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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hoes Dec 14. 2020

루앙 프라방, 느린 시간 속에서

라오스

(여행시기 : 2016. 6월말 - 7월초)


라오스 최초의 통일 왕국인 란쌍 왕국의 수도였던 루앙 프라방. 비엔티엔을 출발한 작은 비행기가 생각보다 큰 루앙 프라방 공항(엄연히 국제공항이다)에 내린 후, 시내까지 가는 대중교통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뚝뚝이를 타고 이동했다. 가격 협상을 해야하는 탈 것 선호하지 않지만 방법이 없다. 그래도 적어도 내가 라오스에서 만나본 뚝뚝 운전사들은 물정 모르는 외국인에게 사기치려는 극악함이 없었다.


루앙 프라방은 도시라기보다는 마을이라고 불러야 할 작고 소박한 곳이었다. 그래도 왕국의 수도였다는데 이 소박함은 무엇. 여기서는 왕궁조차도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느낌이 없었다. 태국이나 베트남의 옛 건축물들과 비교해봐도 그렇다. 그런데 예쁘다. 세련되고 화려한 것은 아니지만 어여쁜 느낌이다. 길게 늘어진 처마의 곡선들과 반짝이 장식들. 왕궁 외에도 고색창연한 사원이 많았다. 사원들은 인가와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일반 집들과 섞여 있었다. 이 집들의 상당수는 게스트하우스와 식당이었는데, 주인분들의 태도가 너무 한가해서 영업하는 거 맞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난 루앙 프라방이 금방 마음에 들었다. 역사의 결이 쌓여있는 소박하면서 우아한 공간.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 같은 곳(실제로 비엔티엔에서 육로로 이동하기는 만만치 않다). 루앙 프라방이라는 이름도 멋지다!



루앙 프라방은 메콩강과 칸 강이 만나는 곳에 있다. 메콩강이 더 크고 유명한 강이지만 강변에 레스토랑 카페들이 늘어서서 그냥 접근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메콩 강변에서 보는 일몰은 멋졌지만, 낮에는 강변이 대부분 한가하게 개방되어 있는 칸 강 쪽에 있는 것이 더 나았다. 도착한 다음날 아침, 여기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이라는 왓 씨앙통에 갔다가 체력 소진으로 이른 점심을 먹고 나니, 할 일이 없어졌다. 칸 강가에 멍하니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 벌레소리와 살랑대는 바람이 낮잠을 부른다. 뭔가를 보러 가야 한다는 욕심이 무쓸모한 곳이다. 그냥 강에 앉아있는 것이 제일 보람차다.



그래도 아예 움직이지 않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닌지라, 작은 동네지만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너무 더워서 중간에 호텔에서 쉬다가 다시 나간다. 칸 강에 놓인 대나무 다리(아.. 위험해보였다)를 건너 섬에도 가봤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육지보다 더 소박한 마을이 있을 뿐. 작은 가게에서 미지근한 콜라를 사먹고 다시 다리를 건넌다.


칸 강가. 메콩강도 그렇고 왜 이곳의 강은 이렇게 황토색일까? 이 빛깔 자체가 이국적이다.


중심부를 벗어나서 외곽으로 걸어간다. 동네 사람들이 사는 구역이 나온다. 사원이 있는 중심가보다 더 소박한 곳이다. 색색의 옷이 널린 대나무 빨랫줄, 금방 쓰러질 것처럼 보이는데 가까이 가보니 없는 게 없어 보이는 작은 문구점(원래 문구점엔 없는 게 없지), 아침식사만 팔고 문을 닫는 노점 식당들.



머리에 붉은 띠를 매고 얼굴이 새카맣게 탄 서양 배낭 여행족들이 많이 보인다. 에어컨이 거의 없는(그나마 비엔티엔에선 절반 정도는 에어컨이 있었는데) 곳이라서, 가물에 콩 나듯 있는 에어컨 장착 가게에 여행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나름 유명 관광지인만큼 여기도 여행객용 공간과 현지인용 공간이 얼추 구분되어 있다. 하지만 캄보디아의 씨엠립에서 느꼈던 것 같은, 시각적으로 보이는 극심한 빈부 차이는 없었다. 여행객들도 대부분 젊은이들이었다.

오랫동안 서구에 라오스는 '인도차이나의 마지막 에덴'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에덴이라니! 이 얼마나 타자화시키는 이름이야. 하지만, 뭐 좋다. 그런 상상의 공간을 마음속에 하나씩 갖고 있는 것은 여행자의 특권이니까. 그걸 현실을 판단하는 잣대로 삼지만 않으면 된다. 그냥 여기선 라오 커피나 수박 셰이크 한 잔 시켜놓고 메콩강을 바라보기로 한다. 시간이 한국보다 두 배쯤 느리게 가는 듯. 하루가 참 길다.



- 2018년, T와 함께 두 번째로 갔을 때는 오토바이가 많아져서 평화가 약간 사그라들었더라. 대나무 다리 건너 섬에도 레스토랑이 들어섰고. 지금은 더 번화해졌을 것 같다. 여행객의 로망을 위해 라오스가 저개발 상태로 남아있으라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 어딘가 씁쓸한 건 사실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이미 통과해왔던 그 ‘개발시대’의 온갖 부작용과 폐해들이 떠올라서일지도.. 그것을 피해 갈 길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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