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적 시간관과 기독교적 시간관
이 소설은 시간에 대해서 다룹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도 이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설 같습니다.
아래는 애플티비에서 보실 수 있는 <파운데이션>입니다.
캡처화면은 초공간으로 진입하기 위해서 우주선 안에 블랙홀을 만드는 장면입니다.
시간은 측정하는 도구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시간 그 자체를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시간에 대한 탐구는 종교에서 먼저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현재에는 철학과 과학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시간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는
존재에 대한 이해와 맞물려 있습니다.
시간을 이해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소설의 매력적인 부분은 힌두교적인 시간관으로 기독교적인 시간관을 흡수하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어쩌면 힌두교적인 시간관이 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가장 합리적인 방법일지 모르겠습니다.
힌두교적인 시간은 순환입니다.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으며,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이 순환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속한 우주는 몇 번째 우주인지 알 수 없습니다.
반면에 기독교적인 시간은 처음과 끝이 있습니다.
힌두교의 시간관은 엔트로피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합리성을 바탕으로 합니다.
반면에 기독교의 시간관은,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사랑을 바탕으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