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고 싶은 말투
올 한 해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내면의 편안함이 연기처럼 피어 나와 곁에 있는 사람까지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갓 뿌린 향수보다 겨울 스웨터에서 묻어 나오는 잔향 같은 포근함. 안식처란 표현은 너무 거창하고... 잠시 앉았다가 숨 돌리고 갈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면? 머릿속에 한 숲의 모습이 떠올랐다. 푸른 자작나무 숲, 인적이 없이 조용하다. 서늘하지만 신선한 바람 소리가 끊이지 않는 숲에 때때로 한 마리 새가 찾아오는 풍경을 그렸다.
난 평생 무던한 사람이 아니었다. 감정선은 예민하고, 머릿속은 몽상과 고민거리 투성이며, 투철한 주체성을 간직해 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간 삶의 굴곡을 지나오며 내려놓음을 배우게 되었고 이전보다는 한결 가벼운 사람이 되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쉽게 고쳐지지 않는 나의 딱딱한 모습이 있는데 바로 갈등 상황에서 발현되는 나의 정나미 없는 말투였다.
나도 타인의 말과 반응을 굉장히 신경 쓰는 편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감정을 배려하여 부드럽게 말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상대방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단어의 뉘앙스까지 고려하여 오해를 최소화한다. 그런데 이런 나의 장점이자 사려 깊은 노력이 극도의 스트레스나 분노가 느껴지는 시점에는 아주 매몰찬 무기가 되어버린다.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리던 마음은 상대방을 관통하는 날카로운 시선이 되고, 단어의 함의까지 신경 쓰던 센스는 논리를 따질 때 빛을 발한다. 그래서 문제 상황에 직면하면 상대방의 판단과 주장이 합리적인지, 타당한지, 개연성과 인과 관계가 허술하지 않은지 철두철미하게 관찰하여 나의 의견을 전달한다.
그때 내 말투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고 약점이 잡히지 않기 위해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고 추상화된 표현을 지양한다. 둘째, 시시비비를 올바르게 가릴 수 있도록 갈등과 관련 있는 시간과 날짜 등의 숫자를 최대한 정확히 기억해 내어 증거로 사용한다. 셋째, 자칫 불리해질 수 있는 발언이나 표현에 따라올 반응과 그에 대한 대처 방안을 미리 생각해 놓는다. 넷째, 감정이 격앙되어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감정선, 목소리와 어조를 건조하게 다듬는다.
이런 특징들이 한데 모이면 상대방으로 하여금 굉장한 압박감을 느끼게 하나보다. 그리고 빈정 상하다 못해 재수 없게 느껴지나 보다. 우리 엄마는 나와 갈등을 빚으면 항상 이렇게 말했다. '너랑 말하면 취조받는 것처럼 긴장이 되고 머리가 하얘져서 말을 못 하겠어.' 난 그 말이 너무 듣기 싫었다. 나는 엄마를 단 한 번도 범죄자 취급한 적도 없고 취조할 의도도 없었다. 다만 갈등 상황에서 오해 없이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서로 언성 높이며 싸우기 싫어 선택한 방법이었다.
최근에 어떤 자리에서 나처럼 말하는 사람을 처음 마주하게 되었다. 갈등 상황은 아니었고 어떤 사안에 대해 함께 상의하고 결정해야 했다. 그런데 난 너무 숨이 막혔다. 그 사람과 대화할 때 나의 목소리는 자신감이 없었고, 목소리는 가늘어졌으며, 말을 꺼내기 두려웠다. 그러다 보니 그 사람의 말은 내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 자리를 벗어나고만 싶었다. 그때 엄마의 말이 떠올랐고 그 즉시 나의 모습이 너무 싫어졌다. 내가 그 말투를 고치지 않으면 내 곁에서 힘겨워할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평소에 그런 말투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 함께 어우러 지내다 보면 의견이 충돌할 때도 있고 오해가 생길 수도 있는데 매번 저런 말투로 대화를 이끌어간다면... 가족, 친구, 동료들이 나로 인해 얼마나 힘들어할지 느껴졌다. 그래서 요즘 말하는 방식을 조금씩 고쳐보고 있다. 관찰 후 바로 판단하여 시시비비를 가리는 대신, 관찰 후 상대방의 생각을 먼저 물어보는 순서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일상을 살아가는 내 마음은 이전보다 조금 더 편해졌을지 모른다. 주변인들도 내게서 조금 여유가 느껴진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 말투를 고친다면 더욱 편안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말도 못 꺼내겠는 사람 말고 무슨 말이든 꺼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