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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hoes Dec 24. 2020

쿠샤다스(Kuşadası)의 하루

터키

(여행시기 : 2018.7)

- 이 글을 썼을땐 아직 나라 이름이 ‘터키’였습니다.


터키와 그리스를 함께 여행하는 루트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는 이스탄불에서 시작해서 배를 타고 에게해의 섬들을 둘러본 후 아테네로 들어가는 일정을 택했다(아테네에서 이스탄불로 돌아올 때는 시간 관계상 비행기 이용).

이스탄불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에게해의 관문도시 쿠샤다스로 이동했다. (스펠링만 보면 ‘쿠샤다시’일 것 같지만 현지 발음은 ‘쿠샤다스’에 가까웠다) 터키는 나라 덩치가 큰 데 비해 철도교통이 발달하지 않아서 야간 버스들이 큰 몫을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추워서 얇은 담요 같은 게 아쉬웠고 자꾸만 잠을 깨는 바람에 피곤했지만 의자는 편안했다. 그럭저럭 한 방에 장구한 거리를 이동한 것도 만족스러웠고.


마치 비행기에서처럼 밤새 버스 안을 오가면서 물수건, 커피, 빵 등을 나눠주는 승무원이 인상 깊었는데 가엾기도 했다. 자고 일어나면 아침일 텐데 왜 굳이 밤새 왔다 갔다 하면서 서빙을 해야 하는 걸까(나중에 알고 보니 터키에서 야간 버스를 타 본 사람들이 많이 이 승무원 서빙을 인상 깊어하더라).



터키 본토에서 그리스령의 섬들로 넘어가는 해상 루트는 몇 가지가 있었다. 쿠샤다스, 보드람, 마르마리스, 페티예 등의 항구도시에서 배를 타고 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택한 곳은 가장 북쪽의 쿠샤다스. 남쪽의 크레타섬은 생략할 생각이었고 사모스를 거쳐 미코노스로 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나가게 된 쿠샤다스였지만, 이곳은 그리스로 넘어가는 길목으로만 여기기엔 아까운 곳이었다! 약간 촌스러우면서도 화사하고 예쁜 동네라고 할까. 인간적인 느낌이 난다고 할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원색들이 나란히 있는데, 그게 또 묘한 매력이 있었다. 이스탄불의 역동성에 비하면 나른하기까지 한 여유로움. 이것이 지중해적인 삶인가. 이런 곳에서 한 달쯤 살았으면 좋겠다 싶다가, 그럼 다신 한국으로 못돌아가지 싶었다. ㅎㅎ

페리 티켓을 산 여행사 바로 옆에 있는 Mr. Happy’s Liman Hotel이라는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가격은 5만 원 정도밖에 안 하는데, 방도 널찍하고 큰 창이 두 개나 나 있어서 맘에 들었다. 주인 아저씨는 불상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범상치 않은 인물. 우리가 들어서자 “5박 하실 거죠?”하면서 눈을 찡긋한다. 체크인하는 동안 주인 아저씨가 모아놓은 것 같은 여러 물건들을 구경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과 동네 집.


짐만 맡겨놓고 곧바로 에페스 유적에 다녀왔다. 돌아오니 야간 버스의 후유증과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유적을 구경한 피로가 겹쳐 둘 다 정신없이 잤다. 눈을 떠보니 해가 지고 있다. 시차 원상 복귀된 거 아니냐며 T와 함께 웃었다. 주인 아저씨의 권고대로 옥상에 가서 노을을 보고 저녁을 먹는다. 음식들이 다 입에 맞았고 든든했다. 모든 게 좋다.


걷다보니 성채 같은 곳에 다다랐다. 여긴 사람이 제일 없는 편.


저녁을 먹은 후 거리 산책을 나갔다. 이스탄불에서도 느꼈는데, 터키 사람들은 야밤까지 밖에 잘 돌아다니는 것 같다. 물론 관광객들도 섞여 있겠지만, 밤늦은 시간에도 길에는 사람들이 넘쳐흐른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가족들도 많았다.


처음 터키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스탄불이 외교부 홈페이지에 ‘여행 자제’ 지역으로 되어 있는 데다 터키 자체가 이슬람 국가라 아무래도 경직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웬걸. 직접 와보니 이슬람은 훼이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흥청망청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쿠샤다스도 마찬가지. 어디나 술을 다양하게 팔고 있었고, 짧은 반바지를 입은 여자들이 활기차게 길을 활보한다. 물론 검은 옷(니캅?)으로 몸 전체를 감싼 여자들도 있긴 했다. 니캅과 반바지가 태연히 공존하는 그야말로 다문화적인 나라가 터키였다. (적어도 내가 가본 곳은 그랬다. 동부 내륙 쪽은 좀 다를지도)



- 대통령 에르도안의 이슬람 근본주의 때문에 점차 규제가 많아지고 있다고 하니,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터키의 활기차고 자유로운 매력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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