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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aytowin Jul 27. 2019

독서 토론 -「에밀리에게 장미를」 구조주의적 분석 방법

구조주의적 분석 방법은 자연과학적 방법이고, 철학적 해석학은 정신과학(인문과학)의 방법이다. 텍스트를 이해할 때에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하면 여러 모로 유익하다. 그렇지만 텍스트를 읽을 때에는 반드시 구조주의적 분석 방법이 동원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연구를 하거나 정답을 찾아내는 경우에는 유익하지만,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지난번 글 - 제시문 이해의 기본 특징들 (3/3)에서 이야기한 대로, 여기에서는 윌리엄 포크너의 단편 소설 「에밀리에게 장미를」을 통해서 구조주의적 분석 방법의 이점을 확인해 보고자 한다. (논술 입시를 준비하는 책이나 언어 영역을 준비하는 교재를 보면 자연과학적 분석 방법을 많이 신뢰하고 있는데, 엄밀한 의미에서는 나는 그러한 방식이 구조주의적 방법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분석하는 데에 있어서 일정한 규칙이나 약속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윌리엄 커스버트 포크너(1897년 9월 25일 ~ 1962년 7월 6일)는 미국 작가이다.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194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윌리엄 포크너

윌리엄 포크너는 철학적 해석학을 이해하고 있는 매우 드문 작가 중에 한 사람인데, (물론 철학적 해석학을 공부하고 이야기를 했다는 말이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텍스트는 어떠한 것인지 『작가란 무엇인가』의 인터뷰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 스타인(인터뷰어): "작가로서의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윌리엄 포크너(인터뷰이): "만일 제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누군가 저 대신 글을 쓸 수도 있었겠지요. 헤밍웨이든 도스토예프스키든,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셰익스피어의 극을 실제로 썼다고 추정되는 작가 후보로 세 사람이 거명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런 것을 증명할 수 있지요. 그러나 누가 『햄릿』과 『한여름 밤의 꿈』을 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써서 이 작품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예술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술가가 창조한 작품만이 중요한데, 그 이유는 예술가에 대해서는 새롭게 말할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셰익스피어, 발자크, 호머는 모두 같은 것에 대해 썼으며, 만일 그들이 천 년, 이천 년을 더 살았더라면 출판업자들은 다른 작가들이 필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굵은 글씨의 강조는 내가 했다.)


작품에서 작가란 중요하지 않다. 작가가 작품을 탈고한 순간 작품은 작가의 것이 아니다. 윌리엄 포크너는 작품을 "텍스트의 사물"로 보고 있으며, 텍스트의 이해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철학적 해석학의 입장을 보여준다.



「에밀리에게 장미를」 연대기

나는 윌리엄 포크너가 이야기를 짓는 방법이 매우 탁월하다고 느낀다. 「에밀리에게 장미를」은 매우 멋진 문장과 흥미로운 문체들로 되어 있다. 또한 담고 있는 이야기는 마음을 오랜 시간 동안 누른다. 여기에서는 텍스트를 이해할 때에 '구조주의적 분석 방법'이 어떤 도움을 줄 있는가에 대해서 다룬다.


이 단편 소설은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진행되지 않아서, 독자는 화자가 에밀리에 대해서 생각나는대로 이야기를 풀어쓰는 것처럼 느낀다. (나는 그점도 정말 마음에 든다.) 그러나 구조주의적 분석 방법을 사용하면 이 소설이 매우 짜임새 있는 이야기로 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래의 표는 내가 수업을 준비할 때에 사용하는 연대기이다.


책 페이지는 『필경사 바틀비 - 창비 세계문학단편선 미국편』. 파일이 필요하신 분은 leesangyun@essaytowin.kr로 연락주시면 보내드립니다.


에밀리의 나이에 맞추어서 연대기를 정리하였다. 그렇지만 위의 표의 "찾아보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시간의 순서대로 글이 전개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꽤나 복잡한데, 구조주의적 분석 방법에 의해서 접근을 하면, 「에밀리에게 장미를」이 매우 정교하게 짜여있는 글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소설가 이문열 씨의 도움을 받아서

나는 수업을 준비하면서 소설가 이문열 씨의 책 -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 1』에서 도움을 받고자 했다. 내가 고등학교 때에 처음 나온 책인데, 거기에서 이 소설에 대한 해설을 읽은 기억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문열 씨의 해설에는 틀린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이문열씨는 에밀리가 죽은 나이를 착각하고 있었다. 에밀리는 74세에 죽게 되는데, 에밀리의 죽은 나이를 이문열 씨의 머릿속으로 상상해서 해설을 한 것 같았다. (아무튼 그냥 근거 없는 추측이다.) 이문열 씨의 해설에는 "오십년이 넘는 세월과 죽음의 파괴력을 뛰어넘어, 이미 형체조차 없어져버린 연인의 시체와"라는 구절이 있는데, 만약에 호머 배런과 오십년 동안 같이 있었다면, 에밀리가 죽은 나이는 85세가 되어야 한다.  


내가 앞의 표를 만들게 된 것은 이문열 씨 덕분이다. 이문열 씨의 해설에서 틀린 부분을 잡아내려고 시작한 것인데, 그 덕분에 이 소설이 이토록 정교하게 짜여있음을 알게 되었다. 진심으로 이문열 씨에게 감사한다. 우리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가면서 발전하는 존재이니까. 이 글을 읽는 분이 내가 만든 표를 수정하실 수 있다면 더 좋겠다.  




매우 흥미로운 점 - 해석학적 순환의 도움을 받아서

연대기를 만들면서 알게 된 것인데, 에밀리는 1934년에 죽었다. 『필경사 바틀비 - 창비 세계문학단편선 미국편』에 있는 해설에 따르면, 이 단편이 발표된 것은 1930년이고. 이 단편이 출판된 것은 1931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것일까? 작가가 착각을 한 것일까? 그럴리 없을 테지만, 혹시라도 착각해서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도 해석학적 순환의 도움을 받아서 정보들을 완전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정보에 대한 관점을 만들어서, 착오가 아니라 의도적인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얻은 정보가 정확한 정보라면, 나는 그게 정확한 정보이길 바라는데, 에밀리가 죽은 연도를 1934년으로 한 것은 작가의 의도적인 작업이었다고 본다. 에밀리가 죽은 연도를 책의 출판연도 이후의 연도로 설정한 것은, 에밀리가 매우 현실적인 인물이지만 동시에 가공의 인물이라는 것을 의미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그와 비슷한 예로, 나보코프의 『롤리타』 의 주인공 이름이 험버트 험버트인데, 그의 이름이 소설을 허구로 만드는 데에 큰 의미를 가지게 하는 것처럼. (작가는 자신이 지은 이야기가 허구임을 밝히기 위해서 주인공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름과 성이 똑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성과 이름이 똑같은 분이 계시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실 수 있다. 혹시 조선의 최고 천재? 과거에만 9번 급제하신 분? 5천원권에서 봉사하시는 분? 율곡 이이? 그 분은 성과 이름의 한자가 다르다. 발음만 똑같고 다르다.





자연과학적 방법의 한계

자연과학적 분석 방법으로 텍스트를 이해하면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하는 곳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구조주의의 분석 방법으로는 이 소설의 주제를 알아낼 수는 없다. 그리고 약속된 언어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철학적 해석학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주제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이미지와 상징,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상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에도 주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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