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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Nov 23. 2024

잘난 사람 옆에 끼려면

꼭 잘나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가끔씩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웃겼기 때문이고 약간 난감했기 때문이며
조금은 미묘하게 인상깊었기 때문인 그 날.


발단은 기내에서 시작되었다.

KE923 비행기를 탔는데 근처 좌석에서 앗!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 ..!

- 엇! 너, 임마, 러시아 가는 거야?

- 네, 안녕하세요! (러시아행 비행기ㅎㅎ)


몇 년만에 뵌 아저씨의 머리는 곳곳이 희어졌고

나도 이미 성인이 되어버렸지. 이륙 전이었던가

후였던가 아무튼 승무원들이 탑승객에 무관심한

타이밍에, 한 승무원이 아저씨의 벌크석 앞에서

무릎을 구부린 채 올려다보며 인사하고 불편하신

것이 없는지 등의 편의사항을 여쭙기 시작했다.

그런 위치에 계신가.. 뭔가 그럴 것 같기는 했다..


8시간 쯤 지나 비행기는 착륙했고, 기내에서 나와

출입국 심사장 쪽을 향해 가는데, 아저씨가 나에게

같이 가자고 부르셨다. 그런가 보다 하고 따라가다

다들 내려가는 계단을 내려가지 않고 멈추시더니,

갑자기 나타난 공항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셨다.


직원의 태도를 보아하니 러시아 공항에서도 특별

대우를 받으시는 것 같았다. 아저씨 인맥이 한국뿐

아니라 러시아에서도 장난 아니기는 했던 것 같고.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절대 팔지 않는 좌석-

국가 원수, 외국 대사 정도는 되어야 앉는 귀빈석에

아저씨 가족은 항상 앉을 수 있었다.(나도 덕분에)


'무슨 일이지..?'


처음에는 무심하게 서 있다가 눈치를 보니 왠걸,

아저씨가 나까지 같이 통과시켜 달라 떼를 쓰셨고

직원은 죄송하다, 귀하만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저씨는 아쉬운 표정으로 웃으시며


- 안되겠다. 너도 바로 나가게 해주려고 했는데.

- 어휴,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는 심사장 갈게요.

- 그래, 연락처 줘 봐.


그렇게 아저씨는 VIP, 나는 일반인으로 입국했다.


며칠 후 아저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 여기 내가 사람 몇 명 불러서 같이 식사 하는데

 너도 와. 밥 사 줄게, 꼭 와, 알았지?


한식당이었다. 그것도 마침 걸어가는 거리에 있던.

나이스...ㅎㅎ 유학생은 밥을 절대 거절하지 않지~


식당에 가 보니 KAL에서 근무하는 지인 빼고

다 초면이었다. 그리고 전부 아저씨들이었다.

느낌상, 여기에 껴도 되나 싶은 분위기였다.


- 어, 들어와 들어와, 어서와!


일단 앉자, 아저씨가 사람들을 소개해 주기 시작

하셨다. 다 기억도 안 나지만 6~7명 정도 있었나..


- 자, 여기는 대한항공 지점장, 여긴 코트라 관장,

 이쪽은 우리 대한민국 대사관 총영사, 내 후배고..


직장에서 그냥 직원인 사람은 지인 밖에 없었고

학생이기만 한 사람은 나 뿐이었다. 차례로 소개

하시다, 내 차례가 되자 갑자기 멈칫 하셨다.


- 여기는..


아직도 기억난다. 그 멈칫... ㅋㅋㅋㅋㅋㅋ

나를 뭐라고 할 건데.. 뭘로 소개할 거냐고...ㅎㅎ


- 여기는, 심성이, 아~~주 고~운 애야.


그때 정말... ㅋㅋㅋㅋㅋ 잊을 수가 없다 그날을.

그게 내 소개라니. 아저씨... 아저씨.... ㅋㅋㅋㅋ

지인이 멀리서 약간 웃음을 참는 것 같아보였다.


- 우리 애들 친구인데, 내 아내가 생전에 얘를

 아주 예뻐했어. 맘씨가 착해. 차이콥스키 다니지?


- 앗, 네..


생각해 보면, 그 아내분이 먼저 나를 집에 불러

자녀들과 친하게 지내도록 하셨다. 집밖으로 잘

나오지 않던 내게 기사를 보내 부르던 집이었다.

(그 자녀들에게 은혜를 갚겠다 하고 실천하다가,

중간에 멈추게 되어 양심의 가책을 계속 느낀다)


무작정 편하기에는 애매한 멤버 사이에 꼈지만

호탕한 아저씨 덕분에 맛있는 음식은 다 먹었다.


- 네가 집까지 바래다줘.


총영사에게 나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 집이 어디에요?

- 아니에요, 저 걸어가면 돼요!

- 그냥 타고 가. 야, 네가 태워주고 가.

- 저 진짜 괜찮은데.. 가까워서 걸어가면..

- 얼른, 태워 줘.

- 네!


진심으로 원치 않았으나 할 수 없이 탔던 기억.


평범한 일상이기는 했지만 문득 떠오를 때마다

인생이, 자리로 흐르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구나,

마음의 역할 가장 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오늘처럼 가끔 든다.


제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일할 때는 모르지만

적어도 쉴 때는, 똑같이 잘난 사람을 옆에 둬야

쉬어지는 건 아닐테니 말이다. 평안을 얻는 것은

 평안을 가진 사람과 함께일 때 가장 쉬워진다.


그리고 나는 그 평안을 예수로부터 얻을 수 있다.

내가 얻을 수 있다면, 당신도 역시, 얻을 수 있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남기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세상이 주는 것과 달리 내가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John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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