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출처 -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여보,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행복은 미덕을 실천하는 삶, 풍요로운 삶, 지극히 즐겁고 안전한 삶, 재물이 풍족하고 육신이 편안한 가운데 그런 것을 지키고 사용할 힘이 있는 것이다. 이 중에서 어느 하나 또는 여럿이 합쳐진 것이 행복임은 거의 모두가 동의한다. 왜 이런 말을 했겠노? 하나라도 만족하면 욕심내지 말고 살자."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시집살이를 해 봤대?"
분가를 놓고 남편과의 끝없는 논쟁은 매번 내가 백기를 들면서 어영부영 마무리된다. 남편은 늘 저런 식이고 나에겐 부처님의 말씀도, 공자 님의 말씀도 궤변일 뿐이다. 소리 없이 잔잔한 전쟁은 결혼 10년이 넘어가면서 너그러운 내려놓음으로 가면을 쓰고 살고 있다. 가면 뒤 분가를 향한 열정과 열망을 감추고 말이다. 그것마저 포기하고 산다면 희망도 없고 행복도 없다.
내 삶은 철저하게 어머니, 아버지의 시간에 맞춤이었다. 그들이 서면 같이 서고 그들이 앉으면 같이 앉았다. 그들이 먹으면 같이 먹고 같이 잠들었다. 친구들과의 자잘한 수다도, 취미생활도 사치였다. 일탈을 꿈꾸었다가 화들짝 놀라 깨는 일이 허다했다. 정착하지 못하는 방황은 계속되었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었다. 웃으며 살고 싶었다. 아이들을 위해서 그래야만 했다. 남편의 반려자, 한 집안의 며느리는 때려치워도 엄마는 포기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변화를 시도했다. 물 한 잔도 자기 손으로 떠다 먹지 않는 어머니에게 하루 한 끼 정도는 직접 챙겨드시게 했고 집 안에 자잘한 일도 형님에게 다 떠넘겼다. '잘하려고 하지 말자. 기본만 하자.' 다짐했다. 그네들의 삶보다 내가 더 중요했기 때문에 1도 양보하지 않았다. 순탄치 않았고 시끄러운 소리도 많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고 더욱더 독해졌다. 남편이 나의 수고를 알아주었기에 가능한 반항이었다.
내가 내 발 등을 찍었다고 불행한 인생이라고만 여겼다. 무조건 지옥 불구덩이 같은 이 집을 벗어나려고만 했다. 행복이 저 멀리서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건 오산이었다. 행복은 내가 찾아야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불행이 행복이 되는 건 종이 한 장 차이, 동전의 양면과도 같았다.
현재에 만족하냐고 물어온다면 100%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세상은 오로지 나의 시선에서 내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나에게 투자하는 시간과 돈도 아끼지 않는다. 옷을 사고 겉치레에 치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풍족하게 만드는 일에 스스럼이 없다. 짧은 어휘력으로 글을 쓰며 '책 좀 많이 읽을걸' 하고 후회하는 이 순간까지도 얼마나 행복한 지 모른다.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보이고 싶은 행복보다 백배, 천배 값어치 있는 행복이다. 나는 지금 값어치 있게 40의 중반을 달리고 있다. 여전히 분가를 꿈꾸며..(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