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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Dec 02. 2024

호두까기 인형

12월이니까

요즘 내가 들은 [호두까기 인형] 연주 버전이다.

완성도고 뭐고 다 떠나서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차이콥스키 (모스크바국립)음악원 볼쇼이 홀의

차이콥스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게 딱이지.

БСО, В.Федосеев

35분간 동심 느낌으로 쉬고픈 분들은 틀어두시고

연말이고 뭐고 난 호두 깔 시간도 없다 하는 분을

위해 아래에 종류별 곡 위치 설명을 일부 붙인다.

발레까지 볼 여유는 없으나 음악은 들을 수 있다.

유명한 데에 이유는 있지 않겠나. 듣기에 괜찮다.


작은 서곡 00:32 흔한(?) 발레의 시작


행진곡 04:04

할 일을 더 빨리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해 준다.

ㅋㅋㅋㅋ 할 일 많은 분들은 듣고 효과 보시길.

참고로 내가 이 악보+연주 해야 해서 더 그렇..


사탕요정의 춤 (feat. 첼레스타) 06:40

호두까기는 몰라도 이 곡은 웬만해서 다 알 곡.

첼레스타는 작은 업라이트 피아노처럼 생겼고

특별히 신비롭고 예쁜 소리가 나니 듣고 가자.

아직까지 이 소리 싫어하는 이를 보지 못했다.


트레팍 (러시아 전통춤) 08:35

매우 러시아 스타일로 연주한다. 러시아 답달까.

아무튼 유럽과도 다르고 아시아와도 다르며 저

먼 미국과는 완전히 다른 성향을 가진 나라이다.

소비에트 이전의 옛 러시아 음악임을 기억하자.


꽃의 왈츠 (feat. 하프) 18:30

도입부의 하프 파트는 듣기에 좋아도 악보 그리기

몹시 귀찮은 부분. 이 곡 의뢰 들어올 때는 솔직히

반갑진 않.. 그래도 춤추기에 적합, 하프의 간지를

볼 수 있고ㅎㅎ 중간 첼로 파트가 매우 듣기 좋다.

다만 나에게는 곡이 좀 길다. 줄였으면 좋겠....


번외

어쨌차이콥스키의 곡이고 나도 그 이름 박힌

Moscow State Tchaikovsky Conservatory

졸업생이니 작곡가 에피소드 정도는 풀어보자.


참고로 우리 학교 이름은 원래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인데 뒤에 차이콥스키 이름이 따라온다.

그래서 이름이 길고 '차이콥스키'를 러시아어로

발음할 때에는 좀 다르게 난다. 취이꼬-fskyh~

이런 느낌이다. 뒤의 히는 히가 아니지만 패스.


음악원 재학 중 나의 피아노 선생님은 백발마녀..

캐릭터로 대부분의 학생들을 은근 긴장시켰다.

나에게는 천사처럼 해주셨지만 편하진 않았던.


롱부츠에 눈꼬리가 저 높이 올라가는 아이라인.

조근조근 모든 학생들에게 극존칭을 사용하며

연주를 잘하면 고품격 느낌으로 존중해 주고,

연주를 못 하면 침착하고 상냥하게 독설 가능.

내가 만난 교수님 중 그랬던 분은 딱 그 한 명.


부전공 피아노 과장이셨는데 학생이 레슨 도중

조금 아니다 싶게 치는 경우, 뒤에서 기다리던

나를 보며 눈빛으로 함께 비웃기를 원하셨다...


프로 공감러이나, 나도 피아노를 잘 못 친다고

늘 생각해 왔으므로 매번 심기가 매우 불편하여

밖에서 기다리고 싶었지만, 오면 왔다는 표시를

해야 하고, "들어와 편하게 기다려요~" 하셔서

또 할 수 없이 들어가 의자에 앉아 기다리던 중


우아한 걸음으로 살며시 내 곁에 다가오시더니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 어머~ 당신은 차이콥스키와 비슷하네요~

- 네??

- 작곡가라 그런지 호호~

- ?? (나는 이성애자이고 곡 스타일도 다른데..)

- 차이콥스키도 의자에 앉을 때 꼭 그렇게

 앉았어요~

- 네? 어떻게 앉..


그때 알게 됐다. (본인의 재발견)


- 차이콥스키도 학교에서 의자에 앉으라고 하면

 똑바로 편히 잘 앉기보다~ 지금 당신처럼 호호~

 살짝 걸터앉기만 하고 성격이 조심스러웠다죠~

 자신만만해도 되는데~ 겸손해서 그렇겠죠~


신빙성은 있다. 차이콥스키가 우리 학교에서

가르쳤으니까. 앉는 스타일까지 소문이 났나.

근데 차이콥스키는 게이였잖아.


가시방석 같아서 의자 1/3 지점에 앉았는데

차이콥스키가 그랬다는 말에 뭔가 미묘했다.

그에게도 편하지만은 않던 자리가 많았나.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한국에서,

엔지니어와 연주자에게 요구 내지 부탁해야

하는 입장의 자리에서 도촬 된 사진을 보고는

빵 터져버렸다. 저게 뭐야.. 차이콥스키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75% 절약모드/ 그래서 대표님이 내게 편하게 앉으라셨던 것이구나

왜 스스로 민망하게 끝내는지 도저히 모르지만

차이콥스키 착석 사진은 동상뿐이라 대신 올림.

그럼 이만 안녕히. (평소 자세 대개 널브러짐)

학교 앞 눈 맞은 차이콥스키. 동상만큼은 자신감 있게 ㅎㅎ

옛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미국 발레 연 수입의 약

40%, 한국 발레 연 수입의 2~30% 정도라고 하니

이쯤 되면 작곡가로 세계 평화 이바지 가능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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