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시험 준비를 돕는 책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유시민 씨는 사람들에게 전문가로 평가받고 싶어 한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깊이가 있다고 여기는 지식을 펼치는 일을 좋아하는 것 같다(책날개에서 저자는 "5년 넘게 같은 일을 한 적이 없다."라고 말한다). 내가 논평을 하는 이 책은, 저자가 밝히고 있는 대로,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의 부록 편이다. 그러니까 앞에 있는 책은 이론을 다루는 듯하고(안 읽어봐서 모르겠다), 이 책은 실전을 어떻게 준비하는가에 도움을 준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이 책의 띠지를 본다. "혼자서도 할 수 있다!" 정말 대단하다. 앎이란 혼자서 익힐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정말 위대한 아이디어다(만약에 저자가 이제까지 좋은 선생님을 만나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저자가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기를). 책을 보게 되는 독자들은 "혼자서도 할 수 있다!"라는 문구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나의 시간과 돈을 절약해 주는 저자에게 감사합니다", 이런 생각을 할까?
다방면의 준전문가는 필요 없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다양한 분야의 준전문가일 필요는 없다고. 왜냐하면 다방면의 준전문가가 되려면 꽤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여기기에는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다방면의 관심을 두고 노력을 하는 것은 개인에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이 눈여겨보는 분야에 대해 스스로를 전문가로 여기게 하는 과정으로 나아갈 때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타인에게 의미 있는 일로 만들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그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가들이 있다. 인터넷의 도움으로 전문가들과 연락을 하고 도움을 받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저자의 집필 동기
저자는 자녀의 입시를 돕는 과정에서 인사이트를 얻고 입시전문가로 변신한다(나는 저자가 "5년마다" 변신하는 그 변신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모습을 그린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이 책에서 자신의 또 다른 책을 참고문헌으로 넣는 일을 하게 만들었다! 내가 항상 경계하는 것은 인사이트이다. 첫 번째 인사이트는 대부분 검증을 필요로 한다. 첫 번째 인사이트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작업은 타인에게 유익함을 주는 일은 드물다. 왜냐하면 타인에게 검증시키는 일을 맡겨서는 안 되니까. 내가 말하는 검증은 꽤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일이며, 상당한 부담을 느껴야 하는 과정을 말한다. 검증은 책임을 동반한다.
저자가 이렇게 당당히 외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나는 두 가지 정도 추측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구성주의 교육학에 근거하는 듯하고 다른 하나는 저자 스스로가 그런 삶을 즐기는 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생각은 이 책의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다양한 시험의 글쓰기를 소화할 수 있는 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훈련을 한다면, 다양한 시험의 글쓰기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앞에서 논평한 논술 강사들의 책과 다른 부분이 있고, 비슷한 부분도 있다.
책 소개
"혼자서도 할 수 있다!
자기 주도 논술 시험 훈련법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으로 논리적 글쓰기의 비법을 공개했던 대한민국 대표 작가 유시민이, 시험 글쓰기를 준비하는 수험생을 위해 ‘실전’ 특강으로 돌아왔다. ‘시험 글쓰기’란 대학의 신입생 선발 시험, 기업의 사원 입사 시험, 국가 기관의 자격시험, 로스쿨을 비롯한 전문 교육 기관의 선발 시험 등을 말하며, 넓게는 대학에서 치르는 서술형 중간·기말고사까지도 포함할 수 있다. 사실상 몇백만 명이 넘는 수험생이 논술 실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저자는 시험 글쓰기의 특성상 글쓰기 일반론을 다룬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만으로는 논술 수험생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충분히 해소해 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독일 유학생 시절에 석사 학위를 받으려고 노력했던 개인적인 체험과, 딸아이의 대입 논술 시험 준비를 도우면서 느꼈던 깨달음, 그리고 2014년 전국 일곱 곳에서 했던 청소년 논술 특강 경험을 바탕으로 [유시민의 논술 특강]을 저술했다. 이 책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8장에서 요약 서술했던 ‘시험 글쓰기 훈련법’을 심도 있게 풀어내면서, ‘이과 계열’ 수리 논술 시험을 제외한 모든 유형의 논술 시험에 적용할 수 있는 ‘표준 훈련법’을 제시한다." YES24.com 참고
이 책은 '모든' 수험생에게 특성화되어 있다. 이 점이 이 책의 특별한 점인데, 시험 글쓰기라는 범주 안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서 각각의 '다른 형식의 글쓰기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독자층을 "몇백만 명"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그 의도는 성공적인 목표를 달성했다. 2015년에 초판을 발행한 책은 2018년 12월에 6쇄를 찍었으니까.
교보문고에서
나는 지난번에 저자가 새 책을 냈다고 해서 교보문고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책의 내용이 궁금했다기보다는, 책을 어떻게 광고하는지 궁금해서였다. 역시나 대한민국의 대표 작가답게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재밌는 점은 언어의 이중적인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띠지의 광고를 보면,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전에는 다른 분야에서는 비전문가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논평을 하는 이 책은, 저자가 정치가였던 아니었든 간에 비전문가가 썼다는 얘기가 된다. 나도 알고 있다. 출판사는 저자의 이번 책이 진지한 의미에서 쓴 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는 점을. 그렇지만 언어란 그런 것이다. 언어는 지칭하고 있는 부분만을 가리킬 수 없다.
내가 말꼬리를 잡는 어색한 논평을 한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강도 높은 비평을 할 것이며, 그 비평의 목적은 이 책을 읽고 잘못된 길로 가는 학생들을 돕는 데에 있다.
비평 1
- 검증되지 않는 방법의 사용
나는 이 글의 앞부분에서 자신의 진정성을 담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요구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검증은 책임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어떤 일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 많은 관심이 필요하고, 타인에게 유익을 주어야 하며,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만드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는 동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책 뒤표지에는 "2008년 가을, 딸아이 대입 논술 시험 준비를 도우면서 느꼈던 것과 2014년 전국 일곱 곳에서 했던 청소년 논술 특강 경험도 반영"해서 책을 집필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동기로 글을 썼다는 것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다는 마음이 든다.
저자는 학생의 글을 읽고 논평과 첨삭을 한 경험도 없으며, 입시 지도를 하면서 성과를 낸 적도 없다. 그런데 본인은 스스로가 인정한 입시 전문가 또는 시험 글쓰기의 전문가이다. 이런 마음 가짐은 도대체 어디에 근거하는 마음가짐일까? 나는 정말 궁금하다. 어쩌면 저자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이 책을 출간하려고 마음먹을 때에 주변에서 진실한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이 없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비평 2
- 방향성의 부재
모든 시험 글쓰기를 다루고 싶었던 저자의 의도는 책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없게 하는 독특한 책을 만들어냈다. 정확한 근거를 찾기가 곤란한데, 내 생각에 저자는 책을 기획하는 초반부에는 대입 논술용 책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마음에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냈지는 알 수 없지만,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독자의 층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글쓰기 시험을 준비하는 목적을 담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간 것 같다. 아니면 그 반대일 수도 있고. 그래서 이 책에서는 책 제목과 내용 그리고 독자가 일치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다. 문제 분석은 서울대 입시 문제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데, 책을 소개할 때에는 다양한 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글이라는 범주에는 다양한 종류의 글이 포함되고, 그것은 시험이라는 범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는 배경지식을 갖추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중반부에는 배경지식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 분량이 많지도 않은 책에서는 이런 방향성의 부재는 다른 책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책의 앞부분에서는 "초단기"로 시험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서적들을 소개하고, 책의 중반부에서는 "독해할 때는 배경지식을 불러내려고 애쓰기보다는 텍스트 자체가 주는 정보를 남김없이 파악하고 활용하는 데 집중하라"라고 말하며, 후반부에서는 서울대 문제를 분석하면서 "이 책에서 사용한 논술 문제는 공식적인 예시 답안이 없다"라며 자신이 준비한 예시 답안을 실었다. 짧은 책 안에서 전반부와 중반부의 논의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후반부의 예시 답안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비평 3
- 자기 주도 논술 시험 훈련법
자기 주도라는 말은 구성주의 교육학에 근거하는 말인데, 자기 주도라는 말에는 이미 의지가 들어가 있다. 그러니까 자기 주도에 대해서 논의하기 위한 의지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공부를 시작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극인데, 그 자극을 받은 동기가 전제되어 있다는 뜻이다. 자기 주도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정보를 분석하고 종합하는 부분인데, 이미 철학에서는 폰 리히트의 『설명과 이해』 도움으로 이해와 설명이 어떠한 과정으로 이루어지는지 충분히 논의되었다.
이야기가 조금 벗어났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자기 주도 학습 방법으로 우리나라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논술 시험은 글을 쓴다는 점에서 독창적이고 새로운 영역에 놓여 있을 거라 생각하게 만들지만, 학생들의 입시를 돕는 수업 준비에 조금이라도 애를 쓰면, 자기 주도 논술 시험 훈련법은 그다지 유용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대입 논술 시험은 정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비평 4
- 경험의 부재, 머릿속의 시간표
시험 경험이 없는 사람이 만든 메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저자는 진정성을 담기를 원했다. 어떤 목적으로 책을 출간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난 그 진정성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자는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책에는 메모를 사진으로 찍어서 올린 부분이 있는데, 나는 저자가 도대체 왜 이러는지 의아해했다. 저자는 논술 시험을 보면서 메모를 작성하는 데에 주어진 시험 시간의 50% 사용하라고 강하게 주장한다.
나는 이론을 좋아한다. 이론이 없으면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확률적으로 오류의 영역에 있는 결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연하게 오류의 영역에서 만들어진 결과가 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두려운 일에 속한다. 나의 이성은 그런 점을 항상 불안해한다.
그렇지만 더 불안한 것은 경험도 없는 사람이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무지한 사람들을 인도할 때이다(우리나라 말에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을 좋아한다). 메모로 주어진 시간의 절반을 사용하라니, 논술 시험에는 개요가 필요 없기 때문에 메모는 무의미한 작업이다. 저자는 논술 시험을 치른 적도 없고 지도한 적도 없기 때문에, 자신이 만들어낸 독특한 과정에 의미를 담고 싶어 하는 강한 마음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나는 그렇게 여기고 싶다. 저자는 머릿속에서 시간표를 만들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검증조차 하지 않은 시간표. 정보를 전달하는 입장에서 저자의 아이디어를 평가하자면,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생각하게 된다.
여기에서 저자는 자신만의 방법이 독특하다고 여기면서 "이 책에서 제안하는 '자기 주도 논술 시험 훈련법'이 오늘날 학교와 학원에서 널리 쓰는 논술 시험 훈련법보다는 훨씬 더 효과적이라 믿는다"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학교와 학원에서 가르치는 자기 주도 학습 이론과 저자가 이야기하는 자기 주도 학습 이론은 어떤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가 어떤 방법을 이끌어내는지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문제의식으로 시작한 이 책에는 그 문제점을 풀어낼 이론도 경험도 체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비평 5
- 논술에는 정답이 없다
정말 그럴까? 대학에서 제공하는 시험 문제를 분석한 해답을 보라. 제시문의 출처와 점수 비중이 항목별로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채점자는 항목별로 채점을 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만약에 정답이 없는 시험이라면, 그것이 공정한 시험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저자의 말대로 시험은 변별력을 위한 제도인데, 변별력이 없는 시험이 있다면 그것이 학생들에게 용인될 수 있겠는가?
저자는 의도적으로 기출문제에 답안을 제공하지 않는 문제를 선택했다(대학 입학처는 매년 기출문제와 해제를 같이 제공하지만, 그렇지 않은 해도 있다). 왜 그랬을까? 자신이 해답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아니면 자신이 이야기한 부분을 검증할 수 있는 영역을 더 멀리 안드로메다에 놓고 싶어서? 누구의 손에도 닿을 수 않는 영역으로 옮겨놓은 후에 자신의 생각을 굳건하게 만들고 싶어서?
내가 생각하는 상식은 이것이다. 해답을 놓고, 그 해답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개진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더 타당한 일이라고 여길 수 있다. 왜냐하면 정보는 비교할 때에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식이다. 그 점을 거의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대입 논술을 집필하는 다른 저자들도 대학에서 제공한 해제를 반드시 실는다. 그런데 저자는 해제가 없는 연도의 시험을 선택하고, 자신의 주장을 정답으로 여기게 만드는 편집기술을 사용했다.
이 책에 대한 평가
- 논술 시험을 준비했던 학생으로서의 경험이 있는가? X
- 논술 시험 준비를 돕는 강사로서의 경험이 있는가? X
- 논술 시험 준비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안이 있는가? X
결론
유시민 씨에게는 현명한 조언자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