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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Apr 24. 2024

일단 잡고 딜

feat. 택시는 아니지만 택시입니다

택시 아닌 택시

지금 러시아에서조차 이런 말을 하면 '옛날 사람

으로 취급받지만 처음 모스크바에 갔던 시절에는

택시라는 개념이 모호했다.


택시를 잡는 순서는 다음과 같았다.

1. 택시가 보이지 않아도 도로변에 팔을 뻗는다.
2. 랜덤으로 일반 승용차가 내 앞에 멈춰 선다.
3. 문을 열고 목적지를 말하며 가격을 흥정한다.


돌아보면 무시무시, 어처구니없는 방식이었으나,

당시에는 어느새 흡수되어 버린 익숙한 생활이자

흔한 풍경이었다. 가끔 엄마가 내가 그렇게 차를

잡는 것을 보시고 "조금 무섭다"라고 할 때에도

뭐가 무서우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 기억이 있다.


다 커서(?) 돌아가보니, 와,

다시는 그런 방식으로 차를 지 못할 것 같았다.


"무섭다"던 정에 뒤늦게 공감하게 된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겁도 없이 다녔다.



습관적 무의식


언젠가 한인교회에서 어른들끼리 하시던 대화 중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었다.


러시아에 사는 자기 지인이 서울에 갔는데,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에서 팔을 들자 마침 자기 앞에 와서

선 승용차 앞문을 열고 일단 탔다고 한다.

보통 타기 전 딜을 하는데.. 아무튼 깜짝 놀란 차주가

운전대를 양손으로 꽉 잡은 채 앞만 보며 긴장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저.. 교회 집사입니다..!" 하더란다.


전후 사정은 잘 모르겠으나 어쩌면 여성분이 고려인

(동포)이었을 수도 있겠고. 아무튼, 그녀도 놀라서

사과하고 얼른 차에서 내렸다고..

(차주분은 마침 차를 임시정차할 일이 있었거나

그 위치에 누군가 오기로 되어 있었겠지.)



갈수록 택시를 탈 일이 없었다.


센터로부터 먼 동네에 살 때에는 택시 아닌 택시를

적잖이 이용했으나, 모스크바 센터로 이사 뒤 줄곧

걸어 다녔고, 어디든 웬만해선 메트로가 가장 빨랐다.


결정적으로 집순이라 아파트에선 두말할 것도 없고

사람이 아주 바글바글하던 기숙사에 살 때조차

'좀처럼 마주칠 수 없는 신비(?)로운 인물'

회자되기까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가끔 택시를 타고 싶다면

마침 기숙사 앞에 대기한 차 앞에서 때마침 갈등하는

우리 학교 학생과 눈이 마주칠 때 눈빛 교환 후


"학교?" 질문에

", 학교" 대답하면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이 차에 타고, 정액가와도 같던

금액으로 반띵. 같은 학교의 백여 학생이 한 곳에

모여 사니 그럴 법도. 러시아 남자애들은 착해서(?)

자신이 돈을 더 냈다. (무언의 정해진 금액이 홀수)

생각해 보니 일본 친구랑도 서로 더 낸다고 싸웠네..

아무튼 앱으로 택시를 잡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다행히 러시아도 카카오택시처럼 앱으로 택시를

이용한 지 오래였고, 제도는 우버와 비슷해 보였다.

흥미로운 점은 별점이 매우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

택시, 온라인 쇼핑몰, 심지어 동네 구멍가게까지도

리뷰가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옛날 얘기이지만 러시아는 공산주의였기 때문에,

소련에서 러시아로 바뀌고 나서도 한참 그러한

성들이 남아 있었다. 그 대표적 예가, 서비스의

친절, 매장 직원의 태도 등이었는데, 이제 택시

운전자들도 별점에 신경 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별점이 높을수록 높은 등급에 들어가, 요금을 조금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앱으로 부른 첫 택시


첫 앱 택시는 기차역에서 숙소로 가는 여정이었다.

공항 철도를 타고 막 시내에 입성해 짐이 무거웠다.


앱은 미리 한국에서 설치해 갔지만 유심카드를

모스크바 시내에서 구입했으므로 닳아가는 배터리를

아끼려 노력하며, 마치 어르신이 처음 앱으로 택시

호출하듯 약간 어색하고 신중했다. 모든 한국 기관이

러시아 결제를 전부 막았으므로 남은 결제수단은

현금 뿐이었는데 이것이 꽤 번거로운 일이었다.


옛날에 랜덤으로 잡아탈 때에는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의 거리, 가는 길, 시가를 전부 꿰고 있어

딜한 적정가를 건네고 내렸지만, 얀덱스 앱의 경우

목적지 입력 시  등급별 확정요금이 미리 나온다.

굉장히 마음에 드는 룰로, 차가 막히건 말건 요금은

변하지 않으므로 운전자가 꾀부릴 일이 전혀 없다.

다만 그 요금이 300, 400 단위가 아니라 332, 454

식의 숫자일 수 있으므로 현금지불이 애매했던 것.


공항 환전소에서, 알면서 '너무한 것 아닌가' 싶은

커미션을 떼이고 받은 루블 중 동전은 거의 없었으니

그냥 조금 더 내기로 생각했다. 외국에서의 경비를,

혼자라면 더욱 절약하는 편이지만 한국 달러환율이

높은 이상으로, 루블의 약세가 러시아 전쟁의 여파로

크게 작용 중이었다. 달러를 들고 온 나로서는 물가

부담이 덜할 수밖에. 10년 전 100 루블이 약 4천 원

조금 안 됐는데 지금은 1500원이 안 되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 이제 환산도 헷갈렸다. 짐까지 있으니

최저요금 말고, 그 한 단계 위 레벨 택시를 호출했다.

그럼 조금은 더 젠틀하겠지. (젠틀:찝적대지 않는 것)



고맙게도 예상대로 운전자는 젠틀했다.


- 모스크바에 오랜만에 와서요, 카드가 없네요.

   요새 택시요금도 현금 내는 사람 이제 거의 없죠?


- 음.. 아~주 가끔 있기는 한데 거의 없어요.

   다 카드 자동결제 하죠.


제재로, 애플페이 등 결제수단이 막혀 타격이 컸겠다.


그러고 보면 러시아 택시 안에서는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도 하니 신기한 일이다. 운전자와 말하기를

즐기는 타입은 아니나 한편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았다.

아, 물론 말이 많을 것 같은 운전자에겐 말을 걸지 않..


미성년자일 때 러시아에 왔으니 한국에서 혼자 택시

탈 일이 거의 없었고, 방학에 와 어쩌다 택시를 타면

나도 모르게 긴장되어 불편했다.



기억공백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기억에 공백이 생겨버렸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의 삶이 10대 중반에서 멈추자, 혼자

택시를 탈 때 들었던 긴장감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


그것은 마치, 이미 대학생이 된 내가 길을 가던 

아는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과 마주치는  순간

'앗, 고등학교 언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내가 더 언니로구나..' 깨닫는 패턴과도 유사했다.


어릴 땐 택시 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걸까 봐 초조했다. 노안에 머리도 길어서 대학생으로까지 보기도 했는데 막상 속은 어림 그 자체였다 보니, 나이를 들킬까 봐 겁이 났던 모양. 어리면 무시하거나 얕볼까 봐.. 택시에서는 안정감을 느낄 수 없었다. 더군다나 길도 잘 모르는데 "oo길로 갈까요 oo쪽으로 갈까요?" 질문이라도 하시면 "아무 데로나 가주세요" 밖에 못하던 나에게.. 택시 안에서의 대화는 여러모로 불리했다.



아이러니


한국에서 택시를 타면 쫄다가,

러시아에 가면 팔 휘두르며 차를 세워 딜을 하고

운전자가 ㄱ소리를 해도 나긋나긋하게 대하던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다르니 아이러니컬할 수밖에.


신기하게도(?) 적은 횟수만 타 본 한국 택시에서

하필 인상 깊은 경험을 몇 번이나 했던 기억 덕에

이제는 직접 운전할 때 마음이 차라리 편하다.


한국에서 탔던 택시 중 아직도 강렬히 기억나는 게

있는데 언제 한 번 일기처럼 남겨볼지도 모르겠다.


물론 다음 글은,

러시아 택시 기사와의 에피소드 순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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