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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Sep 22. 2024

미친ㄴ이 좋다

음악에만...

연주 표정 난리라 얼굴 안 찍었음 하는 희망은 안 이루어짐

나는 '모' 아니면 '도'이다.


중간 즈음 하면 참 좋을텐데 '모'를 못 했더니

오랜 세월 동안 아니 거의 평생을 '도'로 산다.


'모'일 때가 아주 가끔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요즘은 내가 음악가인지 기억 나지 않을 만큼

현실을 외면한 채 피아노 근처에도 안 갔달까.


클래식 음악을 거의 듣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현타'가 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아노를 쳐도

클래식을 들어도 현타는 무조건 오게 돼 있다.


현타가 와야 정신을 차리는데 깨기 싫은 것은

현타가 나를 괴롭히기 때문이며, 그 괴로움은

사실 나에게 가장 커다란 행복을 주는 길이다.

 

교회에서 은근 사람을 피해 도망 오듯 하는데

그래서 내가 안 나오는 줄 아는 사람도 생기고

오늘은 꼭 인사를 해야 할 분도 계셔서 남았다.


오래 전 눈여겨 보았다 잊은 한 연주자가 마침,

같은 인물에게 인사를 하러 남으면서 자연스레

마주쳐 인사 뒤 명함을 받았는데, 날 소개하길

'음악에 진심인 사람'이라 하시더라. 그 표현을

처음 들어서인지 '그렇게 보였나?'하며 돌아와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내가 연주를 할 때 조금

미친ㄴ같은 모습을 짧은 순간 보여 그랬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다. 나는 가끔 치지만 분명

피아노를 칠 때 스스로를 미친ㄴ 같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미친 것 같다. 필시, 미친 것이 맞다..


다만, 짧게 미치고 금방 일어나 배회한다..ㅋㅋ

오래 앉아서 미치는 사람들이 대가로 활동하고.


마음은 (음악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좀처럼

되지 않아, 아니 내가 액션을 취하면 될 것인데

하질 않아, 스스로에게 '회개'가 필요를 느끼며

신께 도움을 '소극적으로' 요청 중, 그가 나에게

여전히 기다리며 나를 도울 수 있음을 응답했다.


아직, 아니 나는 늘 무력하나,

순종할 때 나의 무력에 신의 전능이 스며든다.


순종은 피아노 앞에 그저 앉는 것이고, 그럼으로

내 피아노 옆에 자리를 튼 귀신을 내쫓는 것이다.


완성도를 따지면 모든 영상을 파기해야만 하지만

어딘가에 떠돌던 (까맣게 잊었던) 내 영상을 보며

일기에 남기게 된 것은, 이런 생각이 들어서일지도.


저 곡의 첼로 피치카토(현을 손으로 뜯는 주법)

어느 정도라도 미친ㄴ처럼 해야, 적극적으로 뜯어

잘 들리게 연주해야 하는데, 조심스럽고 상냥하게

뜯으면 내 곡이 내 곡이 아니게 된다.. 영상처럼.

미치, 김치볶음밥에 김치가 들어가지 않은 게 된다.


연주는 미친ㄴ처럼 해야 한다.

그 곡이 느리고 서정적인 곡이든

빠르거나 웅장하거나 신나는 곡이든


내 곡은 미친ㄴ처럼 해야, 아니,
내 곡은 미친ㄴ이 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미친ㄴ이 좋다.

성격이 ㅈㄹ같아도 그래야 잘 맞는다.


가끔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학생 시절 기숙사에 살 때 종종 표현하기를


"음악원 기숙사에 또라이가 몇백 명 같이 사는 거지"

"나도 그중 하나이고"


음악적으로 아주 잘 통하고 매우 친했던 친구와 서로


"난 미친놈이야"

"내가 미친 사람이지"

"아니야, 내가 미친놈이야."

"나도 미쳤거든."

"내가 너보다 더 미친 인간이야!"

"아니야, 내가 더 미쳤어!!"


서로 지가 더 미쳤다며, 즉석에서 가르침을 받고는

일본 3세가 부른단 개구리 노래를 캐논으로 둘이서

부르며 길을 걸었던, 행복했던 어느 날이 스쳐간다.


다시 미치기 위해 돌아갈 길이 아득하게 느껴지나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가야만 할 길이었을 것이며,

음악에 미쳐야 비로소 숨 쉬고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알고보면 몰래 미쳐있고,

같은 미친ㄴ을 보면 공감하며,

젠틀한 연주보다 미친 연주가 나의 곡에 어울린다.


다시 제대로 미치고 싶다.



다소 과격한 단어 반복에 사과 한 박스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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