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읽기의 목적이 새로운 지식을 익히는 데에 있다고 믿는 분
목적: 지식 강화. 남들보다 더 똑똑한 아이 만들기
- 책 읽기의 목적을 달성하면, 공부를 더 잘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 분
목적: 학습 역량 강화. 남들보다 더 공부 잘하는 아이 만들기
안타깝게도 앞의 두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만 주의를 기울이신다면, 자녀분은 평생 책을 읽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책 읽기는 흥미와 놀이에 집중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즐거움을 느낄 때에만 자발적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자발적인 행동에 가장 좋은 자극은 즐거움입니다.
우리가 즐거움 때문에 삶을 선택하는 것인지, 아니면 삶 때문에 즐거움을 선택하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지금 당장은 제쳐 두기로 하자. 왜냐하면 삶과 즐거움은 서로 결부되어 있으며 분리를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활동 없이는 즐거움이 생겨나지는 않으며, 즐거움은 또한 모든 활동을 완성시킨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텍스트로 되어 있는 것은 모두 이야기의 형식을 취합니다. 전문적인 아티클이라도 이야기의 형식을 벗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이야기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이해의 영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신이 이해한 것을 말할 수 없다면, 책 읽기에서 실패한 것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수업을 요청하는 많은 학부모님들 중에서, 자신의 아이가 책 읽기를 매우 좋아한다고 이야기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면 긴장합니다. 그 이유는 아이가 책 읽기를 좋아하는 것은 부모님의 주관적인 판단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라고 소개한 학생과 수업을 시작하면, 간단한 질문조차도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 학생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 학생은 부모님의 통제를 벗어나게 되는 나이가 되면 책을 전혀 읽지 않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책을 흥미롭게 읽은 적이 없으니까요. 더 재미있는 일들이 생기면 그 일들에 집중하게 됩니다. 게임을 하는 것이나 친구들과 지내는 시간을 더 재미난 것으로 여기게 되면요. 보통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이런 상황이 닥칩니다.
한국어를 익힌 후, 문자를 익혀서 소리 내서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 글 읽기 준비는 모두 마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글을 읽는 자녀의 모습을 보면, 굉장히 흥미롭다고 여기게 됩니다. 제 첫째는 여섯 살인데, 한글을 보고 읽어내는 모습을 보거나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True⟫ 시리즈를 보면서 배운 영어 문장을 동생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을 보면 기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저는 제 아이가 책을 스스로 읽게 두진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같이 놀아주는 것에 더 주의를 기울입니다. 저에게는 『아빠 놀이 백과사전』이 있는데요, 아이에게 놀이 카드를 선택하게 합니다. 대신에 놀이 카드를 보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는 일을 하죠. 어제는 "통나무 넘기" 카드를 골랐는데요, 카드를 고르면 자세하게 설명을 해 줍니다. 통나무가 무엇이고, 게임 규칙은 어떤 것인지를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게임에 적용하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아이는 텍스트로 된 정보가 실제로 어떻게 적용하게 되는가를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칼은 모든 아이, 모든 평범한 사람이 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을 하지는 않았다. 마침내 칼은 즐겁게, 점점 더 즐겁게 배웠다. 나는 칼이 배우면서 다양하게 즐기는 것을 느꼈고 그의 정신력이 꾸준히 성장하는 것을 알아챘다. (여기서 칼은 칼 비테의 아들을 말합니다)
- 칼 비테, 『칼 비테 교육법』
그렇기 때문에 정보가 실천적인 지식이 되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책을 읽는 것은 일종의 놀이가 되어야 하고, 놀이함을 통해서 즐거움을 느끼는 과정으로 인지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모든 놀이함은 놀이됨Gespieltwerden이다. 놀이의 매력, 놀이가 주는 매혹은 놀이가 놀이하는 사람을 지배한다는 데 그 본질이 있다. 비록 우리가 스스로 제기한 과제를 실현하려고 하는 바로 그런 놀이의 경우라 하더라도, 놀이가 '제대로 진행되는지' '성공할 것인지' 그리고 '연거푸 성공할 것인지'하는 것은 모험이며, 이것이 놀이에 매력을 준다. 그렇게 시도하는 사람은 사실상 시도되는 사람이다. 놀이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뿐인 경우의 경험이 분명하게 보여주는 바와 같이, 놀이의 원래 주체는 놀이하는 사람이 아니라 놀이 자체이다. 놀이하는 사람을 사로잡는 것, 그를 놀이로 끌어들여 놀이에 붙잡아매는 것은 놀이이다.
-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진리와 방법』
책 읽기는 인간에게만 허락된 놀이입니다. 굉장히 매력적이죠. 매력은 실패를 허락할 수 있는 상황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흥미를 느끼게 되면, 그에 따른 보상이 한참 뒤에 이루어진다는 점은 잊어도 됩니다. 반복적인 놀이를 통해서 얼마든지 기술이 단련될 수 있으니까요. 놀이 자체에 매몰되어서 놀이가 놀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영역은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꾸준하게 글을 읽어주셔야 합니다. 그러나 혼자서 글을 읽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읽은 내용으로 풍성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대화를 통해서 문자를 이야기의 영역으로 끌어오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텍스트는 이야기를 고정한 것(fixed)이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고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또 다른 책을 읽으려 하는 자녀가 있다면 부모님께서는 주의를 기울이셔서 지도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