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 토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ssaytowin Jun 08. 2019

중학교 방과후학교에서 (4/5)

독서영화 논술반

『하이킹 걸즈』의 김혜정 작가와의 만남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 이후의 시대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의 삶과 사고에 영향력을 주는 어떤 원칙들이 있다면 포스트 모더니즘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이 시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나 기준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상대성

포스트 모더니즘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상대성 같다. 그러니까 현대인들은 이전 시대 사람들이 굳건하게 믿고 있거나 진리라고 여기는 부분들에 대해서 다른 각도와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여긴다. 이 시대에 가장 값진 가치를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토론을 하면서 더 나은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자연스러워졌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내가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이나 텍스트를 읽어낼 때에는 철학적 해석학에 기대고 있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이 글을 읽는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알았어. 근데 언제 즈음 그 얘기를 할 건데?" 나는 "중학교 방과후학교에서"라는 제목의 글쓰기가 끝나면 바로 진행하겠다. 약속한다). 철학적 해석학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상대적 가치와는 조금 방향을 달리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왜냐하면 철학적 해석학의 방법은 텍스트에 남겨진 것을 얼마나 더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가치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숙고할만한 대상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면, 나는 상대적인 것에 가치를 두고 있는 것보다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는 편이 낫다고 여긴다. 이 점을 텍스트 읽기에 적용한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이렇게 생각하는 게 더 설득력 있어 보여'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텍스트의 크기는?

나는 여러 차례 수업을 하고, 지금도 하고 있지만, 매번 수업을 할 때마다 텍스트 읽기의 점점 더 깊어지는 것을 느낀다. 10여 년 전에는 셔우드 앤더스의 「달걀」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나의 이해력은 10여 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고, 나이가 들어감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키케로도 『노년에 관하여』에서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분들의 쾌락은 학구열인데, 학구열이란 현명하고 잘 훈련된 사람의 경우에는 나이와 더불어 자라난다네. 솔론은 앞서 말한 시구에서 자기는 늙어가며 날마다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웠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의 말에는 일리가 있는 걸세. 또한 확언하건대, 이러한 정신적인 쾌락보다 더 쾌락은 존재할 수 없네"(천병희 역)

 


텍스트는 고정되어 있고 변하지 않는데, 이해력이 좋아진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키케로의 말을 텍스트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나이가 들수록 이해력은 좋아지고, 공부에 열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꾸준한 훈련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 전제가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예전에 읽었던 텍스트에서 이해하지 못했던 점이 있었다는 말이고, 시간이 지나서 경험이 쌓여서 읽어낼 수 있는 부분이 생겼다는 말과 같다. 텍스트를 대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본다면, 읽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 텍스트를 접근할 수 있는 깊이와 너비가 달라진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텍스트의 깊이와 너비는 어느 정도일까?


폴 리쾨르는 『텍스트에서 행동으로』에서 텍스트의 크기는 "우주보다 크다"라고 말한다. 텍스트를 접하는 사람은 텍스트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보통 텍스트를 읽는 가운데에 길을 잃기가 쉽다. 그래서 텍스트의 일부분을 보고 어떤 부분이 옳다고 이야기하거나, 어떤 부분은 틀리다고 이야기한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한 가지 텍스트를 읽고 토론하는 시간에는 텍스트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분명하게 알게 되는데, 자신이 생각하는 부분이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부분과 차이가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업 준비에서

내가 지향하는 것은 완벽한 해석이다. 잠정적으로는 완벽에 가까운 해석을 하는 것인데, 해석을 하는 현재에는 그 해석이 완벽하다고 여길 수 있도록 끝까지 밀어붙인다. 수업을 준비하는 동안 나올 수 있는 질문에 대해서 답을 준비하고, 내가 가진 의문을 해결하도록 애를 쓴다. 텍스트의 크기는 너무나도 커서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질문이 나오면, 우리는 수업에서 토론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은 메모를 해 두고 남겨둔다. 남겨둔 부분은 다음 주 수업에서 다시 짧게 이야기를 하거나,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해결하지 못했다고 이야기를 한다.



주제 찾기 - 복잡한 것을 단순 명료하게

주제를 찾는 과정은 매우 흥미로운데, 주제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과정을 풍성하게 만든다. 주제 찾기의 역할은 단편적인 모든 부분을 엮어서 통일되게 한다. 풀어서 쓰면, “그러니까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데?”라는 질문의 적절한 답을 찾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주제가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은 특별한 공동의 목표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지만, 텍스트를 탐험하는 여정에서 도착지가 있다고 여기면, 해결하지 못할 것 같은 문제들도 협력해서 해결할 수 있게 만든다. “우리에게 주어진 텍스트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주제 찾기는 가다머가 『진리와 방법』에서 이야기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이런 방법으로 수업을 진행했고, 매 시간마다 풍성한 논의를 끌어냈다. 학생들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이 나의 주된 역할이었으므로, 미궁 가운데에서 길 찾기를 하는 시간은 흥미로운 시간이 될 수 있었다. 이 시간은 텍스트가 지닌 복잡하고 까다로운 부분을 접근하기 쉽고 의미를 담을 수 있도록 단순 명료하게 바꾸는 시간이 된다. 나는 이러한 방식의 글 읽기가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점점 더 핵심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유튜브에서 짧은 영상이 더 설득력 있고, 간결한 트위터가 더 영향력이 있는 것처럼.


토론의 역할도 중요한데, 토론은 높은 산에 오르는 등반가에게 베이스캠프 같은 역할을 한다. 베이스캠프는 등반가들이 목표한 곳에 이를 때까지 지속적인 지원을 한다. 등반가들은 정상에 오를 때까지 답답한 시야 때문에 목적의식을 잃어버릴 수도 있지만, 베이스캠프의 도움으로 이루어야 할 목표를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다. 마침내 정상에 오르게 되면, 등반가는 탁 트인 시야를 확보하게 되고, 이제까지의 여정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하이킹 걸즈』의 김혜정 작가와의 만남


<좋은 밤 되세요>의 채민기 감독과의 만남


<회오리바람>의 장건재 감독과의 만남


『위저드 베이커리』의 구병모 작가와의 만남


나는 6학기 동안 방과후학교에서 독서영화 논술반을 진행하는 동안 두 분의 영화감독과 두 분의 작가를 초대해서 강연을 들었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구병모 작가는 내 수업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는데, 작가님이 강연에서 문학이론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에 입각한 문학 이론. 구병모 작가의 이야기를 듣자 나는 매우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데, 강연이 끝나고 학생들이 나의 수업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중학교 방과후학교에서 (3/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