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오래 볼 줄 알았다
지난주 일요일에 H가 내게 전화했을 때, 나는 차를 운전해 여주에서 집으로 귀가하던 길이었다. 전날 꿈자리가 뒤숭숭했고, 여주 아울렛에서는 마음에 드는 물건을 못 골라 아무것도 못 산 데다가, 아울렛에는 사람도 많고 차도 많아 주차공간이 부족했으며 차들이 주차공간 길목 여기저기를 막아놓는 바람에 이리저리 피하고 빙빙 돌다가 뒷바퀴를 긁어먹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H로부터 J가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기운이 쭉 빠지고 몸에 힘이 풀리면서 멍해져 현실감이 없었다. 아무 말도 없이 운전을 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시속 110km 구간에서 50km를 밟고 가고 있었고 내 앞에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아 이러다 큰일나겠구나 싶어서 H에게 이따 전화한다 말하고 전화를 끊었고, 듣고 있었던 백예린의 노래를 다시 틀어놓고 다른 생각을 안하려고 노력하면서 운전에만 집중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H가 아닌 J에게 카톡을 보냈다. 'J야. 거짓말이지? 나 아까 뭐 잘못 들은 것 같은데.' 답장은 오지 않았다.
다음 날, H와는 오후 6시에 장례식장에서 보기로 하고, 오전 11시에 집에서 나왔다. 집에서 동서울 터미널까지는 한 시간, 동서울 터미널에서 경상남도 의령버스터미널까지는 4시간 50분이 소요된다. 의령역에 도착하니 오후 5시 50분. 휴게소에서 호두과자를 사서 몇 알 집어먹었기 때문인지 배는 고프지 않았다. 택시를 타려고 두리번거리는데, H에게 전화가 왔다. 지인 몇몇을 픽업해 장례식장에 함께 갈 거라서 좀 늦는다고, 6시 40분쯤 도착한다 했다. 먼저 장례식장에 가있자니 아는 사람 하나 없어 뻘쭘하고, 그렇다고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장례식장 앞에서 40분이나 기다리기도 싫었다. 근처에는 카페 한 군데 없었고, 장례식장은 역에서 3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방법은 하나였다. 나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장례식장까지 걸어가기로 결심했다. 네이버 지도를 켜서 자전거 길을 검색하고 역에서 길을 건너 맞은편 산책로를 향했다. 날이 흐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데다, 산책로에 우거진 가로수 때문에 6시밖에 안됐는데도 길이 어두웠다. 길 위에는 사람도 없었다. 금방이라도 해가 질 것 같았고, 해가 지면 가로등 하나 없는 깜깜한 마을에 홀로 고립될 것 같았다. 무서워서 걸음을 재촉하는데, 한 10분쯤 걷다 보니 조깅하는 사람,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보였다. 마음이 놓인 나는 그제야 주변을 둘러봤다. 산책로 맞은편의 광활한 논밭에는 자로 재고 그은 듯 반듯한 길이의 벼들이 빼곡하게 자라 있었고, 논의 모양도 네모반듯했는데 그 모습이 어쩐지 삭막하고 쓸쓸했다. 여기가 J의 고향이구나. J는 이 길을 차를 타고, 오토바이를 타고, 걸어서도 몇십 번이고 몇백 번이고 왔다 갔다 했겠지 싶어서, 나는 논도 한참 쳐다보고, 논 뒤로 기다란 곡선을 그리고 있는 산자락의 빽빽한 초록잎들도 한참을 쳐다보며 걸었다.
장례식장 앞에 도착한 시간은 6시 40분이었고, H에게 전화가 온 것도 그때였다. 5분 후 H가 친구 두 명을 데리고 차에서 내렸다. 우리는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로비 한켠에 마련된 조의봉투 수납함에서 봉투 한장을 꺼내 지갑에서 빼낸 소량의 현금을 담았다. J가 먼 길 가는데 맛있는 간식이라도 사먹기를 바라면서. 들어가서는 해맑게 웃고 있는 J의 영정에 대고 두 번의 절을 하고, 가족들에게 한번 절을 했다. J앞에 놓인 국화 몇 송이가 시들시들하기에 한송이를 뽑아 J앞에 조심스레 놓아두고 사진을 잠깐 다시 본 후 유가족들에게 목례를 했다. 그러고는 함께 간 일행들과 넷이서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었는데, J의 사촌동생이 J의 스마트폰을 들고 와서 곁에 앉았다. 나는 그 스마트폰 안에 꼭 J가 있을 것 같아서 한참동안 그 폰을 쳐다봤다. 우리는 J가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 취미, 생활습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에게 잘해줬던 J는 가족, 친구, 친척 모두에게 잘해줬다. 농번기 때는 농사짓는 부모님 도우러 주말을 반납하고 고향에 내려와 일했고, 옆집 사는 사촌동생에게는 평소에 맛있는 게 있으면 나눠주고, 맛집을 발견하면 꼭 데려가서 사줬다. 절친이었던 H는 한때 한 달 내내 한 두 번을 제외하고 매일 J를 만났는데, 둘다 먹성이 좋아 만나면 인당 3인분씩 닥치는 대로 음식을 먹어치우고 어디든 같이 다녔다. 그렇게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 내 차 시간 때문에 일어나면서 H가 나를 역까지 바래다줘야 해서 다 같이 일어났는데, 문 앞까지 마중 나온 J의 사촌동생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해줬다. 멀리서 와줘서 J도 좋아했을 거라고, 아마도 J에게 나는 좋은 사람이었을 거라고.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만큼 J에게 잘해준 기억이 없어 괜히 미안하고 창피한 마음에 애꿎은 H에게 아무 말이나 던지며 대답을 흐렸다.
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우리는 J에 대해 이야기했다. H가 생일 케이크를 준비해 J에게 줬을 때 얼마나 좋아했는지, J가 나에 대해서 뭐라고 이야기했는지, J가 얼마나 정이 많고 동생들에게 잘해줬는지. J는 H에게 나에 대해서 똑똑하고 멋진 사람 같다고 이야기했다는데, 나는 J의 사촌에게 칭찬을 들었을 때 만큼이나 그 이야기가 민망해서 어딘가에 숨고 싶어졌다. J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J야. 나 바보야. 실속도 없고 주변 사람들도 잘 못챙겨. 니 사람들 살뜰하게 잘 챙기고, 나보다 돈도 잘 벌고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집도 사고 재테크도 잘하는 너야말로 참 똑똑해. 너 참 멋지다.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금방이라도 J가 너네 왜 니들끼리 내 얘기하냐고 어딘가에서 올 것 같았고,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울 가는 버스 안은 조용했고, 승객은 나를 포함해 세명뿐이었다. 차내에는 불이 다 꺼져 있었고, 시간도 늦었으니 나는 의자를 완전히 재끼고 누워 잠을 자려했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아 일이나 할까 싶어서 가방에 들어있던 노트북을 꺼내 무릎에 얹었다. 그런데 일에도 영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스마트폰 창을 열어 오토바이 사고라고 검색해봤다. 오토바이 사고 예방, 배달 오토바이 사고율 증가, 오토바이 사고로 9명 사망. 네이버 뉴스 어디에도 오토바이와 트럭이 충돌해 오토바이 운전자가 사망했다는 기사는 없었다. 나는 유튜브 뮤직을 열었다. 팝송과 인디음악 몇 곡을 찾아서 듣다가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아서 꺼버렸다. 이번에는 J와의 카톡 대화창을 열었다. 그 친구가 마지막으로 했던 이야기는, '코인으로 떡상해서 조만간 금의환향할게.'였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 보니, '나 소 생고기를 주말마다 먹고, 수영도 다시 시작하면서 요즘 체력 좋아졌다. 너 통영 오면 같이 소고기 먹으러 가자. 얼른 바쁜 일 끝내고 와라. 내가 사줄게.'였다. 내년에 BMW 바이크를 살 거라고, 차는 못 사니까 바이크라도 살 거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J와는 작년 11월, 혼자 갔던 통영 여행에서 알게 됐다. 퇴직을 앞두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간 거라서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쉬며 마음을 비우고 싶었다. 그러던 중 호텔은 너무 비싸고, 모텔은 내키지 않아서 게스트하우스 2인실을 잡았다. 룸 안에 화장실이 있는지 확인을 안 해보고 예약을 했는데, 화장실도 샤워룸도 모두 바깥에 있어 씻거나 화장실에 가려면 나가야 했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려던 내 계획이 틀어져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어쨌든 화장실을 가기 위해 왔다 갔다 하던 중 사장님의 권유로 라운지에서 맥주를 마시는 게스트 무리에 합류하게 되었다. 완강하게 뿌리칠 수 없었던 이유는 사실 라운지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털이 보송보송하고 눈이 예쁜 고양이들과 놀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양이를 쓰다듬고, 고양이 장난감을 흔들며 놀아주려 했는데 어쩐지 솜씨가 어설펐다. 고양이들이 나의 행동에 흥미를 보이지 않자 J가 옆에서 말을 걸었다. 이건 이렇게 하는 거예요. 저 고양이 키워서요.라고. 과연 J가 장난감을 좀 더 격하게 움직이니 그제야 고양이들이 반응을 보였다. 나는 방에 들어가서 필름 카메라를 꺼내와 고양이들의 사진을 찍었고, 우리도 찍어달라는 누군가의 말에 그날 게스트하우스에 모인 열댓 명 남짓되는 사람들 사진을 찍어주고, 나중에 인화하면 보내주기로 하고는 번호도 교환했다. 어차피 다 한때고, 사진만 전해주고 나면 연락을 할 일도 볼일도 없을 줄 알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J는 숙소의 고양이를 소중하게 안고 내 카메라 앞에서 하회탈처럼 웃었다. 찰칵. 플래시가 터졌다. 눈뽕 맞았다며 옆에서 누가 눈을 비비적거렸다. 우리는 웃었다. 밤이었지만 낮처럼 밝았고, 라운지는 경쾌했다. 서울에서 가져온 퇴직 후 미래에 대한 고민을 나는 잠시 내려놨다.
다음날 우리는 다 같이 이순신 공원과 미래사를 여행했다. 코스는 얼떨결에 내 위주로 짜였다. 두 군데 모두 내가 혼자 가려고 했던 곳인데, J가 어차피 우리도 여행하러 온 거니까 다 같이 가면 어떻겠냐며 할 거 없으면 같이 가자고 해서 다 같이 밥도 먹고, 여행도 다니고, 단체사진도 찍었다.
J는 편안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내 기준에서 사람의 편안함이란 두 가지 정도의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생각과 행동이 일관되어 안정감이 느껴지는 타입. 다른 하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정이 많아 같이 있으면 푸근해지는 강아지같은 타입. J는 후자였다. 우리가 실제로 만난 건 그날 통영 여행에서 딱 한번뿐이고, 그 후로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서로의 근황을 살피고 댓글을 남기곤 했다. 내가 J에 대해 아는 것은 대기업 생산직 라인에서 오랫동안 근무해서 직급이 높았다는 것. 주말마다 바이크를 타면서 일할 때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것. 월급 받으면 친구들, 동생들 맛있는 거 사주고 선물도 잘하던 사람이라는 것. 한 번은 내가 물었다. 오토바이 타는 거 위험하지 않아? 그랬더니 어차피 결혼하면 안탈 거라고, 이것도 한때라고, 이렇게라도 스트레스 풀지 않으면 직장생활 못 버틸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얼른 그 친구가 결혼해서 오토바이를 그만 타고, 가정을 꾸리고 J 닮은 아들 딸 낳고 잘 살기를 바랐다. 어쩐지 J는 가정이라는 말과 어울리는 사람이어서, 꼭 그랬으면 했다. J 본인도 가정을 바랐는지까지는 물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나는 퇴사 후 통영에서 한달살이를 할 계획이었는데, 어쩌다 일이 쏟아지면서 7월, 8월 내내 통영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9월, 10월에도 시간이 안날 것 같아 11월 쯤 한 달까지는 아니어도 일주일 정도 통영 여행을 계획하면서 그때 꼭 J를 만나 소고기도 먹고 H도 불러서 셋이 오랜만에 이야기나 나누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통영 가까이 사는 친구니까 언제든 통영에 가면 만날 수 있겠지 싶었고, J도 통영 오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그랬다. 그런데 이제 이번 생에는 연락을 할 수도, 만날 수도 없게 되었다. J는 9월 11일에, 오늘 내 생일이라며 올린 내 인스타그램 포스팅에 좋아요를 눌렀다. 아마 그날 새벽 오토바이를 타고 강릉으로 가기 전에 인스타그램을 보고 좋아요를 누른 것 같았다. 아. 오늘 얘 생일이구나. 이따 축하해줘야지. 하고는 오후나 저녁 쯔음 생일 축하해 은경아. 행복한 하루 보내라. 이렇게 카톡을 보냈을 J. 아무 말도 없길래 그냥 바쁜가 보다 했다. 내 피드에 좋아요를 누른 지 몇 시간도 채 안돼서 하늘나라로 갔으리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혼자 간 여행에서 나를 상냥하게 챙겨준 사람, 통영 여행 가면 언제든 편하게 볼 것 같던 착한 친구. 다시 볼 줄 알았다. 나중에 그 친구가 결혼하고 아이를 갖게 되면 따로 만나지는 않더라도 계속 근황 전하면서 그래, 너 잘 살고 있구나. 보기 좋다. 쭉 행복하게 지내. 그런 마음으로 서로의 인생을 응원하며 오랜 지인으로 남아있을 줄 알았다.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세상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당연하지 않은 게 얼마나 많은가. 86년생, 나랑 동갑인 호랑이띠 친구. 올해 10월에는 15년 만에 처음으로 휴가 길게 쓰고 제주도 한달살이 한다며 그렇게 좋아하더니.
나는 가끔 내가 죽어서 갈 곳에서 만날 사람들을 생각한다. 아빠, 외할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아주 어릴 때 먼저 하늘나라에 간 동생, 그리고 J까지. J에게 먼저 말 걸어주고 상냥하게 대해줘서 고마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니가 같이 가자던 그 식당에 난 가볼거고, 가끔은 너 있는데 들르겠노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니가 가고 나서 내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앞으로도 잘하면서 살겠노라고. 그러니까 너도 잘 지내다가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고,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 두 팔 가득 품고 따뜻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서 꼭 오래오래 잘 살다 가라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