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차별한다 에서 언급된 적 있던 친구가
악보와 가사를 보내며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예의 바르고 배려심 많은 사람이라, 혹 나에게
부담이 될까 봐 여러 생각을 하고 제안하길래,
굳이 그러지 말라고, 그냥 내가 다 해주겠다고,
대신 이 달 마감악보가 있으니 그 뒤에 보내면
어떻겠냐는 답과 함께, 즉흥적 행동을 더했다.
요즈음 통 앉지 못하던 피아노 의자에 앉아서
친구가 지은 단순하고 귀여운 멜로디의 노래를
한 소절 부르며 반주를 해서 음성으로 보냈다.
연습을 한 건 아니고 (굳이 필요 없기도 하고)
그냥 손 가는 대로 화성을 예쁘게 쳐 주면, 그런
멜로디가 오히려 더 맘에 와닿을 수 있거니와
나는 그걸 금방 할 줄 아니까 2분 동안 투자해,
"작은 선물이야. 이게 선물이 될지 모르겠지만"
보냈는데 곧 확인하고도 아무 답이 오지 않았다.
그런가 보다 하고 할 일을 하다 저녁에 답이 왔다.
음성만 3개가 와 듣기 시작하는데, 친구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잠겨있었다. '안 좋은 일이 있었나..?'
"사랑하는 쏘냐, 네가 연주해서 보내 준 음악 듣기
시작하는데 얼마나 아름다운지... 너무 아름다워..
이 선물을 보내줘 고마워. 나에게 진짜 선물이야.
그리고 믿기지가 않아.. 왜냐하면 음.."
하다 우는 것이었다. 듣다 조금 당황한 채 음성을
전부 듣고 난 뒤 여러 생각이 들었다.
잠시 사용한 1분 16초로,
상대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다니
10년 넘게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뤄줄 수 있다니
민망하면서도 오히려 내가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누나랑 함께 연주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
"네 음반을 듣고 그 여자분이 술담배를 끊게 됐대.
평생 마신 술에 골초인데, 네 음악 듣고 그게 됐대."
"정말 너무 아름답습니다. 감사합니다. 음악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말할 리 없으나, 종종 듣는 위로의
말이 있었다. 내가 받는 위로는, 첫째로 음악에서
신이 직접 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이고,
두 번째는 내 음악으로 위로받은 이를 볼 때였다.
음악과 멀어진 지 아주 오래되었다.
음악의 본질과도 멀어져 외면하였다.
음악은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지만
나를 가장 괴롭게 만들기도 했기에
언젠가부터 나는 음악을 외면해 버렸다.
그런데 오늘 그런 생각이 문득 든다.
손에 잡히지 않으나 마음을 사로잡고
눈에 보이지 않으나 정말로 존재하고
공간에 남지 않으나 값을 매길 수 없는
음악
소리를 선물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인가.
살아있는 동안, 조금 더 마음을 추스르고 기운 내어
마음과 영혼을 위로하는 선물을 더 만들어야겠다.
Michael W. Smith의 음반 중 The Giving를 듣고
현악기 악보를 만들어 준 뒤 난 피아노를 치던 추억.
원래 남의 음악을 그대로 따거나 악보화 하지 않으나
여러모로 마이클의 팬이었으므로 이 곡은 그리했고
교회에서 문경진이 들었던 연주도 그러고 보니 이 곡.
이 음악이 당신에게 뜻밖의 위로와 선물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