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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May 22. 2024

바다에 가 본 적

없던 친구가 있었다

짧은 침묵이 길게 느껴올 만큼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무슨 실수를 한 건가?


산이 더 좋으세요,

바다가 더 좋으세요?

그저 물어보았을 뿐인데.


이건 내 단골 질문이고

나는 바다가 더 좋다고

즐겁게 말했을 뿐인데.




침묵 끝,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물어왔다.


- 바다에 가 본 적 있습니까?


- 네? 네...



의아한 질문에 대답하자

또 말이 없던 그를

조금 더 기다려 보았다.


신나게 이야기하던 직전과는

현저히 달라진 분위기 속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못 가요.
바다에 못 갑니다.
갈 수 없어요.

내 평생소원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바다를 실제로 보는 겁니다.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바다를 너무 좋아하는데

나라에서 금지해 버려서

실제 바다를 본 적이 없던,


그림으로, 사진으로 보고

상상 속의 바다를 그리던,


한 때 독재자로부터

수십억 대의 악기를 선물 받고

승승장구하였다고 해도


정작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바다 근처에 갈 수도 없었던


그 사람에게 나는

미안하다는 말 외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고


날로부터 지금까지

산이 더 좋은지

바다가 더 좋은지

누구에게도 다시는 묻지 않게 되었다.




그들을 마주하며 깨달았다.


바다에 가 본 적 있는 사람

바다를 실제로 볼 수 있는 사람

바다에 가도 죽지 않는 사람


바다를 볼 자유를 허락하는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아니 바로

가까운 북에 있는 이들에게는

평생 이루지 못할 소원이며

한 번도 누리지 못한 자유라는 특권임을.


그렇게 나의 훌륭한 벗은

바다에 가 보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갔다.


대한민국에서 누리는 자유는

상상 이상의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나는 그 자유에 대하여 늘 감사한다.



"바다에 가 본 적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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