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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니 Oct 30. 2024

기쁜 소식보다 더 기쁜 것

그것은 우리의 관계

기쁜 소식보다 더 기쁜 것은, 그 소식을 나눌 수 있는 우리의 관계이다.


지금보다 머리도 마음도 덜 영글었을 적, 친구의 좋은 소식을 듣노라면 우정에 기반한 축하와 함께 어설픈 연기를 하곤 했다. 본래 표정을 못 감추는 나이기에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부러움과 질투를 감춰야 했기 때문이다. 온전히 순수하게 축하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싫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자연스레 피어 나오는 감정을 다스릴 방법은 몰랐다. 그래서 연기만 늘었다. 그래도 발연기 수준을 못 벗어났지만.


어느덧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나서니 나와 친구들의 환경은 빠른 속도로 확장해 갔다. 가정과 학교의 품 안에서, 회사와 사회로. 고향과 동네를 벗어나 서울, 그리고 외국으로. 우리의 세상이 넓어져가는 만큼 경험의 폭도 팽창했고, 각기 다른 경험을 통해 삶의 미각을 느끼게 되었다. 뼈저린 실패로 한약보다 쓴 맛과 캡사이신보다 날카로운 통증을 느낀 이도 있었고, 우연이든 노력이든 성공의 달콤함을 만끽하는 이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달콤함이다. 나만 못 느껴도 부아가 치밀고, 다 같이 느껴도 내가 더 맛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십 대 후반까지는 그렇게 삶의 미각에 집중했던 것 같다. 내 미각 중 어떤 감각을 더 자주 경험하는지. 그런데 삽십 대 초반이 되면서 감각 인식에 대해 둔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친구의 기쁜 소식을 어떠한 감정의 방해 없이 기쁨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축하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소식을 나에게 순수하게 전해주는 우리의 관계가 너무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정한 벗이기에, 나의 벗은 내가 함께 기뻐해주리라는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굳이 ‘내 자랑이 아니라~’, ‘운이 좋아서~’라는 구태의연한 쿠션 멘트를 붙이지 않고서 날 것 그대로의 행복감을 나타내어도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난 그의 기대에 기꺼이 전심으로 부응해 주었다. 점점 세상의 때를 한 겹 한 겹 쌓아가는 우리네 모습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티 없는 편안함 그 자체였다. 




나도 믿음이 있다. 나를 향한 너의 기대가, 너에게도 동일하리라는 것을. 지치고 힘겨운 이 시기를 잘 이겨내어 나의 기쁜 소식을 너와 함께 나누고 싶다. 그때 너도 함께 기뻐해주렴. 그것 또한 작은 희망이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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