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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May 13. 2024

바람피우는 남편이 부조금 받던

아내의 장례식

피아노 선생님


초등학생 때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선생님은 앙상하게 마른 체형에 예민한 타입,

가식이나 허영은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유학을 다녀와보니, 선생님이 우리 엄마에게

꾸준히 연락해오고 계셨다.



들어주는 우리 엄마


엄마가 많은 이들의 전화를 항상 받아주는 게

편하지만은 않았다. 대부분 남편의 바람 이야기,

자식 때문에 속 썩는 이야기 등 온갖 힘든 일만

우리 엄마에게 하소연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 통화는 기본 한시간부터이기 마련이다.


좋은 이야기를 들어야 엄마에게도 좋을 텐데,

왜 그들은 우리 엄마에게 힘든 이야기만 할까.

에너지가 소모되는데도 엄마는 늘 괜찮다며

한 명도 거절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상담심리

공부도 했지만 한 번도 돈을 받은 적 없었다.


선생님의 자녀는 선생님을 때리기 일쑤였고

그중 한 명은 칼을 들고 난리 친 적도 있으며

남편은 가난한 동네에서 남 돕는 목사라는데

왜인지 자신의 아내와 자녀교육은 돕지 않고

오랫동안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들었다.

나는 선생님이 사모님인 줄도 몰랐다.

알고 보니 수입이 없어 학원을 했던 것이었다.



긍휼의 마음


엄마는 선생님을 긍휼히 여겼다.

우리 엄마가 고난 없이 살아왔다는 게 아니다.

엄마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크다.

때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구역까지 존재한다.


선생님은 몇 년 전 암수술을 받으셨다고 했다.

내 음반의 음악을 듣고 마음과 영혼에 깊은

위로를 받으셨다며 돈 10만 원을 보내오셨다.



제정신 아닌 전화


그러던 어느 날, 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의 낯빛이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당혹과

평소 볼 수 없던 어두운 표정으바뀌어졌고,

선생님에게 부드럽게 차근차근 설명하셨지만

옆에서 보면서, 이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 엄마도 이미 암환자였기 때문이다.

엄마는 특별히 여러 가지 고생을 하고 있었다.

심적, 육적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다가

조금 숨 쉴만한 때, 선생님이 별안간 돈 얘기를

하시며 엄마에게 따지고 화를 내는 것이었다.


즉슨,

자신은, 엄마 아들(내 남동생) 결혼식에 얼마를

냈는데, 우리 엄마가 선생님 딸 결혼에 그 절반만

냈다는 주장이었다. 결혼식들은 반년이 지났고,

그 사이에도 전화는 해왔는데 갑자기 다짜고짜

그 얘길 하며 섭섭하다,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냐,

이건 아니죠 하면서 따지시는데, 3분 5분도 아닌

20분 넘는 시간 동안 엄마 괴롭히는 장면을 직접

목격해 버리자, 엄마께 당장 전화를 끊으시라고

대놓고 말했고, 엄마는 도망가듯 방을 옮겨가서

결국 다 들어주고 필시 사과까지 한 모양이었다.



왜 항상 희생하는 사람은 엄마일까


속이 터졌다.

이러니 병이 안 낫지.


그리고 선생님은 어떻게 은혜도 모르고

설사 사실이라고 할지언정 자기야말로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 사람이라면 말이다.


겨우 전화를 끊은 엄마의 눈빛에 어쩌면

약간의 불안함이 보였다. 건강하지 않은

컨디션에 이런 전화는 독극물과도 같았다.


"약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엄마 입에서 그런 말은 난생처음이었다.

상식을 벗어나 너무 놀랐지만 그래서 더욱

들어줘야 했다는 듯 설명하시며 괜찮다고...


그랬다. 선생님은 정신병원도 다니셨다.

처음부터 다닌 것은 아니다. 남편과 자녀

문제가 오래되면서 다녔던 것으로 안다.



엄마는 잘못이 없었다


엄마 휴대폰에는 내 동생 결혼식 축의금 리스트가

들어 있었다. 선생님은, 자신이 냈다고 주장하는

금액의 딱 절반을 내셨다.10만 원 내놓고 20만 원

냈는데 너는 왜 안 줬냐고 따져 물으며 화낸 꼴....


말 그대로 미친 사람처럼 따지고 퍼붓는 행동을,

투병 중인 몇 십 년간 상담해 준 은인에게 하다니.


나는 상대가 어떤 기준-선을 넘어버리면 그때는

봐주지 않는다. 예리한 칼 같고 미련이 없다.

내 선생님이었건 누구이건 상관도 없었다.


"엄마, 지금 그 전화번호 차단해."


엄마가 차단하지 않을 것을 알았던 나는,

더 세게 나왔다.


"엄마 만일 지금 그 번호 차단 안 하고 앞으로도

이런 전화 계속 받으면, 내가 선생님한테 바로

전화해서 직접 얘기할 거야. 난 할 수 있어."


내가 진짜 할 것이라는 것을 알던 엄마는 결국

번호를 차단하셨다.

그리고 내가 없을 때 아마 차단을 풀었다.



자진 반납


나는 선생님의 계좌로, 일전에 따로 받은

어차피 쓰지도 않았던 그 돈도 돌려보냈다.


선생님은 그 후, 자기가 미쳤었나 보라며

엄마에게 사과했고, 종종 과일을 택배로

보내기도 했지만 내 마음은 석연찮았다.


아무리 각자의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엄마이기에

엄마의 건강회복을 방해하는 사람이라면

나로서는 결코 반겨줄 수 없었다.

더군다나 당시의 엄마는 특히 가엾었다.



나를 찾았다


수달 뒤 러시아에 갈 일이 생겼다.

출국 당일 새벽에 짐을 꾸릴 만큼 정신없는

상황이었는데, 그즈음 엄마의 카톡이 왔다.


- 사랑하는 딸아~ OOO 선생님이 암

재발로 천국에서 만나자고 전화 왔어.

너를 만나고 싶으시대. 많이 바쁘지?

가기 전에 전화라도 해드리면 어떨까


그러고 보니, 선생님의 암 재발 뒤 자연치유

방법을 여쭤보셔서 알려드린 적 있었지만

해보지 못하셨고, 이미 심각한 상태 같았다.


순간 마음에 두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내가 목사도 아닌데 왜 날 보려 하지?
친구도 아니고 따로 만난 적도 없는데
왜 가장 중요한 죽음 전 날 필요로 하지?
나를 통해 영적으로 도움을 받고 싶어
하시는구나. 그걸 어떻게 알았지?
아.. 음악 듣고 알았구나. 고마운 건가...


이러나저러나 찾아뵙는 것은 불가해 출국했다.

출국 당일 나는 밤 8시까지 밥은커녕 물 한 컵

마시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게 땀 뻘뻘 흘리고

도착한 모스크바에서 며칠 뒤 시차를 맞추어

전화해 보았지만 답은 없었다.


귀국하고 그래도 직접 찾아뵈는 것이 도리라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한편 자신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생명의 죽음 앞에서, 내가 그녀를

위해 얼마큼 도움이 되게 기도해 줄 수 있는가

 대하여 말이다. 특히 그때는 더욱.


확실히 찾아뵐 생각이었지만, 동시에 내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보았다.

내가 사랑하는 엄마께 잘못한 사람에게 말이다.



람 피운 남편의 계좌로 모이는 조의금


그러나 귀국 후 받게 된 선생님의 카톡은,

그녀의 남편이 쓴 내용이었다.


오랜 외국 생활로 결혼과 장례 경험이 적지만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부고를 알리는 시점이

당일일 터인데 하루가 이미 지난 시점이었고,

무려 그 카톡도 자정을 넘긴 새벽에 왔다.


돌아가신 것은 아예 하루 전이고 카톡은 그

다음날이 또 넘은 새벽. 알지도 못하는 사이.

선생님 폰에 저장된 이들에게 아마 뒤늦게

톡을 돌리는 것 같았고, 시간이나 상황을

종합해 보 오라는 뜻보다는, 링크를 잘 보고

부조금은 계좌이체 해달라는 뜻으로 보였다.


사랑하는 아내가 떠났다면서.....

친절하고 명확한 계좌이체 안내..

실상을 알면 아이러니컬할 수밖에.


선생님의 조의금을 받는 계좌명은

그토록 오랜 세월 선생님과 싸우고 때리고

생활비 안 주며 바람을 피운 남편 것이었다.


내가 과연 이 계좌로 입금을 해야 하나.

이것이 옳은 일인가 혼란이 찾아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미 다 했어


- 엄마, 조의금 계좌가 그 남편 계좌야.


- 거기에는 한 푼도 줄 수 없지.

아무리 그래도 다 아는데 그럴 수는 없지.

(지금도 다른 여자가 있는데)

나는 사실 이미 다 했어.


- 어떻게 했는데..?


- 일주일 전에, 자기는 이제 갈 것 같다고,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전화가 왔길래, 계좌로

OO 보내면서, 꼭 선생님이 직접 필요한 곳이나

자녀에게 쓰시라 하면서 보냈어. 차라리 선생님

살아있을 때 직접 주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랬어.


엄마가 보낸 돈은,

정작 본인은 가고 싶어도 돈 때문에 수개월째

가지 못하고 있는 병원에 5번이나 갈 수 있는,

전에 선생님이 엄마께 따진 금액의 5배였고,

마는 자신을 위한 치료비마저 희생한 것이다.


선생님은 엄마가 여유 있으니 줬다고 생각했고

친척들이나 주변인물들도 대부분 그런 편이다.


엄마는 판매할 수 없는 최하급 흠사과를 동네

지인에게 헐값에 사 자신이 먹고, 선물 시에는

유기농이나 고급 세척 개별포장 사과를 보낸다.

상대는 건강하고 자신은 암에 걸렸는데 말이다.

내가 그 사과를 착즙 해보고 기가 막혀 엄마에게

하소연을 했다. 이건 진짜 아니라고. 아니라고.



스스로 하는 희생


무슨 말을 하겠나.

엄마의 오지랖이든 사랑이든 긍휼이든 인류애

무엇이든간에, 엄마를 말릴 수 없는 것을 잘 안다.


나라도 돈을 잘 벌면 참 좋을 텐데

나와 모든 알파벳이 반대인 성향이 슈퍼 리치에

해당된다는 뉴스기사의 증거1호가 바로 나이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보낸 부조금


그렇게 엄마는, 선생님의 부조금을

살아있는 사람에게 보낸 셈이 되었다.


감격하며 고마워하시더라며 선생님 잘못 따위

다 잊은 듯, 같은 암을 앓고 있는 엄마의 표정이

슬프고 평온하면서도 묘했다.


그녀로부터 나는 일생에 걸쳐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배운다.





엄마는 엄마의 어머니로부터

나는 나의 어머니로부터

우리는 결국 예수로부터

compassion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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