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영화사는 매력적인 고전을 사람들에 알리는 일을 많이 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백설 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인어공주> 등등. 나도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고전을 먼저 접했는데, 어른이 돼서는 영화로 보았던 고전들을 텍스트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글을 읽고 텍스트를 해석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짜릿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더 적극적으로 찾아보게 되었다.
디즈니에서는 대부분 원작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지만 <인어공주>는 원작과 다른 결말로 영화가 끝나는데, 「인어공주」에는 나이가 조금 어린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주제를 다루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인어공주」는 사랑과 감정 그리고 불멸을 갈망하는 삶에 대해서 다룬다.
바다 밑 깊은 곳에서는 용왕이 산다. 용왕에게는 딸이 여섯이었는데, 「인어공주」의 주인공은 용왕의 마지막 딸이다. 이 공주는 다른 공주와 특별히 다른 점이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바다 위에서 내려온 하얀 조각으로 깎아 만든 아름다운 소년의 조각상을 매우 아낀다는 점이었다. 인어공주는 15살이 될 때 바다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허락을 맡았고, 그때 검은 눈동자의 늠름한 왕자를 보게 된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다. 인어공주는 할머니로부터 인간은 영혼이 있기 때문에 불멸한다는 말을 듣는다. 반면에 인어는 인간보다 3곱절(300살)까지 살 수 있지만 영혼이 없기 때문에 영원한 삶을 살 수 없다. 할머니는 왕자가 인어공주를 사랑하면 인간의 영혼이 인어공주의 몸으로 들어오게 되고, 그렇게 되면 불멸의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인어공주는 두 가지를 원한다. 인어공주는 두 다리를 얻기 위해서 바다의 마법사인 마녀를 찾아간다. 바다의 마녀는 인어공주에게 이렇게 말한다.
"두 다리를 원하지? 그렇게 해서 젊은 왕자가 너한테 사랑에 빠져 그 왕자뿐만 아니라 불멸의 영혼을 얻으려고 하는 거지?"
인어공주가 원한 것은 왕자의 사랑이다. 왕자의 사랑을 얻게 되면 자연스럽게 불멸의 영혼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다. 사랑을 얻게 되면 영혼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되자, 인어공주는 대가를 치루어야 하는 끔찍한 상황에서도 결연히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 자신의 신체를 희생하는 일조차도 자신의 갈망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공주는 왕자가 자신을 사랑하며 그녀의 붉은 입술에 키스를 하고, 그의 머리를 인어공주의 가슴에 묻었을 때 이렇게 느낀다.
그때 인어공주는 인간으로서의 행복과 불멸의 영혼을 꿈꾸었다.
인어공주가 원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행복(왕자와 사랑을 나누는 것)과 영혼(불멸의 삶)이었다.
「인어공주」에서는 사랑이 불멸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한다. 사랑이 어떻게 불멸성과 연결되냐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려보라.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한 감정을 공유하고 싶다고 느끼지 않는가?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고, 영원한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싶어 한다. 사랑이 불멸의 삶을 이끄는 고귀한 감정이라는 것은 문학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두 사람의 감정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지만, 둘은 죽음 이후에 누리는 영원한 삶을 갈망한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그런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연출된다. 내가 고등학교 때 개봉했던 <미라>(1999년)를 보면 이모텝이 아낙수나문을 사랑하는 모습들이 나오는데, 두 사람이 사랑과 영원한 삶을 누리기 위해 계획한 일들이 저주의 시작으로 드러난다.
안데르센 동화의 세계관은 여러 가지 관념들도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에 영향을 주는 세계는 기독교 세계이다. 영혼의 불멸을 이야기하며 영원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기독교의 핵심 교리 중에 하나인데, 영원성이 시작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속성 중에 하나가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요한일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 - 요한1서 4장 16절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잘 모를 테지만, 교회를 다니는 가장 큰 정확한 이유는 영원한 삶을 살기 위해서라고 말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게 되면 다시 부활하게 되고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된다.)
영원한 것에 마음을 두는 것의 시작은 사랑이다. 사랑은 매우 강력한 감정으로 그 어떤 것보다 강하다. 지혜의 왕 솔로몬도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사랑이 얼마나 강력한지, 솔로몬은 죽음 같이 더 강력하다고 말했다. 이 세상에서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것이 죽음인 것을 생각한다면, 죽음보다 강한 것은 없다.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아가 8장 6절)
기독교 세계관의 영향을 받고 있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인어공주는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애를 쓴다. 그러던 중에 사랑의 감정을 절실하게 느끼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고, 그 경험은 영원한 삶으로 나아가는 결정적 동인이 된다.
인어공주가 흘리는 눈물은 사랑의 감정과 연결된다. 눈물은 인어공주가 느낀 사랑의 감정이 피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본질적인 경험으로 자리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눈물은 인어공주가 겪는 심리상태를 보여준다. 감정을 느끼고 싶지만, 그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어공주는 어려움에 처한다. 15살 이후에 바다 밖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여섯째인 인어공주는 마지막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언니들이 먼저 바다 밖으로 나가서 자신만 혼자 바다 아래 남았을 때 인어공주는 울고 싶었다. 그러나 눈물이 없었다.
그럴 때면 꼭 울어야만 할 것 같았다. 인어공주는 눈물이 없었다. 그 고통은 더욱 심했다.
인어공주는 또 한 차례 감격이 격해지는 경험을 한다. 인어공주는 왕자를 자신이 바다에서 구해준 것을, 왕자가 알지 못하는 것을 한탄한다. 왕자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자신이 왕자가 사모하는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못하는 복잡한 감정에 놓이게 되자 감정이 복받친다.
인어공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녀는 울지 못했다.
마지막에 인어공주는 눈물을 흘린다. 왕자의 사랑을 받지 못해, 왕자의 결혼식 다음날 물거품이 된 후 공기의 딸들(정령들)을 만난 후, 정령들은 전심전력을 다하며 불멸의 영혼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눈물을 흘리게 된다. 인어공주가 흘리는 눈물은 불멸의 삶을 응시할 때 나타난다.
인어공주는 눈을 들어 거룩한 태양을 바라보았다. 생전 처음으로 그녀는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사랑은 불멸의 삶으로 이끈다. 사랑은 강력한 감정의 모습으로 나타나, 감정을 느끼는 사람의 존재를 스스로 확인시킨다. 사랑의 감정이 절정에 달했을 때 눈물로 표현된다. 영원한 것에 대한 사모함은 사랑의 감정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으며, 눈물로 감정의 상태를 스스로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아이들에게는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마음을 심어줘야 한다. 왜냐하면 영원한 것은 유한한 삶을 지닌 사람에게 중요한 기준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이 유한하고 제한적이며 잊히는 것이라고 가르쳐보라. 타인에 대한 배려는 뒤로하고 이기적인 인간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적으로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