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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e May 27. 2020

이 프로젝트는 중요하지 않잖아요.

중요도가 낮은 프로젝트를 대하는 PM의 자세


 아시다시피... 사실 A 프로젝트는 다른 프로젝트보다 중요하지 않잖아요. 저희 인력은 한정되어 있는데... 아까 말씀하신 기능 빼는 걸로 하고 신규 기능 추가하지 말아 주세요. 이해하시죠. 그리고 UX팀에서 제안하는 거 중간에서 쳐내 주시지 않으면 이 일정으로 곤란해요.

 어느 날 점심 식사 후 마주친 개발팀 부장님이 말씀하셨다. 맞는 말이었다. 본부의 생명줄과 같은 대형 프로젝트 몇 개가 진행되고 있었고, 내가 담당으로 하고 있는 A프로젝트의 개발자들 대부분이 그 대형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있었다. A프로젝트는 개발자들도 익숙하지 않아 연구가 많이 필요했고, 계약 수량에 비해 개발비가 점점 늘고 있어서 순이익이 크지 않은 제품이었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다. 모든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회사의 이윤을 위한 것으로 이익이 남지 않는다면 프로젝트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일정을 위해서나 회사 전체를 위해서나 당연한 거다.

 A프로젝트의 기획자가 된 만큼 나는 가장 좋은 제품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PM으로서 고객사와 약속한 퀄리티와 일정으로 완성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 개발팀 부장님의 말에 힘이 쭉 빠지면서 서글퍼졌다. A 프로젝트는 곧 나였기 때문이다. 내 분신, 내 자식과 같았다. 처음 담당하는 상품 기획이었기에 겁이 나기도 했고 설레기도 했다. 그만큼 열심히 공부하여 사용자들이 가장 필요로 할 뼈대가 되는 기능들을 정했다. 그에 필요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사양을 선정하고, 필요한 개발부서 인력, 기간, 개발비 등을 작성했다. 탄생부터 봐왔다. 대부분의 기획자들이 그렇겠지만, 하루 종일 이 아이를 더 좋게 만들고자 고민한다. 시장에서 새롭게 나오는 제품의 기능들을 살펴보고, 이 제품을 사용하는 유튜버들과 늘 저녁을 함께한다. 비용 문제와 개발 기간 때문에 처음 작성한 기획안에서 많은 사양을 지워야 했다. 더 좋은 부품과 기능으로 사용자들에게 만족감을 주고자 하는 욕심과 프로젝트를 정해진 비용과 일정 내에 완성시켜야 하는 의무감, 그리고 언제나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며 업무량이 과도한 실무 담당자들의 상황에 가슴이 꽉 막히곤 하였다. 


# 같은 곳을 바라본다 할지라도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우리 개개인은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고, 다른 동료들에게 프로젝트에 애착을 가지고 노력해달라 요구할 수 없으며,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모두가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가는 건 아니다. 대학생 때 다양한 팀 활동과 창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은 '같은 프로젝트를 하는 팀원이라고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 생각하지 않기. 그리고 그 점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기'였다. 다른이들에게 A프로젝트는 가장 매출도 적고 규모가 작아 중요도가 낮은 프로젝트일 것이다. 다 알면서도 어느순간 나와 같은 중요도를 가지고 이 프로젝트를 바라봐주길 바라며 서운한 감정이 들곤 하였다. 

 

# 현실적인 방안들

 이러한 점들을 인정하고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이 프로젝트를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완성시키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했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위해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은 무엇일까.

 첫 번째, 개발 일정을 최대한 확보하기. 부품 배송을 직접 전달하며 개발 기간 중간에 생기는 버퍼를 최대한 줄여 개발 기간을 더 확보하기로 하였다. 이 방안 덕분에(?) 회사 공장 내부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두 번째, 개발비 사용하여 외주업체 활용하기. 내부 인력의 개발 시간이 부족하면 개발비를 투자해서 외주인력을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때 사용되는 외주비용은 미리 잡아놓은 기존 예산이 아니므로 회수하는 방안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세 번째, 차기 모델 기획하기. 차기 모델을 미리 기획하여 다음 고객사를 확보하고 어느 정도의 수익을 확보하게 된다면 차기 모델의 기반이 되는 이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이다. 다음 라인업에 대한 구체적인 기획을 한 건 아니었지만, 기획안의 설득을 위해 이 말은 매우 유용했다. "다음 차기 모델을 생각한다면~" 일정과 비용을 언급하며 사양 제외에 대한 요청이 있을 때, 기존 기능의 개선안에 대해 부정적일 때 이 문장은 상당히 큰 힘이 되주었다. 


 일단 생각나는 방안대로 해보자. 개발팀 부장님이 하신 말과 비슷한 말들을 그 이후로도 자주 들었다. 여전히 속상하고 화가 난다. 하지만 그들의 상황도 이해하기에 '그럼 내가 더 A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고 챙기지 뭐'라며 다시 툴툴 털고 일을 시작하곤 한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참 인생에 거저먹을 수 있는 것 하나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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