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나이 탓인가 세월 탓인가
며느리가 시금치를 싫어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1977년생인 여자는 동네 슈퍼마켓에서 두부를 사고 콩나물을 사 먹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먹거리가 넘쳐나는 대형마트가 즐비한 현재를 살고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힘들게 밥을 짓고 요리를 안 해도 먹고사는데 별지장이 없다.
1941년생인 여자는 전쟁 직후 먹을 게 없어 굶주린 어린 시절을 보냈고 무능력한 남편과 자식 넷을 건사하기 위해 모진 세월을 살았다. 지금은 거친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억척스러운 장사꾼 할머니가 되었다. 못 먹고살았던 세월을 보상이라도 받듯 혼자 먹어도 2~3인용 분의 음식을 한다.
강산이 세 번 변하고 네 번이 바뀌려는 세대를 뛰어넘는 여자 둘은 나와 시어머니다. 온갖 문명의 혜택을 다 받고 자란 세대와 그런 세상을 살아왔음에도 자기만의 고정관념 속에 사는 세대가 만나면 현실판 배틀 그라운드가 따로 없다.
"어머이, 제발 좀. 돈이 없습니꺼? 마트 가서 사면 되는 거를 불 떼 갖고 꼭 이리 해 먹어야 되예?"
"저 봐라, 염병할 또 저 소리다. 으이구 지겹어라."
어머니와 나는 먹거리 앞에서는 지는 법이 없다. 서로 자기주장을 내세우며 신경전을 벌인다. 결국은 어머니가 승리의 깃발을 들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순순히 무릎 꿇긴 싫다. 나도 참 고약한 심보다.
겨울이 지나고 봄 향기가 코 끝에 살랑이면 냄새도 역겨운 가죽 나물과 마주한다. 시집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가죽 나물이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언제부터 누가 해 먹은 요리법인지 출처를 알지 못하는 정체불명의 요리법은 이러했다.
찹쌀가루를 묽게 풀어 빨간 양념을 넣는다. 빨간 양념은 사실 기억나지 않는다. 고춧가루를 풀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 양념된 찹쌀 풀 물에 가죽을 푹 담가 적신 다음 그대로 빨랫줄에 걸어 말린다. 위생과는 전혀 상관없이 온갖 먼지와 벌레들이 날아드는 공기 중에 맨몸으로 던져져서 가죽 나물은 그렇게 말라간다. 옛날부터 부각처럼 만들어 간식으로 먹었던 거 같다.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어머님은 여전히 고추장에 물엿 넣고 버무린 가죽나물을 즐기지만 내 손으로 해 드리진 않는다. 첫인상이 좋지 않았던 가죽나물은 영원히 안녕이다.
육수용 멸치와 땡초를 잘게 썬 다음 집 된장을 듬뿍 넣어 끓인 어머니표 된장이 있다. 강된장 느낌이라고 할까? 지금은 작은 뚝배기에 지져 먹지만 압력밥솥이 나오기 전 전기밥솥으로 밥할 때 스덴 밥그릇에 풀은 어머니표 된장을 그대로 밥솥 안에 넣어 보글보글 지져 먹었다. 밥이 다 되었다는 사인이 떨어져 밥솥 뚜껑을 열면 '오 마이 갓' 된장이 넘쳐흘러 누런 밥이 되었던 적도 있다. 어차피 한 숟갈 떠서 비벼 먹긴 하지만 고슬고슬하게 갓 지은 밥 위에 얹어 비벼 먹는 거와는 느낌이 다르다. 그런 날은 밥 먹기가 싫었다. 비주얼도 별로다.
굳이 집에서 고생스럽게 만들어 먹지 않아도 되는 두부는 대기업에서 보들보들 몰캉몰캉하게 맛있게 잘 만들어 준다. 그런데 명절이면 어김없이 장작 패서 큰 가마솥에 불 지펴 콩을 삶고 갈아서 만든 두부와 방앗간에서 빻아온 메밀가루를 물을 부어가며 수도없이 치대어 메밀 묵을 만들어 먹었다. 그것도 명절 전날 메인 음식 하기도 바쁜데 다리가 불편하다는 핑계로 형님과 나를 번갈아 부르며 심부름을 시킨다. 귀찮아서 후다닥 어머니 일부터 끝내고 명절 음식을 하고 나면 밤 9시, 10시가 된다. 녹초가 되어 안방 문을 열어보면 자기 할 일 다한 어머니는 대자로 누워 주무신다. 타이틀 다 떼고 1 대 1로 한판 뜨고 싶다.
제철 음식은 무조건 먹어야 하는 큰 손 할머니는 역시 남다르다. 해마다 겨울엔 다닥다닥 얼어붙어 20마리가 족히 되는 동태를 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장 다 빼고 씻어 소분해서 냉동실에 뒀다가 두고두고 먹는다. 절대 생선은 장만해서 사 오지 않는다. 그렇게 채워진 생선들이 냉동실에서 아우성을 쳐대고 있다. 일주일 전에는 총각무 석단을 사 와서 김치를 담아라고 하길래 먹을 사람도 없는데 누가 다 먹을 거냐고 잔소리를 했더니 결국은 형님이 와서 다 담아놓고 총각무는 김치냉장고에서 숙면을 취하고 있다. 어머니도 연세가 80이 넘었고 두 며느리가 하도 목소리가 커지니 살림 주도권은 거의 우리에게 넘어왔지만 어머니의 큰 손은 '어쩔 수 없다'.
또 하나 '어쩔 수 없이' 길들여진 것이 있다. 그것은 나의 입맛이다. 어머니 입맛과 똑닮아 버렸다. 야채라고는 콩나물, 오이밖에 안 먹고 초딩 입맛이었던 내가 제철에 나오는 나물 반찬은 발품을 팔아서라도 찾아다 해 먹는다. 어머니표 된장은 냄새도 맡기 싫다고 투덜거렸는데 밥맛없을 때 방아잎 넣어서 비벼 먹으면 게장만 밥도둑이 아니다. 또 두부는 어떤가? 대기업 예찬론자였던 내가 손두부 맛을 못 잊어 시장에서 손두부 비스무레하게 갓 만든 두부를 장바구니에 담아들고 뿌듯하게 집으로 온다. 이제는 깔끔하게 정돈된 마트보다 시장에서 할머니들이 파는 투박하게 뜯어온 나물이 더 맛있고 정이 넘친다.
어머니와 지낸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것인지,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 모르겠지만 바뀌어 버린 입맛이 그리 기분 나쁘지 않다. 남편은 초록이들로 가득찬 밥상을 건강한 밥상이라고 엄지척을 하고 아이들은 젓가락 갈 곳이 없다고 징징거리긴 해도 나는 끝까지 어머니 입맛을 고수할 것이다. 단 어머니의 큰 손은 닮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