떤 오리는 처음부터 곧잘 따라 했고, 또 어떤 오리는 날갯짓이 느리거나 가동범위가 좁았다. 아예 날개를 들어 올리지 못하는 새끼 오리도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건 미운 아리 오기였다. 아기 오리의 날개는 크고 윤기가 흘렀다. 어미 오리는 아기 오리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저 녀석이 날갯짓을 할 수 있으려나. 내 다른 새끼들보다 더 빨리 잘하게 되는 건 싫은데.’ 연습을 하던 아기 오리는 어미 오리가 자신을 곱지 않은 눈으로 흘겨보는 것을 보았다. 어쩐지 주눅이 든 아기 오리는 날개를 펼쳐보지도 못한 채 그만 고개를 숙였다.
그날 밤, 아기 오리는 많은 생각을 했다. 아기 오리는 어미 오리와 형제 오리들이 좋았다. 처음 알에서 깼을 때 본 어미 오리는 아기 오리에게 이 세상의 전부였다. 그렇기에 어미 오리의 마음에 들고 싶었고, 다른 형제 오리들처럼 되려고 애썼다. 형제 오리들의 울음소리, 걸음걸이, 표정 등 모든 것을 흉내 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어설퍼지고 더 외면당했다. 형제 오리들은 아기 오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아기 오리가 다가오면 견고한 벽을 세웠고 앞에서든 뒤에서든 무시하고 힐난하는 말을 일삼았다. 아기 오리는 그럴 때마다 슬퍼졌다. 아기 오리는 농장에 있는 사람들도 좋아했고, 나무도 구름도 농장의 공기까지도 좋아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일방적인 짝사랑 같았다. 어미 오리의 시선은 언제나 차가웠고, 형제 오리들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아기 오리를 보면 쑥덕댔다. 농장의 사람들도 아기 오리에게는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았다. 때가 되면 먹이를 쓱 들이밀 뿐 아기 오리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기 오리는 행복하지 않았다. 여기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지만 떠나고 싶었다, 행복하지 않았기에. 여기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면 내가 행복을 찾아 떠나리라, 비록 사랑은 두고 갈지라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랑을 찾을 수 있으리라. 그리고 미운 나조차도 어쩌면 사랑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 아기 오리는 이렇게 생각하곤 바로 실행에 옮겼다. 비스듬히 열린 농장의 작은 문을 빠져나가 어둠 속을 걸어갔다. 아니 뒤뚱뒤뚱 뛰어갔다, 일말의 미련조차 남기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황급히 원래의 삶에서 빠져나왔다.
아기 오리는 정처 없이 걸었다. 걸어가면서 내내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흘린 눈물 자국과 빠져버린 깃털이 아기 오리가 걸어온 길에 알알이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아기오리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자신이 흘려온 흔적을 주워 담기엔 아기 오리의 마음이 너무 아팠다. 흔적들은 날카롭게 반짝거리는 유리처럼 아기 오리의 마음을 찢어 놓았다. 그러다 도착한 어느 수풀에서 아기 오리는 한잠 자고 가기로 했다. 아무도 보듬어주지 않았지만 수풀을 이불 삼아 오지 않은 잠을 애써 청했다. 동이 틀 무렵 아기 오리는 눈을 떴다. 어두웠던 밤을 지나 아침의 빛이 새롭게 반짝였다. 그 빛을 보며 문득 자신의 마음도 밝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새로운 세계가 있을 거라는 이상하고도 확신에 찬 희망이 마음속에서 자라났다. 그 순간, 한 무리의 백조가 하늘로 높이 날아오르는 게 보였다. 긴 목을 쭉 뽑아내며 힘차게 날갯짓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눈처럼 흰 털이 차가운 겨울 아침 햇살에 반짝였다. 여태껏 본 적 없는 광경에 아기 오리는 넋을 잃었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백조 무리가 하늘에서 사라진 다음에도 아기 오리는 언제까지나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금 전까지 있었던 백조들을 그렸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회색의 삭막했던 세상이 갖가지 꽃의 색과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봄이 다가와 있었다.
오리는 겨우내 갈대밭에서 보았던 우아하고 행복한 백조를 생각했다. 긴 목을 쭉 내밀며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르던 그 모습, 여러 마리가 공중에서 빚어내던 그 장관을 잊을 수 없었다. 다시 한번 날개를 버둥거려봤다. ‘역시… 안되는구나.’ 사실 아기 오리는 겨울 내내 웅크리고 있지만은 않았다. 하얗게 빛나던 백조들은 하나의 잔상처럼 아기 오리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는데, 아기 오리는 그 백조들처럼 날아오르고 싶었다. 못생긴 데다가 뒤뚱거리는 자신이 싫었다. '백조들처럼 우아하게 날갯짓을 할 수만 있다면 조금은 비웃음을 덜 받을지도 몰라!' 아기 오리는 수풀에 몸을 가린 채 매일 조금씩 퍼덕여 보았다.
아기 오리를 비웃고 괴롭히던 어미 오리와 형제 오리, 그리고 사람들을 생각할 때면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하지만 백조를 생각하며 날개를 움직일 때면 그런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아주 짧은 순간일지라도, 아기 오리는 자신이 밉디 미운 오리 새끼라는 사실을 잊었다. 어쩌면 황홀경 속에서 자신이 백조가 되는 순간을 상상했다. 상상 속에서 아기 오리는 눈부시게 빛나는 백조가 되어 아름답게 날고 있었다. 주위에는 아기 오리를 사랑하고 인정해주는 다른 백조들이 있었다. 그 백조들은 때론 둥글게 아기 오리를 감싸 안아주고 때론 앞에서 뒤에서 끌어주었다. 그 속에서 아기 오리는 전례 없는 행복을 느끼며 날개를 퍼덕여 보는 것이었다. 그러니 눈을 뜨면 자신의 짧은 날개가 안간힘을 쓰며 안타깝게 퍼드덕 거리는 게 보였고 여전히 아기 오리는 날 수 없었다. 찰나의 행복은 곧 깊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아기 오리는 다시 한번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고는 따뜻한 날씨임에도 이상한 한기를 느끼며 두 발을 꼭 끌어안은 채 몸을 웅크렸다.
그때였다. 저쪽에서 두어 명의 아이들이 깔깔대며 뛰어왔다. 아기 오리는 겁이 났다. ‘저 아이들도 나를 해치려 들겠지? 나를 비웃고 놀릴 거야. 그런데 너무 많이 울었더니 힘이 없네. 그냥 맞닥뜨리자. 더는 도망치고 싶지 않아. 나를 헐뜯든, 때리든 쫓아내든 나는 이 자리에서 그냥 다 받아들일 거야. 더는 도망치지 않아.’
“어, 여기 정말 예쁜 아기 백조가 있어!”
“어디?”
“여기, 여기 봐! 정말 눈처럼 하얗고 소담해!”
“정말이네? 나 이렇게 예쁜 백조는 처음 봐! 그런데 왜 여기 혼자 웅크리고 있을까? 어미는? 친구들은 어디에 있지?”
아기 오리는 깜짝 놀랐다. 내가 백조라고? 그게 무슨 소리지? 그럴 리 없잖아. 나는 작고 못생기고 하찮은 아기 오리일 뿐인 걸. 부모와 형제조차 외면한... 이제 겨우 꿈이 생겼지만 날갯짓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그저 뒤뚱거리는 오리 새끼일 뿐인 걸.
“우리 아기 백조를 물가에 데려다줄까? 어미도 형제도 없어 보이는 걸!”
“그래, 그게 좋겠다. 나 저쪽 연못에서 백조 한 무리가 어울려 있는 걸 봤어, 우리 그쪽으로 데려다줄까?”
아기 오리는 태어나서 이렇게 따뜻한 말은 처음 들어보았다. 나를 또 쫓아내거나 때리겠거니 했는데 너무도 근사한 말을 나에게 하고 있었다. 그 말을 조금 믿어볼까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었다. 내가 백조라면… 내가 백조라면 겨울에 본 그 아름다운 백조 무리처럼 나도 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정말 백조라면 내 힘으로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한번 날아보자. 어쩌면 겨우내 연습한 감각이 남아 있을지도 몰라. 아기 오리는 날개를 퍼덕여 보았다. 붕붕- 소리가 났다. 조금만 더 해볼까? 조금 더 힘차고 빠르게 내 온 힘과 마음을 모아. 날갯짓이 빨라졌다. 조금씩 추진력을 얻더니 어느 순간 붕- 아기 오리는 날아올랐다. 바닥에서 발을 떼는 그 순간, 아기 오리는 알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미운 아기 오리가 아니라는 것을. 내 날개로 스스로 날 수 있는 백조가 되었다는 것을. 멀어지는 수풀 속 아이들이 손을 흔들었다. 아이들은 아기 오리가 이전에 날아오른 백조들을 쳐다본 것처럼 감탄과 경이로움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고마워!’ 아기 오리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너희를 잊지 않을 거야.’
한참을 날아가던 아기 오리, 아니 아기 백조는 백조들이 모여 있는 연못을 발견했다. 살포시 내려앉아 백조들에게 다가갔다. 백조들은 양 날개를 펼치며 아기 백조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마치 이곳이 원래의 고향인 것처럼, 원래 내가 있어야 할 곳인 것처럼 그 품은 아늑하고 따뜻했다.
아기 백조는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속에는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이전까지는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면, 이번에는 담담하고도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물에 비춰보고 있었다. 물속 아기 백조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내려다보는 아기 백조를 바라보고 있었다. 따뜻하고도 확신에 찬 눈으로.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