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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Jun 21. 2021

순간의 달콤함과 그만큼 끈덕진 현실 사이

<달까지 가자>를읽고

순간의 달콤함, 그뿐이었다.


공중에 흩날리는 솜사탕 한 조각을 향해 팔을 뻗었다. 있는 힘껏 발을 굴러 가까스로 솜사탕을 움켜쥐었다. 그렇게 한 움큼, 입속으로 들어간 솜사탕은 너무나 달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 후로도 솜사탕을 먹기 위해서는 자신의 키만큼 풀쩍 뛰어올라야만 했다. 평지에서 한 걸음 나아가는 것만으로는 결코 그 달콤함에 가닿을 수 없기에 어린 다해는 점프와 착지를 반복했고 그렇게 내 것이 아닌 듯 내 것인, 내 것인 듯 내 것이 아닌 달콤함을 입에 넣었다.


장류진 작가의 <달까지 가자>는 가상화폐의 일종인 이더리움 투자를 둘러싼 세 명의 90년대생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공채가 아닌 다른 경로로 입사해 알게 모르게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세 명의 자칭 입사 동기들, 열심히 일해도 다섯 등급 중 가운데인 ‘무난’ 등급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 ‘무난이’들은 고만고만한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장군이라 불리는 언니 은상의 지휘 아래에 가상화폐 투자에 뛰어든다. 이후 이들은 “달까지 가자”를 외치며 매일같이 가상화폐의 등락을 살핀다. 내가 산 가상화폐의 가치가 폭등하기를 바라는 은어인 ‘달까지 가자’라는 말은 주문처럼 이 셋을 휘감고, 세 명의 무난이들은 지구의 대기권을 뚫고 나가 단번에 달에 도착하기 위한 로켓에 탑승한다.


나는 처음의 지송이가 그랬던 것처럼 달을 향한 이들의 우주 탐험이 위험해 보였다. 지긋지긋한 인생에서 벗어나 보고자 한탕주의에 물든,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이야기 끝에는 어마어마한 몰락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가상화폐니 주식이니 이런 것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나이지만 어쩐지 이들의 실패를 내 눈으로 보게 되는 게 꽤나 두려웠고, 이 소설이 어서 끝나기를 바라는 초조함까지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현실과 괴리된 머나먼 달에 착륙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저 지금의 현실에서 아주 조금 더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것뿐이었지만 그조차 쉽지 않은 현실에 닿을 수 없는 저 달에 가닿자는, 어쩌면 허무맹랑한 말로 마음을 다잡으며 8개월의 시간을 견뎠다는 것을. 조금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기 위한 다해와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소한 행복을 지키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지송, 연애도 결혼도 필요 없고 무조건 돈이 좋다는 은상에 이르기까지. 뒤로 갔다 앞으로 갔다 하며 잰걸음으로 박음질하듯 나아가는 삶이 아닌 현재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최소한의 발판이 필요했고 그게 바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화폐였다는 것을.


결과적으로 이더리움 투자는 성공했고, 각자의 손에 쥐어진 현금으로 은상, 지송, 다해는 제각각의 인생을 걸어간다. 33억 원을 벌어 성수동에 있는 꼬마빌딩을 산 은상, 2억 4천만 원으로 식품 원재료 사업과 식음료 사업을 병행하려는 지송, 그리고 아직 무엇을 할지 모르겠기에 우선 집부터 전세로 옮기고 회사는 ‘일단은, 계속 다니자’는 다해. 결국 그들의 투자는 지금 있는 곳에서 한고비 넘긴 결과를 가져왔을 뿐 언론에서 나오는 드라마틱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조차도 모든 것을 다 걸고 도박을 해야만 간신히 이룰 수 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달까지 가자는 것은 시리도록 현실적인 말을 그럴듯한 이상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한 말이었다.


다해와 은상, 지송이 함께 떠난 제주도에서 세 명의 친구들은 풀 파티를 즐기며 달콤한 마시멜로를 연신 입에 넣었다. 마트에 입점해 있는 마론제과의 과자만 먹던 이들에게 호텔 침구와도 같은 폭신한 달콤함으로 다가온 마시멜로는 분명히 새로운 세계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몇 조각 조차 채 삼키지 못한 채 다해는 내가 이런 것을 즐길 자격이 있나 고민하기 시작한다. 입안에 퍼지는 달콤함은 사실 찰나에 불과하고 나는 이 달콤함을 느끼기 위해 끊임없이 뛰어올라야 한다는 것을 다해는 이더리움 투자로 어느 정도의 돈을 벌고 나서도 잊지 않았다. 어린 다해는 이런 세상의 이치를 무심결에 알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순간의 달콤함을 위해 하늘을 향해 뛰어오르는 노력, 그 노력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다해의 모습이 몹시도 사실적이다. 강렬한 순간으로 지나가는 달콤함에 비해 이 사실감은 잔잔하지만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무른다. 아마도 그것이 끈덕지게 붙어 다니는 현실일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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