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yum Mar 03. 2022

행운목의 불행한 일생

내가 경험한 모든 죽음들

자취를 시작하고 두 달쯤 됐을 때 마음이 몹시 외로워 반려식물을 사려고 꽃가게에 갔다. 여러 식물들 중 나무 밑동을 똑- 잘라놓은 것처럼 생긴 행운목이 내 눈에 들어왔다. 행운목은 생긴 게 나무 비슷하게 생겼는데 이름도 어쩜 행운목이라서 키우면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줄 것 같았다. 나는 행운목이 담긴 새까만 비닐 봉다리 손잡이를 손에 쥐고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걸으며, 행운목이 나에게 안겨줄 행운 가득한 앞날에 부푼 기대를 안고, 식물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차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뿌듯함을 느끼며 집으로 왔다. 그로부터 두 달 뒤, 행운목은 죽었다.


두 달 만에 행운목의 몰골은 몹시 처참해졌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불치병으로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가족 중 아무도 돌보지 않아 육신이 방치되어 몸 곳곳에 욕창이 생긴 것 같았다. 그 무렵 나는 몇 가지 문제들로 정서적으로 피폐해 키우던 거북이도, 행운목도, 나 자신마저 모두 방치해뒀었다. 두 달쯤 지나 나는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회복하여 일상의 활력을 되찾았으며 두 달 동안 나 때문에 사료만 먹은 거북이에게도 다시 신선한 야채를 공급해줄 수 있었지만, 나의 불쌍한 반려식물 행운목은 두 달 사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수생식물인 행운목의 몸뚱이는 신선한 물을 먹지 못해 쇠약하게 쪼그라들었고, 우리 집에 처음 올 때만 하더라도 새파랗고 싱싱하게 돋아나 있던 행운목의 큼지막한 잎사귀에는 노랗고 버석버석한 버짐이 잔뜩 피었다. 게다가 가까이 얼굴을 대니까 옅은 하수구 냄새가 났고 얼굴이 가려웠다.


저런 걸 그대로 두었다가는 행운은커녕 집안에 우환이 올 것 같아 얼른 처분하기로 결심한 이기적인 나는 마지막으로 말라비틀어진 행운목의 몸통을 흐르는 수돗물로 깨끗하게 오랫동안 씻겨주었다. 행운목의 처음이자 마지막 목욕이 끝난 후 두루마리 휴지를 행운목의 몸체에 둘둘 감아 쓰레기봉투에 버리려다 어떤 생각이 번개가 쾅- 치듯 머릿속을 스쳤다. 죽은 게 아닐지도 모르잖아. 지금부터라도 물을 잘 갈아주고 매일 돌봐주면 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에 뒤통수가 짜릿해짐을 느끼며, 나는 포털사이트에 이런저런 검색어를 입력해 정보를 찾았다. 죽은 행운목 살리기, 죽은 식물 살리기, 죽어가는 식물 살리기, 행운목 키우기... 하지만 행운목을 잘 키워서 나무로 만들어 식물원에 기증했다는 포스팅은 있어도, 아무리 찾아봐도 죽은 행운목을 살렸다는 포스팅은 단 한 개도 없었다.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 인터넷 창은 전부 닫아 끄고 나는 급히 밖으로 나갔다. 이럴 때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커다란 화분을 사고, 좋은 흙을 사고, 식물 영양제도 사서 행운목을 살려보는 거야. 그렇게 살아난 행운목은 어쩌면 몇 년 후엔 블로그에서 본 것처럼 커다란 나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나는 다이소에서 만 원어치 쇼핑을 하고 집으로 얼른 돌아와 목장갑을 끼고 행운목을 화분에 옮기고 뿌리까지 흙으로 잘 덮어 심고 그동안 방치해서 미안하다는 사죄의 말과 함께 행운목의 소생을 바라는 기도를 하였고 한 달 뒤에 행운목은 썩었다.


한 달 전부터 나던 하수구 냄새는 차츰 누적되어 깊이를 더하더니 마침내 나의 침구류와 널어놓은 빨래로도 침투하였다. 나는 집안에 가득한 하수구 냄새를 없애려고 매일 체리향 양키캔들을 켜 두었다. 그런데 이 체리향과 하수구 냄새는 누가누가 강한지 다투기라도 하듯 서로 각자의 영역을 철저히 사수하며 번갈아 내게 두통을 선사했다. 창문을 열면 건너편 빌딩에서 우리 집안 살림살이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집 구조라 내가 어딘가에 숨어 있어야 했고, 잘 때가 되어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있을 때라도 좀 열어둘라치면 사람들이 1층에서 피운 담배 연기가 집 안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와 견딜 수 없었다. 그런 상태를 며칠 더 견디는 동안 행운목은 숯덩이처럼 시꺼메졌고, 시꺼메진 행운목의 몸 위로 허연 비듬처럼 생긴 응애 벌레 몇 마리가 행운목의 몸통을 발발 기어 다니는 모습을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도대체 응애 같은 건 어떻게 무슨 원리로 생기는지 신기했지만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응애를 보고 마음이 뒤숭숭해져 맥주 한 캔을 다 마시고 그대로 잠든 나는 새벽 두 시에 발작하듯 일어나 행운목을 두루마리 휴지로 둘둘 감아 종량제 봉투에 담고 냄새가 나지 않도록 봉투를 꽁꽁 묶어두었다가, 날이 밝자마자 세수도 안 하고 얼른 뛰어 나가서 갖다 버렸다.


내가 어릴 때부터 엄마가 키운 식물들은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커다란 화분으로 옮겨가며 잘 컸다. 사계절 내내 식물원 같은 우리 집 베란다를 보고 자란 나는 식물을 키우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행운목 이후에도 나는 다육식물, 꽃피는 식물, 허브, 선인장 등등 여러 식물을 죽였다. 행운목 이후에는 분명 창가에서 햇볕과 바람도 충분히 쐬어주고 같은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주라는 만큼 정량의 물을 줬는데도 다들 죽었다. 왜 죽었는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아마 식물을 키우기에 그때의 나는 너무 무심한 인간이었기에 뭘 키워도 그렇게 되었던 건 아닐까 싶다. 어쨌든 그 이후로 지금 나는 함부로 식물을 사 오지 않는다. 식물을 돌보는 게 사람을 돌보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란 걸 이젠 알고 있으니.


죽은 행운목에게 다음 생이 있더라면, 좀 더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뭔가로 태어나기를 바란다. 아, 그렇더라도 내 지인으로 태어나지는 말자. 네가 복수할까 봐 너무 무서우니까... 그리고 만약 다시 행운목으로 태어나게 되거든 좋은 주인을 만나 나무가 될 때까지 햇빛과 맑은 공기를 실컷 먹으며 오래오래 살아라. 미안하다 행운목.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는데 어쨌든 내 탓이지. 살아있는 걸 모든 걸 관리하고 돌보는 데에는 커다란 책임과 희생이 필요하다. 그리고 서른일곱의 나는 오늘도 여전히, 나 하나 온전히 책임지기도 벅찬 인생을 살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아메리카노의 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