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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hoes Aug 16. 2024

혼자 떠난 강릉 (2)

국내여행

다른 해변들에 대한 단상.


# 경포해변


강릉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경포해수욕장! 이곳을 빼놓을 수 없지. 마지막 날 체크아웃하고 강릉역에 짐을 맡겨놓은 채 버스를 타고 갔다. 지방도시엔 버스 배차 간격이 뜬다는 특성이 있는데 강릉도 예외가 아니었다. 택시 타면 금방 가겠지만 나는 왠지 버스 타고 현지인처럼 다니고 싶었다. 불친절한 택시기사를 만나면 기분 상할 우려도 있고.


혼자 여행할 때는 타인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다. 너무 숫자가 많지도 적지도 않은 익명의 사람들이 서로를 간섭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장소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혼여족들의 여행지이다. 이 점에서 강릉은 적절했다. 요즘은 전반적으로 국내여행지가 쇠락하는 듯한데 강릉에는 여전히 인기 관광지의 느낌이 있었다. 특히 이 경포해변에는. 그렇다고 사람이 너무 많지도 않았다. 휴가철을 살짝 지난 바닷가는 쓸쓸하지 않을 만큼만 붐비고 있었다. 사람이 은근히 있었는데 사진으로 보니 마치 텅 빈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해변이 넓었다. 이정도면 캘리포니아 못지않게 광활하지 않을까.



경포해변이 왜 강릉바다의 퀸인지를 가보고 금방 깨달았다. 와본지가 너무 오래돼서 옛날엔 어땠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탁 트인 해변은 무척 넓었고 소나무숲 그늘은 시원했으며 숙소와 식당이 많아서 놀기 부족함이 없다. 그렇다고 너무 요란한 분위기도 아니었다. 조금은 더 북쪽으로 올라와서인가 물빛도 더 파랬고 맑은 느낌이었다. 비록 위압적으로 높이 솟은 두 고층 호텔은 마음에 안들었지만, 5성급 호텔이 있다는 게 경포해변의 장점으로 꼽힐 수도 있겠지. 게다가 넓디넓은 이곳에서 양쪽 끝에 있는 고층건물 두 개 정도는 이 한없이 수평적인 풍경의 고요함을 그렇게까지 해치지 못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넓고 시원한 식당에서 물회를 먹고 나서 바닷가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 강문해변


지도를 보니 경포에서 걸어갈 만한 거리에 강문해변이란 곳이 있었다. 바다를 떠나 경포호를 따라 걷자니 생각보다 더웠지만 (경포호는 그 자체로도 경치가 좋았지만 바다 옆에 옆에 있는 바람에? 어쩐지 손해를 보는 느낌이다) 이내 지름길을 찾았다. 문제의 그 높이 솟은 호텔 경내를 지나가는 것이었다. 호텔을 나와서 보니 강문 솟대다리라는 보행자 전용 다리가 있었다. 바다 위에 아치형으로 걸쳐져 있는 이 다리는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높이였는데(나는 고소공포증이 심하다) 모자의 큰 챙으로 양쪽을 가리고 간신히 건넜다. 안보이면 공포감이 확 줄어드니 어쩐지 좀 기만적인 것 같지만…



다리를 건너자 바로 강문해변이었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아늑한 분위기에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세련된 장소는 아니었지만, 바다가 오목하게 들어간 지형에 파도도 잔잔해서 가족 단위로 놀기 좋은 해변이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다리 근처에 있는 군사시설(?)이 이 마치 작은 성채처럼 보였고, 수영할 수 있는 경계선을 그어놓은 양 바닷속에 해초들이 띠를 이루고 있었다. 바닷가에는 건물이 송정보다는 많고 경포보다는 적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걸어오느라 지쳐서 가게에서 얼음잔과 콜라를 샀다. 모래 위에 놓인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서 마시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느낌이었다. 평소 탄산음료를 마시지 않는데 여기선 한잔 마셔줘야 할 것 같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해변마다 관리 주체가 달랐고 구명조끼에 그 명칭이 쓰여 있는 방식도 서로 달라서 재미있었다(송정해변에선 손글씨로 송정이라고 써놨더라). 비치파라솔 색깔도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로 달랐다. 송정은 무지개색과 빨간색, 경포는 흰색+하늘색, 그리고 빨간색이었는데 강문해변에선 연보라색이었다. 그리고 안목에선 흰색이었다.


# 안목해변


커피거리가 조성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카페들이 잇따라 많이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로컬의 작은 카페들이 주종이었다. 안목해변은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작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오래 영업해 온 것 같은 적당히 촌스러운 식당들과 최근에 새로 생긴 듯한 예쁜 선물가게나 펜션들이 섞여 있었다. 길이 생각보다 좁았고 유명 관광지라기보다는 동네 사람들이 놀러 오는 곳 같은느낌이었다. 숙소에서 제일 가까워서(버스로 20분 정도) 다녀오기가 만만했다. 교통편도 많아서 오가는 길목 같은 역할을 했다. 오가면서 세 번은 들른 것같다. 사실 알고 보니 송정해변에서 숙소 쪽으로 바로 가는 버스도 꽤 있었는데 자꾸, 일단 안목해변으로 가서 갈아타자, 란 생각이 들었던 것 보면 여기가 확실히 길목의 느낌이 있는 것 같다.



송정해변은 소나무숲에 덩그러니 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해지면 무서울 것 같았는데, 안목해변은 저녁나절이 되어도 사람이 많았다. 안목해변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반려동물과 함께 올 수 있는 ’펫 비치‘가있다는 것과 포토존이나 가로등 같은 구조물들이 곳곳에 있었다는 것이다.



하얀색 비치파라솔 근처에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바다를 보고 있었다. 좀처럼 지지 않던 여름해가 마침내 기울어지려고 하는 시간, 바다는 좀 더 차갑게 파란빛으로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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