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시기 : 2015.7-8)
로마제국의 위용을 그동안 몰랐던 것 죄송합니다.. 베니스에서 그냥 독일로 가려다가 그동안 이상하게 인연이 없었던 로마를 구경이나 하고 가자 싶어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이탈리아에 눌러 살 기세로 변신해버렸다. 정말 초현실적인 도시 로마! 원근법 작도법에서 튀어나온 듯 칼같이 각 잡힌 건물들이 거대하긴 또 얼마나 거대한지.. 아니 어떻게 2천 년 전에 저런 건물들을 짓는 게 가능했으며 또 어떻게 지금까지 남아있는 게 가능했을까.
찍어놓은 사진들을 아무리 뒤져봐도 로마의 이 엄청남을 제대로 보여주는 컷이 없다. 그래서 풍경 사진은 넣어두고, 대신 산 루이지 데이 프란세시(San Luigi Dei Francesi) 교회에 있는 카라바조의 작품 사진을 올린다. 로마의 명료하고 균형 잡힌 분위기에 비해 어둡고 비밀에 싸인 것 같은 그의 작품들. 바티칸을 비롯한 다른 미술관에도 카라바조의 작품들이 있지만, 이 작품 <성 마태의 소명>이야말로 대표작 중의 대표작이니 안 볼 수가 없다(그 옆에도 카라바조의 작품이 두 점 더 있다. 세 점이 ‘성 마태 연작’을 이룬다). 이탈리아에는 이처럼 미술관이 아니라 교회나 묘당 같은 곳에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이런 곳들은 종일 문을 열지 않아서 시간을 잘 알아보고 가야 한다. 나는 다행히 상당히 정확한 가이드북을 갖고 있어서 때를 놓친 적은 없었다.
교과서가 갖는 함정(?)이 현지에선 이렇게 잘 드러난다. 종이 위에서 그림만 보는 것과 전체 환경 속에서 감상하는 것은 이렇게 차이가 나는구나. 이 그림은 세리였던 성 마태가 예수님(오른쪽)의 부름을 받고 놀라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당대 로마인들의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빛과 어둠으로 구성된 극적인 장치가 이 장면을 비현실적인 무대로 바꿔준다. 묘사가 사실적이어서 이 순간의 신비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도판만 보고 짐작했던 것보다 더 강렬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들이 앉아있는 저 골목의 풍경은 내가 로마 곳곳에서 보았던 바로 그 야외 테이블이어서 놀랐다. 연한 갈색의 벽조차도 똑같다.
지금 보니 카라바조도 역시 로마인 맞다는 생각이 든다. 어둡다 해도 그는 로마인이다. 어둠에 잠긴 부분조차 형태와 무게가 정확히 가늠되도록 묘사한 정확성, 자신감 있는 필치. 바로크가 반종교개혁의 선봉에 섰다는 역사적 사실은 적어도 단순한 진실을 추구했던 카라바조에겐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떠나온 베니스를 생각하며 갑자기 든 생각. 이탈리아에서 현대미술 비엔날레를 열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미켈란젤로와 카라바조와 티치아노를 경쟁상대로 삼는 건가. 필패일 것인데(하긴 이탈리아인들은 그런 작품들 너무 봐서 새로운 것이 보고싶을 수도 ㅎㅎ). 문득 비엔날레에 밀려 아직까지 가보지 못했던 베니스의 아카데미아 미술관과 거기 있다는 조르조네의 <폭풍>이 보고싶어졌다.
-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처음 저 작품이 있는 교회 구석으로 들어가면 조명이 없어서 컴컴하다는 것. 동전을 넣어야 불이 켜지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약간 얄밉다면 얄밉지만, 기부라고 생각하는 게 편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