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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e Jun 30. 2020

제품 탄생 과정을 안다는 것

제조업 개발 프로세스

디자이너를 하다가 PM 겸 기획을 하다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제품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길러졌다는 것이다. 제품의 시작 전부터 출시가 되는 끝까지 업무 프로세스를 알 수 있고 시장 상황에 맞게 능동적으로 방향성을 끌어 갈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디자인을 할 땐, 디자인에만 집중하며 최고를 뽑아내기 위해 깊게 파고들었다. 지금은 이 제품의 사업적 형태, 가격대, 소비자 성향, 시장 상황, HW/SW Spec 등을 고려하며 조율하고 제품을 만들어 가다 보니 '최고의 선택'보다 '최선의 선택'을 하는 방향을 찾아가곤 한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다 보면 적절한 출시 타이밍을 놓치거나 지나치게 비싸져 판매량이 낮을 수도 있다. 이젠 좀 더 넓게 바라보며 힘을 뺄 곳과 집중할 곳을 구분하여 완성도에 밸런스를 맞춰간다.

특히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제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단계별로 알게 되는 것이 참 재밌다. 보통 제조업은 거의 비슷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크게 아래와 같이 이루어진다.

기획 → 기술 검토 → Kick off → HW 설계/기구설계/제품 디자인 설계 → SW 설계 → 검증 → 사용자 테스트 → 생산기획 → 포장재/마케팅 기획 → 출시 

그중에서도 'Kick-Off(본래 축구용어로 경기 개시 때 중앙선에서 공을 차는 것을 말한다. 보통 회사에서 본 프로젝트의 유관부서에 리뷰를 하며 개발 시작을 알리는 것을 뜻한다.)' 전까지가 기획자로서 핵심 업무다.


# 기획

내가 처음 담당한 제품을 기준으로 제조업에서의 기획 단계를 나열해보았다.

- 시장 방향성 및 사업 목표 설정

모든 부서에는 5년 계획안, 연간 계획안 등 각 부서 업무 성향에 맞는 비전이 있다. 내가 속해있는 기획팀에서도 매년 시장 전망 및 업계 동향, 자사 SWOT 분석을 통해 Road Map을 짠다. 소비자에 따라 가격대, 기능 범위 등으로 나누며 제품 라인업을 구성한다. 내가 있는 부서는 B2B 기획부서로 보유하고 있는 자사 제품을 고객사에 맞게 제안하고, 고객사의 요청에 따라 신규 제품 기획하기도 한다.

- 자사 분석(SWOT)

차량 통합 시스템인 AVN 분야는 다른 자사 제품들을 접목하여 시장에 자리 잡을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이었다. 게다가 진입장벽이 높고 보수적인 업계이기에 동일한 제품을 만들어 납품했다는 이력 자체가 큰 경쟁력이었다. A사와 M사는 서로 경쟁 업체였다. 작년에 M사로 제품을 만들어 납품했었는데, 이번에 계약을 하려 했던 A사는 이 점을 제품 1차 검증을 완료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자사 분석을 통해 '제작/납품 경험이 있다는 것',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둘 다 보유하고 있어 함께 제작 가능하다는 것', 'A사의 특징에 맞게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및 기구 설계가 가능함'을 장점으로 하여 어필하였다.

- HW/SW 사양 선정

HW사양은 제품 원가, 공급가, 기능 구현 범위, SW 지원 범위에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자동차 쪽은 작은 부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운전자 안전에 위험을 줄 수 있고, 차량 자체를 교체해줘야 하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신기능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기능 작동이 장기간 이상 없고 차량과 잘 연동되는 안정적인 상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업계였다. 그래서 기존에 개발하고 납품한 이력이 있는 HW Platform을 기반하여 제품 안정성이 검증된 사양으로 일정과 개발비를 줄이고자 하였다. SW 사양은 리눅스, 안드로이드 등 OS에 대한 운영체제 부분과 라디오, DMB와 같은 구현 기능 부분으로 기능 사양을 정의한다. 

- 디자인 컨셉 기획 및 기능 선정 (시장 기능 분석 및 신규 기능 발굴)

이때가 가장 재미있게 일을 했다. 시장 동향 및 소비자 분석, 법규 분석 등을 통해 신규 기능을 기획하고 기존 기능을 개선하여 기능을 선정한다. 요즘 자동차 디스플레이는 wide의 넓은 화면을 보여 주며 스마트폰 UI와 비슷한 사용성을 가지고 있었다. wide형 디스플레이로 선정하고, 카드형 런처를 통해 실시간으로 내비게이션과 이용 중 미디어의 현황을 볼 수 있도록 컨셉을 잡았다. 차량을 브랜드별로 멀티미디어 구조를 분석하여 전체적인 UX 컨셉, IA(Information Architecture)를 구성하였다. 내가 UX디자인을 할 땐 IA는 Menutree와 같은 역할이었다. 그래서 버튼을 누르는 단계로 depth로 구분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기획자로 UX기획팀에 기능의 구조를 전달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사용자에게 정말 필요한 기능과 화면 구성이 무엇인지, 사용자 관점에서 전체적인 방향성을 분석하게 되었다. 필요 기능을 선별하고, 기능별 중요도를 분류하고, 기능 안에서 세부적으로 유사한 항목으로 depth를 구성하였다. UX 디자인을 했던 경험 덕분에 화면 컨셉과 기능별 배치, 사용자 동작안까지 함께 고려하며 기능 구조를 설계할 수 있었다.

- 개발비/원가/판매가 설정 (BEP 이용)

첫 번째로 개발비를 산정했다. 주요 개발비는 개발을 위한 단말 샘플 제작비, 기구 금형비, 외주비, 매뉴얼 제작비 등으로 산정하였다. 두 번째는 원가였다. 원자재 비용, 운송비, 라이센스 비용, 부품 비용 등으로 1대 당 원가를 산정하였다. 세 번째로 판매가는 원가를 기준으로 하여 유통 마진 및 소비자/시장 기대가를 고려하여 산정하였다. 마지막으로 대략적인 기간 안에 매월 몇 대씩 판매할 건지 예상 판매 수량을 가안으로 잡고 BEP(Break Even Point)를 계산해보았다. BEP는 총비용과 총소득이 동등해지는 지점인 '손익분기점'을 말한다. BEP를 계산하면서 '고정비'인 개발비는 유지하되, '변동비'인 원가와 수량을 조정하며 대략적인 소비자가를 재산정하고 이익이 나는 시점을 예측하였다.

- 출시 일정 선정

자동차 업계에서 제품 출시일은 'SOP'라고 하고, 제품 판매일은 'SOS'라고 말한다. 우리는 B2B 부서이기에 SOP는 자사 내부에서 제품 개발/검증이 완료되어 고객사에서 납품이 되는 날이었다. SOS는 그 제품이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날이었다. 출시 일정 선정이 중요한 이유는 개발하고 있는 디자인과 기능이 지금은 최신일 수 있지만, 제품을 출시하는 시점에는 구식의 디자인과 기능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장을 꾸준히 분석하여 적절한 'SOP/SOS'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 기술 검토

위 사양이 어느 정도 정해지면 기획팀에서는 HW/SW사양, 디자인 컨셉(시장 방향성), 출시 일정을 개발팀에 리뷰를 하는 자리를 갖는다. 개발팀에서는 기능에 따라 추가되거나 삭제되어야 하는 HW/SW 사양을 검토하고 기능별 개발 소요 일정을 전달한다. 그러면 기획팀에서는 개발팀 검토 의견을 기반으로 원가 변동분/ 개발비 상승분, 기능 우선순위, 전체 개발 일정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사양 및 개발범위, 전체 일정을 확정한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부서별 R&R을 조정하기도 한다. 보통 개발팀 안에서도 여러 팀이 있고 각기 다른 분야의 실무 담당자가 있기에, 어느 부서의 누가 해당 기능을 담당하게 될지 확정해야 한다.

 

# Kick-off

해당 제품 생산에 연관되는 모든 부서가 한자리에 모인다. '사업 발의'라고도 하는데, 보통 사업부에서 진행한다. 위에서 정리한 '사양, 일정' 외에도 '사업의 목적, 예상 매출, R&R구성'을 함께 발표한다. kick-off 이후 부터 PM(Project Manager)이 일정 관리를 하며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위에 나열한 프로세스는 회사마다 기본적인 틀은 비슷하겠지만 세부적으로는 다 다르다. 내가 속한 조직이 신생부서였기에 더욱이 R&R이 명확하지 않은 점이 있다. kick-off 전까지 기획자로 업무를 진행했다. 그 이후에는 PM으로서 프로젝트 관리를 하고 있다. 기획자와 PM은 매우 성향이 다른 직무이지만, 내가 사양을 정한만큼 가장 잘 알고있기에 PM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이슈 상황에 대응이 빠른 장점이 있다. 

아래 URL은 내가 기획을 하며 정리한 자료들이다. 나와 비슷한 자료가 필요한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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