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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May 13. 2024

그 옷을 네가 입고 있다

feat. 마네킹

동네 홈플러스 1층에 탑텐이 있었다.
다른 것을 사러 갔는데 지나가던 입구에
마네킹이 제법 훌륭한 옷을 입고 있었다.


훌륭하다는 뜻은,

글자나 무늬, 장식이 전혀 없고 길이가 길며

가격이 저렴한 것을 의미할 것이다.

(확신이 없음 ㅎㅎㅎ)


보통의 사람이 보았을 때 훌륭한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주의 요망.


외, 그런 것 있지 않나, 1+1, 50% 할인.

마침 홈웨어가 필요했던 나는 여기로구나 하고

마네킹 옷을 고르며, 들어간 김에 반팔 티셔츠도

구매해, 탈의실에서 새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컴퓨터 관련 액세서리 기기가 필요했는데

홈플에 없길래 결국 근처 하이마트로 갔다.



가서 도와드려!


하이마트는 나에게 부담스러운 곳이었다.

문이 열리면 너무 반갑게 맞아주지만, 난 아주 작은

액세서리 하나만 살 것이기 때문이었다.


- 어떤 것 찾으시나요?


스스로 찾고 싶었지만 어차피 어려우니 물어봤고

3층이라는 답을 듣고 엘베로 직진했다. 걸음 빠른

내 뒤로 "가서 도와드려!"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일 것이라 생각지 못해 엘베 문을 닫을 뻔했다.


앳된 남자 직원은 왜인지 조금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수줍음이 많은 타입인가. 그럴 수 있지.


어차피 날 도와주러 와 얼굴을 붉히는 직원에게

용감히 차이점을 물어보며 제품을 골랐다.

그런데....


- 저어...

- ?

- 저기....

- 네?

- 저기.. 여기 뒤에.... 가격표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다. 직원은 내 가격표를 부끄러워한 것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리한 부탁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직접 떼려는데, 위치가 애매해서 안 되네!

여기에서 옷을 갈아입을 수도 없고. 몰랐을 때야

자신 있게 걸어 다녔지만 이제 가격표를 달고

다니기는 나도 좀 그렇.... 순간 나도 모르게


- 정말 죄송하지만

   혹시 이것 좀 떼어 주실 수 있으세요?


내가 왜 그랬을까.....

남자로 안 보여서 그랬을 것이지만

아니 아무 생각 자체가 없어서 그랬지만

생각이라는 것을 해보니, 너무 미안했다.


직원은 거절도 못 하고 부끄러운 얼굴로 마치

정교한 공예라도 하듯 손가락을 몸에 전혀 안 닿게

매우 기술적으로 가격표를 떼 주었다.


고마웠다. ㅋㅋㅋㅋ


"가서 도와드려!"가 이런 도움일 줄이야.



그 옷을 바로 네가 입고 있다


고마운 마음을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눈썰미가 고품격이다.

동생도 엄마를 닮아 그러하다.

나와 아버지는 엉망이다. ㅋㅋ


전에는 괜찮은 홈웨어가 있었는데 많이 나눠주고

와서인지 딱히 없었던 데에, 집에서 항상 불쌍해

보인다는 평을 듣다 드디어, 비로소, 바야흐로(?)

나도 제대로 된 홈웨어를 입게 된 것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자랑스럽게 그 원피스로 갈아입고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와 동생이 들어왔다.


- 어머, 쟤 봐라! 쟤 옷이 저게 뭐니??

- 엄마, 너무 그러지 마, 누나 원래 그렇잖아..


반응이 이상했다.


- 왜?? 왜? 이상해? 나 일부러 사 온 건데??

- 아휴....

- 왜??? 나 마네킹이 입고 있던 거 사 온 거야!

   만원. 싸지? 엄청 편해.


엄마가 말씀하셨다.


- 어쩐지, 맞네~

- ???

- 며칠 전에 홈플러스 갔다 마네킹이 입은 것 보고

  '참, 세상에~ 누가 저런 옷을 사 입나~'

  하고 지나갔는데, 그 옷을 바로 네가 입고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입고 근처에 다니려고까지 했는데...  듣고 보니

그런가 싶어져 한 번도 입고 나가지 못하게 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그 옷을 보니, 그 말을 해준

엄마와 동생에게 참 고마운 마음이었다.




그래도 가끔은 잘 고릅니다

Mannequins in Moscow ©essie

※ 가운데 원피스 스타일과 색상은 내 타입인데

외국 옷답게 옆구리와 다리 천을 다 찢어 주셨고

어차피 비싸서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사진만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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