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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hoes Dec 05. 2020

다트무어에서의 휴식

영국여행

다트무어에 두 번째 간 것은 2017년 10월이었다. 리서치 여행으로 코펜하겐과 암스테르담에 갔다가 문득 암스테르담에서 다트무어의 관문 도시 엑시터까지 가는 직항 비행기가 싸게 나온 걸 보았다. 오슬로에 가려던 계획을 접고 영국으로 향했다. 당시 일에 치어 무척이나 지쳐 있던 나는 조용한 황야에서 쉬고 싶었다. 내가 애정하는 다트무어에서의 휴식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빠듯한 일정에 영국까지 간 건 역시 무리였던 듯, 엑시터에서 버스를 타고 타비스톡에 도착하니 목이 아프고 열이 나기 시작했다. 타이레놀과 뜨거운 차로 응급처방을 하고 잠들었다. 하긴 대도시도 아니고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시골에 갔으니... 이 21세기에 동양인이라곤 나 한 명 밖에 안 보이는 곳에.

그런데 호텔이 대박이었다! 타비스톡의 베드포드 호텔. 호텔인지 성인지 헷갈릴 정도. 그야말로 아가다 크리스티의 소설 속에나 나올 것 같은 분위기... 미스 마플 같은 동네 할머니들이 총집합해서 차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천정이 높고 햇볕이 잘 들어오는 우아한 침실, 오래된 그림과 사진들이 빽빽히 걸려있는 벽, 전 세기의 물건들로 가득 차 있는 듯한 살롱,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것 같은 호텔이었다.


타비스톡의 베드포드 호텔(Bedford Hotel)


데본은 어떤 곳인가 하면, 예쁘지만 적당히 예쁠 뿐 눈이 휘둥그러지게 아름답지는 않다. 마을은 소박하고 수수하다. 다트무어의 황야도 그렇다. 인간의 손길을 거부하는 듯 삭막함 그 자체인 미국 서부의 자연과 비교하면, 적당히 낭만적이고 적당히 황량하며 또 적당히 아름답다. 그래서 이곳에 가면 마음이 편해지는지도 모른다.


하루에 딱 한 두 번 다니는 버스를 타고 다트무어로 들어갔다. 마을을 빠져나와 황야를 걸었다. 바보같은 질문이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왜 이렇게 황량한 곳에 살고 있을까? 예전에 감옥이 있었다고 하니 그 관계자들이 정착한 건가. 버스에 함께 타고 온 꼬마 아이들이 나를 보고 "왜 저 여자는 여기 사진을 이렇게 많이 찍어?" 한다. 얘들아 다 들려. 나도 영어는 들을 줄 안단다 ㅎㅎ 그리고 늬들에겐 여긴 집이지만 내게는 무척 신기한 곳.. 아니 오랫동안 로망이었던 공간이란다. 아이들은 풍경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재잘재잘 장난을 친다. 내가 내리기 한 정거장 앞, 작은 집 앞에서 내린다.


다트무어 풍경


다트무어 근처에 있지만 황야 밖에 위치한 타비스톡이 아기자기하고 나름 활달한 분위기인데 비해, 황야 안의 마을 프린스타운은 이른 오후부터 사람의 그림자를 찾아보기 어려운 썰렁한 곳이었다. 코난 도일이 <바스커빌의 개>를 구상했다는 호텔은 현재 다트무어 비지터 센터로 운영하고 있었다.


다트무어 풍경(좌), 프린스타운의 비지터 센터에서 발견한 설명문(우)


펍에서 차를   마시고( 차보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영국에선 역시 .. ) 센터  건너 버스 정류장 표시도 없는 곳에  있으려니 나와 같은 처지의  노부부가 다가왔다. 연세는  있으신  같은데 몸이 꼿꼿하고 스타일이 멋있는 노부부였다. 그들과 함께, 과연 버스는 오는 것일까 토론(?)하다 보니 예정시간보다 15분은 늦은 버스가 왔다. 노부부의 행선지는 플리머스였다. 나는 타비스톡으로 돌아왔고. 다트무어 깊숙히 들어갔다오니  작은 마을이 갑자기 안락하게 느껴졌다. 침대에 몸을 파묻고 누웠다. 내일 떠나야하는 곳에서도 집의 온기를 느낄  있는 . 여행자의 특권.


(여행시기 : 201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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