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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May 05. 2024

길치의 길 찾기

Feat. 번외

모스크바는 이제 현금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는 도시로 변해 있었다. 몇 년 전 그 법안을

통과시킨 듯하다. 교통카드마저 복잡한 느낌에

그냥 오늘도 택시 타자 하고 다시 택시를 불렀다.


금액에 큰 차이도 없어 별점 좋은 레벨을 택했다.

이런 나의 심리에는 분명 차종보다 차주에 대한

이유가 깔려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조금 있다가

다루기로 하고...


러시아는 좀 느려서, 평균 점심시간도 14-16시이고

레스토랑도 밤 10-11시까지 하는 곳이 많은 편이라,

한인교회 새벽기도도 정작 시작은 아침 7시부터였다.


몇 년 전, 모든 길을 싹 다 치웠다는 소문은 들었다.

원래는 길에 키오스크와 작은 먹거리가 즐비했는데

남지 않고 다 사라지니 다른 길처럼 느껴질 수밖에.

교회에 도착할 즈음 나는 길을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게 헷갈릴 수 있는 길이 아닌데..

내가 여길 얼마나 자주 다녔는데...


방향조차 종잡을 수 없는 와중에 기사도 주소만으로

헷갈리는지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아, 모르겠어...!


수년을 지나다녔지만 그동안 정말 몰랐던 레닌동상

(이번에 처음 봤다니  놀라움. 계속 있던 걸 텐데)

근처의 레닌스키 대로는 말 그대로 큰 도로이다. 대로

한가운데에서 혼란에 빠진 나는 "저쪽으로 가보죠!"

하며 메트로를 가리켰다. 메트로에서 걸어서, 아니

뛰어서 3분 거리인데. 처음 본 거대한 건물이 있었다.


- 여기가 아닌데!

- 주소는 여기라고 나오는데요?

- 여기가 아니에요..! 아 어떡하죠!

- 이상하다 여기라고 나오는데... 맞는데...

- 아닌데 ㅜㅜ


서로 주소를 다시금 확인하며 이곳이 아니라고

확신하다 옆 노란 건물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 저기다! 맞나 봐요! 네요! 저기예요!!!!


   


숨은 기억찾기인 줄....


- 오, 다행이에요~


평소에 얼마나 주변을 안 보고 앞만 보고 다녔으면

그토록 매일같이 수년간 다닌 길의 거대한 건물을

알지 못했던 것일까. 나중에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 이 건물 옛날에 없었지?

- 무슨 소리야, 옛날부터 있었지.

- 이상하다, 나 저거 처음 보는 것 같은데...

- 저건 네가 러시아에 오기 전부터 있던 건물이야.

- 아.. 왜 처음 보지..

- 길을 비워서 그럴 거야. 오랜만이기도 하고.

- 저것 때문에 아닌 줄 알다 노란색 보고 찾아왔어.

다시 보니 본 것도 같네. 아, 이 건물 있었나 보다..

- 당연히 그랬겠지. 너 태어나기 전에 있었을 걸.



번외


자, 이제 저 사이 생략되었던 기사와의

대화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다.


- 왜 혼자이죠?

- 네? 아, 잠깐 온 거라, 곧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작업 걸지 마라

- 언제 가는데요?

- OO일에 갑니다.

- 그럼 우리 그 사이에 또 만나나요?


룸미러를 통한 매를 부르는 눈웃음


- 아, 아쉽게도 저에게 남편이 있습니다.

  유머러스하게 대응. 아, 반지 끼고 올 걸

- 아...! 아쉬워하며 웃음


이제 됐겠지 했는데


- 남편이 모스크바에 있어요? 도전

- 아니, 한국에. 생각할 시간 없이 대답

- 왜 같이 안 왔죠?

- 여긴 잠깐 온 거고 곧 돌아가니까요.

- 어, 그러면.. 지금은 혼자 잖아요! 뺨샷을 부른다

- 하지만 남편이 있죠.

- 한국에?

- 네, 한국에 ^^^

- 하하하


포기를 모르는 저 자존감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 그래도 또 만날 수 없을까요?

  이런 미친.. 남편이 있다고 하는데도 후..

- 아..! 그건 좀 어렵겠네요! 남편이 기다려요.

  내가 진짜 남편이 있었으면 그냥 확... 하..

- 앗, 그렇겠지요? 하하

- 그럼요, 하하하 앞으로 러시아에 있다고 해야겠다

- 하하하하


이 미친 대화가 러시아어로는 술술 진행된다.

한글로 풀어보기는 처음인데, 이러한 상황이

모스크바에서는 정기적으로 일어나곤 해왔다.


이번에는 안 그럴 수 있다고 기대를 해 봤는데

그래서 일부러 택시 등급도 올려서 부른 건

워낙 미친ㄴ이 많아서, 아니 이게 자연스러워서

택시 겸 작업 알바가 이제 직업으로 바뀐 것일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10번 타면 4번은 그런 놈을 만난다.

그래서 나는 단련되어 있다. 유연한 대처.


일단 너무 정색하지 않는다. 네가 미친ㄴ이라는

사실을 굳이 알려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두려워하는 것도 오히려 위험의 요소가 될 뿐이니

차라리 여유를 부리는 편이 낫다. 차 안이니까.


토종(?) 러시아 남자는 그런 적 없다시피 한데

경험상, 알라신 믿는 인종이 주로 작업을 한다.

폄하할 생각은 없으나 오랜 경험의 데이터 결과.


이은 택시 에피소드는 다음 글 주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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