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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hoes May 20. 2024

연주도 육체적 운동이다

쌩초보의 피아노 연습

학원을 안 다니고 혼자 피아노 연습을 한다는 말을 하면 그게 가능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학원 다닐 시간과 여력이 없는 것도 있지만, 내가 원체 각종 학원과 합이 안 맞는다는 걸 과거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에 독학을 선택했다. 물론 이렇게 하면 잘못된 습관을 익혀버릴 위험이 있겠지만, 유튜브 영상들을 보면서 어떻게 쳐야 하는가를 계속 배우고 그걸 토대로 이미지 트레이닝 기법 같은 걸 고안해보고 있다.


내 전공이 아니라서 그렇게 느끼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피아노 레슨 영상에는 양질의 콘텐츠가 많은 것 같다. 실제로 오프라인 레슨을 하는 분들이 운영하는 채널도 많은데, 집에 편히 앉아서 무료로 강의를 들을 수 있으니 정말 좋은 세상이다. 한번 피아노 레슨을 보기 시작하면 알고리듬이 숨은? 채널까지 계속 찾아주니 더 좋다. 더불어 음대생 고행기 같은 것도 따라 나와서 저런 거였나 하고 재미있어하기도 한다(물론 과장이 섞였겠지만 ㅎㅎ).


물론 강의들 사이에서도 퀄리티 차이가 있다. 또 피아노를 잘 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별개겠지.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강의가 있고 그렇지 못한 강의도 있는데, 내가 종종 도움을 받고 있는 한 강의에서 아르페지오를 잘 치는 법을 배웠다. 몸이 앞으로 움츠러들거나 팔을 몸에 붙이지 말고 공간을 확보하라는 조언. 로테이션의 개념이 뭔지도 배웠다. 손만이 아니라 손목도 연주에 합류해야 하고, 위 아래로 움직일 뿐 아니라 옆으로도 움직여야 한다는 것. 손가락이 다음 칠 건반 쪽으로 미리 가 있어야 한다는 것 등등.



참고로, 아래는 현란한 오른손 아르페지오를 담고 있는 쇼팽의 에뛰드 10-1. 쇼팽 콩쿨 당시 조성진의 연주. 공연 영상은 손모양과 몸 자세를 볼 수 있어서 좋다.


https://youtu.be/9E82wwNc7r8?si=clk8sduj8hyNYsrB


- 전에는 조성진의 연주는 쌩초보에게는 방해? 돼서 안듣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정도는 아닌  보면 쪼끔이나마 발전한  같다. 자연의 산물인 것처럼 보이는 예술이 최고의 경지라는 칸트의 말을 조성진을 들으며 실감한다. 건반들이 마치 독립된 개체가 아닌 것처럼 하나의 흐름 속에 음이 녹아든다. 저렇게 말도 안되게 빠른 속도로 계속되는 아르페지오를 저렇게 전혀 힘들어간 느낌 없이 맑고 고르게 그리고 부드럽게 연주할  있다니(그나저나 조성진 이전에 쇼팽이 미친 ..).


그리고 구독하던 채널은 아닌데 어제 내가 관심 있는 주제의 강의가 떠서 클릭해 보았다(아래 캡처). 녹턴 9-2의 전반부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최대한 작으면서도 감미롭고 탱탱한 소리를 어떻게 내는가 하는 것이었다면(특히 왼손의 화음을 아코디언처럼 쿵쿵대지 않게 치기가 무척 어려웠다), 후반부의 과제 중 하나는 ‘큰소리를 어떻게 딱딱하지 않게 내는지’이다. 엄청 격정적인 것까지는 아니지만 con forza로, 크고 빠르게 쳐야 하는 부분이 있다. 작은 소리를 내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져서 사실 후자는 크게 연습을 안했는데 후자도 분명 과제라서(사실 뭐가 과제가 아니겠냐마는..) 이 강의를 접하니 반가웠다.



손이나 팔에 인위적으로 힘을 줘서 치면 안되고 온몸으로 힘을 준비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 무게를 한쪽에 실어 대각선으로 던지듯 쳐보라는 내용이었다. 아하 그래서 피아니스트들이 포르테, 포르티시모를 칠 때 보면 거의 의자에서 일어나는 거구나.


어떤 크기의 소리이건 중력을 느끼며 힘을 자연스럽게 아래로 전달하고 건반을 끝까지 눌러야 한다는 건 여러 강의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인위적으로 힘을 주면 안되고 손가락은 힘을 빼되 또 힘없이 질질 끌면 안된다는 것이다. 건반을 끝까지 누르지 않으면 소위 소리가 빠지기도 한다. 더불어 소리의 크기는 건반을 누르는 속도와 관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천천히 누르면 더 작은 소리가 난다(그리고 살짝 늦게 들어가는 것도 소리를 줄이는 방법이라는 걸 배웠다). 실제로 배운데로 해보니 분명 소리가 달라져서 뿌듯하기도 했다.


강의들을 보며 한 가지 또 깨달은 건 피아노 연주도 스포츠처럼 육체적 운동이구나 하는 거였다. 더 정확히는 육체와 정신의 연결이겠지. 어떻게 몸에서 정신으로 가는 길을 최대한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낼 수 있는가 하는 것. 첫번째 캡처한 강의에서, 피아노에 감정을 담는다는 건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테크닉으로 하는 거라는 말이 나왔는데 이것도 연관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 이렇게 보면 테크닉이 부족한데 감정이 좋다는 말은 성립이 안되는 것이 아닐지. 테크닉 없는 감정은 과잉으로 나타날 뿐이겠지.


(피아노 레슨은 아닌) 어떤 음악 채널에서, ‘흔히 오케스트라에서 타악기 연주를 날로? 먹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내용을 접했는데 이것도 관련있어 보인다. 타악기도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조작이 많기도 하지만(팀파니에서 페달링 같은) 명료한 소리를 정확하게 잘 내기 위해서 박자감각만이 아니라 신체적 균형감각을 필요로 한다는 것. 어떤 부분에선 체조에서 도마 같은 종목과 비슷한 듯? 여러 겹의 동작이 켜켜이 쌓이기보다는 힘, 명료성, 유연성이 한 번에 드러나야 한다는 점에서. 소리 자체도 워낙 크고 그 한 번의 타이밍을 놓치면 회복할 기회가 없기에 어떤 면에선 미스터치가 나도 그대로 진행할 수 있는 피아노보다 더 어렵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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