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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aytowin May 26. 2020

사람들은 글을 왜 읽을까?

나는 고등학교 성적이 매우 좋지 않았는데, 교과서에 있는 내용들은 잘 기억한다. 성적보다는 지식을 얻는 데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영어 교과서에 봤던 에드워드 기번의 이야기(기번이 어떻게 책을 좋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 생물 시간에 배운 폐와 심장의 혈액 순환(내 아내는 소아청소년과 세부전문의인데, 내가 혈액의 순환하는 과정을 이야기하면 놀란다), 교련 시간에 익힌 삼각 붕대법(신기하게도 붕대 매는 방법을 지금도 알고 있다!), 지구과학 시간에 외운 지질 연대기를 기억한다(하고 오실데 석탄라. 개를. 굵은 글씨가 연대기 앞글자이다. 캄은 캄브리아기인데, come으로 연상하면 외우기 쉽다). 고등학교 1학년 때에는 국어 선생님을 좋아해서 그때에 배웠던 것은 잘 기억한다. 벌써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1년이 지났다.




욕망과 죽음

23년 전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김현 평론가의 「소설은 왜 읽는가?」는 매우 흥미롭다. 정신분석학을 바탕으로 글을 읽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글을 읽는 이유는 욕망과 관련되어 있고, 그 욕망은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 이 글에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헤라자데 공주가 나오는데, 공주는 살기 위해서 이야기를 짓는다.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왕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공주의 목숨을 살려주게 된다. 김현 평론가는 이 이야기를 근거로 욕망과 죽음을 소설을 읽는 이유로 만들어낸다. 정말 탁월하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1학년 학생에게 이런 글을 읽히다니, 학생들은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었을까? 어찌 되었든 고등학교 국어 교육의 최대 수혜자 중에 한 사람은 나인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글을 읽는 방법과 이론을 가르치는 일이 정말 재미있고,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온 글을 여전히 잘 기억하고 있으니까.




글을 읽는 이유 - 믿음

글을 읽는 이유에 대해서 욕망이나 죽음과 같은 근원적인 것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나의 생각도 비슷하다. 그러나 글을 왜 읽는가에 대해서 나는 욕망이나 죽음보다는 '믿음'을 더 근원적인 것으로 여긴다. 믿음은 근거가 없어도 진행할 수 있는 어떤 것들을 만들어낸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하고자 하는 대로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그런 믿음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그런 믿음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믿음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묻기 이전에 그런 믿음으로부터 다른 것들을 기억하는 일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의 논의를 빌린다면, 우리는 이미 "세계-내-존재"이며 세계와 내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데에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나와 세계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성은 상상 이상으로 견고하고 강력한 영향을 받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존재는 자기 자신을 항상 자기라는 실존을 통해 이해한다. 바로 그것은 내가 지금 나 자신으로서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나 자신으로서가 아닌 존재로 존재하는가, 하는 자기 자신의 가능성으로부터 자기를 이해한다. 이 가능성들을 현존재는 스스로 선택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가능성들 안으로 우연히 빠져들었는가, 그것도 아니면 이미 처음부터 그 안에서 성장하고 있었는가, 이 가운데 어느 하나이리라."


하이데거에 따르면, 나라는 사람이 여기 있는 것은 '여기에 있는 나라는 사람, 자신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하이데거의 논의를 바탕으로, 나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믿음'이라고 여긴다. 내가 말하는 믿음은 근거가 없어도 행동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포함할 수 있다. 믿음은 앞서 있었던 기억들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글을 왜 읽는가에 대해서 조금 다르게 접근하고 싶다. 정신분석학적인 접근보다는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물음은 다음과 같이 시작할 수 있는데, "무엇을 견고하고 단단하게 만들고 싶은가?"라고 묻는다면,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더 굳건하게 만들기 위해서라고"라고 대답할 수 있다.  




내가 하는 일 - 믿음을 강화시키기

글을 쓰거나 글읽기를 가르치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꾸리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시작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삶을 지속하는 방법으로 자신이 익혔던 것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내가 하는 일은 믿음을 강화시키는 일이다. 강화할 때에 적절한 방향으로, 치우쳐지지 않는 방향으로 지도하는 것이 내가 기쁨으로 삼는 일이다. 그리고 강화하고자 하는 부분을 철학적 근거를 사용해서 더 견고하게 만드는 일을 돕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고유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그 경험은 믿음을 강화하는 데에 사용된다. 나는 그 믿음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각자의 경험이 더 나은 생각을 만들어낼 수 있게, 정교하는 만드는 작업을 돕는다. 내가 하는 일은 그 사람의 고유한 어떤 것을 무너뜨리는 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은 그 사람의 고유한 어떤 것을 더 특별한 것으로 만드는 데에 주의를 기울인다.


다양한 사람과 수업을 진행하면, 사람들이 깨어지기 싫어하는 어떤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부분을 알게 되었을 때에 나는 그것을 건드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부분을 나의 선입견으로 수정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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