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가 그림을 선물한 첼리스트
첼리스트 장드롱이 피카소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그림을 하나 받을 수 있겠냐고. 흔쾌히
수락한 피카소로부터의 그림을 기대하면서
기다렸으나 세월이 흘러도 그림은 오지 않고
장드롱은 생각했다. '아마 잊어버린 모양이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피카소가
장드롱에게 그림을 선물했다. 어떻게 된 건가
묻자, 피카소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첼로를 그려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습니까.
10년 동안 첼로 그림 연습을 틈틈이 했는데
마음에 드는 그림이 이제 돼 드리는 겁니다"
모리스 장드롱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라디오나 TV도 없던 장드롱은 오직 악보와
악기만 가지고 연습했다. 3살부터 악보를 읽던
그의 손에 바이올린이 들어왔으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손이 첼로를 연주하기에
이상적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일까.
첼로를 선택한 그가 파리음악원에 다닐 때에도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차디찬 방에 거주해
신문 팔아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1등으로 졸업했고
세계 2차대전이 일어난 당시, 건강 악화로 징병이
유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치에 대항해 참전했다.
장드롱은 음악저널의 [잊혀진 첼리스트] 목록에
올라올법한 이름일 수 있으나, 파블로 카잘스는
그를 지극히 아껴 그간 해오지 않던 '첼리스트와의
레코딩'을 장드롱과 했으며 그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연주 독창성에 대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바로 이 곡을 찾다 장드롱과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가 내는 소리와 음색에 반해, 비공개 재생목록에
저장한 뒤 수 년동안 종종 듣곤 했던 곡을 나눈다.
첼로 소리와 그의 모습이 사뭇 로맨틱하다.
이 곡은 백 번을 들어도 좋은 바흐 코랄인데,
Grigory Sokolov의 피아노 버전도 참 좋다.
소콜로프는 후에 따로 다룰 것이니 아껴두고.
아래는 유명한 바흐 첼로 무반주 모음곡이다.
작곡가 풀랑은 예상하듯 프랑스인이다. 프랑스
국적의 장드롱과 프랑스 작곡가 풀랑, 어울린다.
짧지만 아름다운 곡이다. 꼭 들어보기를 권한다.
풀랑은 고전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 바그너보다 풀랑의 이 멜로디에 공감한다.
이 멜로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처럼
유명한 [사랑의 슬픔]이다. 크라이슬러는
오스트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 바이올린
위주로 작곡을 했고 위는 첼로 버전이다.
장드롱은 베토벤 연주도 상당히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베토벤은 멀고 높고 거친
산과 같아, 드넓지만 아담하고 평온한 딱
모차르트 오스트리아식 언덕이 훨씬 가깝게
와닿지만, 장드롱의 베토벤은 느낌이 다르다.
예를 들어 평소에 국수를 선호하지 않지만
아주 맛있고 특별한 국수라면 먹는 나처럼
베토벤 연주는, 특별해야만 들을 수 있달까.
들을 때에는 귀를 기울이며 즐겁게 들으나
평소 어떤 음악도 잘 듣지 않는다. 모순이다.
아무리 잘 생겼어도 다 좋아할 수는 없듯이
음악이나 연주도 마음을 끄는 것은 다른데,
장드롱의 소리는 어떤 곡이든 마음을 끈다.
아마도 장드롱의 인생이 범상치 않았다 보니
성공한 이후의 삶도 계속 전투적이지 않았나
싶다. 그런 면 때문에 학교에서 가르칠 때에
학생들이 어려워한 부분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그랬기 때문에' 그가 아무 것도 없던
시절에 이 정도까지 첼로를 해낼 수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런 소리를 낼 수 있던 거라
생각한다면, 그의 그런 면도 이해되기도 하고
만일 그가 내 시절 우리 학교 교수님이었다면
나는 그를 무척 우러러보며 존경했을 것 같다.
소리를 들어보면, 그 사람의 내적 본성이 대략
전해진다. 음악은 거짓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밤에 어울릴, 그리고 누구보다
이 곡을 우아하게 연주할 수 있는 첼리스트의
프랑스 음악 [백조]를 남기며 마무리할까 한다.
알고 보면 한 없이 부드럽고 섬세한 장드롱의
아름다운 첼로 소리와 함께 로맨틱한 밤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