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앞에 '개'를 넣어 무언가를 모욕하는 말을 싫어한다. 그것이 나라이든, 종교이든, 사람이든 말이다. 게다가 굳이 종교를 따지자면 기독교인 본인 스스로 그토록 꺼려왔던 "이 단어"를 적는 오류를 범하는 중이다.
줄곧 생각해왔다.
왜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죄에는 분노하지 않을까.
남의 죄에 거품물고 반대하면서
자신의 죄에는 왜 관대한 것일까.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고
당신의 이야기이며
우리의 이야기이다.
죄란 무엇인가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로마서 5:12
누구든지 죄를 범하는 자는 율법도 범하나니 죄는 율법을 범하는 것이니라. 그분께서 우리의 죄들을 제거하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알거니와 그분 안에는 죄가 없느니라 - 요한일서 3:4-5
목사나 신학도가 아니나,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안다. '죄'라는 부분은 상당히 애매하다. 나라별로, 심지어 미국은 주 별로 각각의 법을 어긴 이를 죄인으로 분류한다. 일반적 기준에서 보았을 때, 나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도덕을 지키며 살아왔다. 국가에 벌금을 물 일도, 재판받을 일도, 상식의 기준에서 비난 받아야 마땅할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경을 기준으로 볼 때 나는 확실히 죄인이다.
기독교에서 우상숭배는 죄에 속한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너희 지체들을 죽이라. 그것들은 음행과 부정함과 무절제한 애정과 악한 욕정과 탐욕이니 탐욕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자녀들에게 임하느니라 - 골로새서 3:5-6
탐욕(탐심)은 우상숭배란다. 그럼 탐욕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서는 탐욕을 "탐내는 마음" 또는 "지나치게 탐하는 욕심" 으로 말하는데 여기에 쓰이는 "탐"(貪)의 뜻은 "가지거나 차지하고 싶은 마음" 을 뜻하며 관련 어휘로는 욕심, 욕망, 야욕, 욕구, 야심, 욕정 등이 있겠다.
"탐"과 "욕"에 대하여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 예가 있다.
옛사람들이 말한 바, 너는 간음하지 말라, 한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그녀에게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마음속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느니라 - 마태복음 5:27-28
탐심은 말 그대로 아직 마음만 가지고 있는 것을 뜻한다.
때리고 싶지만 참았고 만지고 싶었으나 손도 대지 않았고 죽이고 싶어도 그런 적 없으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데, 예수(성경)의 기준에서라면, 이미 때렸고 이미 만졌으며 이미 살인했다는 것이다.
용서받으니 괜찮은가
그럼 희대의 살인마와 내가 같다는 이야기인가.
예수가 용서해 줄 테니 사람을 죽여도 괜찮다는 말인가.
이 무슨 "개"떡같은 경우인가.
우리는 범죄한 국회의원, 대통령, 목사, 군인 등에 대하여 분노한다. 특히 목사나 기독교인이 죄(특히 성에 관련)를 저지르면 더욱 그러하다.
성경에서 주목해야 할 구절이 몇 가지 더 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명령들)을 지키리라 - 요한복음 14:15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위 없는 믿음도 죽었느니라 - 야고보서 2:26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그분의 눈앞에서 의롭게 될 수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알게 되느니라 - 로마서 3:20
간단히 말해, 율법은 내가 죄인임을 깨닫게 한다.
나에게서 끊임없이 죄가 나온다는 것을 인지하게 하며,
스스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예수의 "의" 와
"죄사함"의 필요를 인정케 하는 도구라는 것이다.
그러면 율법은 지키지 않아도 무관한가.
사도바울은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결론을 내리노니 사람은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느니라 (생략) 그런즉 우리가 믿음을 통해 율법을 헛되게 만드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 로마서 3:28,31
내게 프러포즈를 했고 나도 승낙했다고 해서, 이제 어차피 결혼할 거고 한 숨 놓았으니 자, 이제 즐겨볼까 하며 신나게 다른 이성들과 연애도 하고 즐기는 것은, 성경 아니라 일반 상식 기준으로 볼 때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고 싶다면 그는 그녀를 진정 사랑하는 것이 아닐 터. 그는 가짜다.
사랑하게 되면 조금이라도 더 잘 해주고 싶고,
행복하게 해 주고 싶고, 함께하고 싶을 것이니.
내 죄는 용서받을 죄
네 죄는 죽어 마땅한 죄
질문이 있다.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가령, 신앙심이 좋은(혹은 좋아보이는) A가 경미한
교통사고로 인해 예배에 30분 늦었다고 하자. 헌데
사고는 없었고 늦잠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B는 사람들을 속이며 아닌 척 지내는 것이 괴로워
친구들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동성애자라고 한다.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은 인기녀 C는 솔로인데
알고보니 남몰래 불륜을 저지르다 가정을 부쉈다.
건네받은 거스름돈에 5천원 대신 5만원이 있었다.
D는 망설이다 모르는 척 받고 좋은 데 쓰기로 했다.
더 많은 예는 필요치 않을 듯 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어떤 죄가 더 큰가?
누가 더 죄인인가?
용서받을 만한 죄와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는가?
A는 거짓말, B는 동성애, C는 간음, D는 도둑질했다.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히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 잠언 12:22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속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자나 간음하는 자나 여성화된 남자나 남자와 더불어 자신을 욕되게 하는 남자나 도둑질하는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욕하는 자나 착취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리라 - 고린도전서 6:9-10
용서받을만한 죄나 용서받지 못할 죄를 굳이 구분해야 한다면 성경적으로 볼 때, "성령을 훼방하는 죄"가 죽음에 이르는 죄로 표기되어 있다. 솔직히 여기서 신학적 토론을 하고 싶지 않고 그럴 능력도 없다. 다만 묻고 싶다.
거짓말은, 동성애, 간음, 도둑질보다 깨끗한 죄인가?
하지 않으려 해도 결국 나를 포함한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거짓말을 할 때가 반드시 있는데, 그 때마다 그것 역시
"죽을 죄"라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다.
죄에 따른 댓가와 결과물(자신 혹은 상대가 당하는 고통)은 분명히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러나 "예수"가 말한 차원의 성경을 기준으로 "살 죄 죽을 죄"를 따진다면 A의 거짓말도 죽을 죄이고 B, C, D 역시 죽을 죄이다.
죽을 죄를 지은 당신과 내가,
다른 죽을 죄 지은 人보다 설마 낫다고 믿는 건 아닌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로마서 3:23
기독교와 개독교
알다시피, 예수는 종교 - 기독교를 만든 적이 없다.
건물을 크게 세워 신도를 많이 모아 헌금도 많이하고
유명한 사람이 되어서 나를 높여달라 한 적도 없다.
대부분 인간이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들이다.
기부해서 존경받고 싶고, 도덕을 지켜 인정받고 싶고,
전도 많이 해서 상도 받고, 기도 많이 해서 응답 받고..
물론 진실된 "그리스도인"이 알고보면 꽤나 많은 사실을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참으로 훌륭한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 훌륭하신 분들 중에도 "죄 없던 이"는 없다.
누가 主 인가
그리스도인은 자아가 죽고 내 안에 오직 그리스도가 사는 것을 매 순간 고백하고 깨어짐으로 각기 훈련을 받는데,
그것이 죽을 때까지임을 알고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종교 중 하나를 선택한 기독교인(church goer)은
예수 혹은 교회를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으려 한다.
사업, 직장, 학교, 명예 무엇이든 내가 主가 된다.
사실 성경적으로 보면 내가 나의 주인인 사람은 거듭난 게
아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는 뜻인데, 자아가
죽은 적 없다면 다시 태어날 기회조차 없었던 것일 테니까.
죽어도 죽지 않는 이 자아를, 죽는 그 순간까지 늘 죽이고
또 죽이면서, 그 "예수"를 主로 삼는 이. 결혼할 그 날까지
약혼자에게 마음과 생각을 더욱 집중하여 사랑하고자
행동하는 이, 그렇게 사는 人들을 "그리스도인" 이라 한다.
가끔 참 그리스도인을 만나면 '어떻게 저렇게 살까'
그런 생각을 하는 나는... 기, 아니 개독교인일까.
상대방의 잘못에 분노한 만큼
내 죄에 대하여 분노한 기독교인은 몇이나 될까.
자신의 죄에는 그저 가슴이 참 아프고 괴로운데
남의 죄에는 몽둥이 들고 때려 부수려만 한다면
그 분노의 뿌리는 과연 어디서부터였던 것일까.
배은망덕
만일 죄가 치명적 전염병과도 같고
큰 불길이 이는 화재현장과도 같다면
우리는 전염병에 걸린 사람과 화재현장의 이를
비난할까, 회복시켜 주고 구출해 주고 싶을까.
그런데 나도 그 병 걸린(혹은 걸렸던) 사람이고
같은 화재현장에서 구조 받아 목숨을 건졌다면
마음은 더욱 동하여 돕고픈 마음이 절실할게다.
만일 죄가 바이러스를 퍼트림과 같고
그 곳에 불을 지른 방화 범죄자와도 같은데,
사실은 나도 그들과 같이 범죄를 저지르다가
손 씻고 나온 사람이라면 어떤 마음으로 볼까.
죄는 죄다.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예수 밖에 없다.
이 글로 인하여 많은 분들이 싫어하실 수 있고
구독자 수가 줄어든다 해도, 죄송하지만 저는
이 부분에 대하여는 타협을 할 수 없는 人이다.
그러나 예수의 이름을 걸고
예수를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
예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기독교인
모순 덩어리인 나를 포함한
여러분께 한 번쯤 허심탄회하게 묻고 싶었다.
사랑하는가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모든 명령 중에서 첫째 명령은,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시니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니라. 이것이 첫째 명령이니라. 둘째 명령은 곧 이것과 같으니,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니라. 이것들보다 더 큰 다른 명령은 없느니라 - 마가복음 12:29-31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 요한복음 14:24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 요한일서 4:8
사랑하는가.
아니,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가족과 친구, 이웃을 사랑은 커녕 용서하지도 못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사랑한다고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치며 눈물을 흘린다. 내 죄는 용서해 달라고 하면서 나를 비난한 사람, 상처 준 사람과는 상종하기도 싫어한다.
그럼에도 사랑하게 해 달라고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영혼으로 몸부림치며 절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었다.
예수가 인류에게, 아니 내게 한 사랑의
먼지 한 점 만큼이라도 해 볼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 로마서 3:23-24
너희가 사람들에게 그들의 범법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들에게 그들의 범법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범법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 마태복음 6:14-15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으므로 우리가 이로써 그분의 사랑을 깨닫나니 우리가 형제들을 위해 우리의 생명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생략) 나의 어린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생략) 그분의 명령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을 주신 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 - 요한일서 3:16,18,23
예수는 죄가 없다.
그는 나를 살리기 위해 나 대신 죽었고
죄인인 나를 지독히도 사랑했을 뿐이다.
예수는 잘못이 없다.
그가 이야기한 것은 언제나 사랑이었고
그가 보여준 사랑은 용서와 구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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