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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hoes Dec 27. 2020

북쪽 바다의 코펜하겐

덴마크

(여행시기: 2017.10)


코펜하겐은 여러 모로 내 짐작과 다른 도시였지만, 나중에라도 무언가 '덴마크적인 것'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차가운 북쪽 바다의 느낌이랄까. 비람과 비의 느낌이랄까. 꼭 봐야 할 유명 미술관도 없고 줄 서서 들어가야 할 인기 장소 같은 곳도 없었다. 덕분에 어딜 가나 여유롭게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실은 그 정도를 넘어서 쓸쓸하고 한적했다. 보행자 도로인 스트뢰에 거리 같은 곳을 제외하면 길에 사람도 별로 없었다. 10월 초였는데 모자와 장갑이 필요할 정도로 추웠고, 하늘은 흐렸다.


코펜하겐의 유명 관광지 중의 하나인 로젠보르그성.


숙소로 잡은 호스텔 주변은 무미건조한 회색 건물들과 삭막한 지하철 역이 있는 외곽지였다. 코펜하겐의 살인적인 물가 때문에 이보다 더 도심 가까운 곳에서 묵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도시가 작아서, 중심부까지 20분이면 갈 수 있었다.

호스텔 방 안은 침대와 책상 하나가 있을 뿐 아무런 장식이 없었지만, 1층 식당은 따뜻한 색의 등이 달린 온기 있는 공간이어서 위안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빵과 커피, 간단한 과일 등으로 구성된 아침이 한국돈으로 약 2만원이라는 걸 알고 나니 손이 떨렸다. 코펜하겐의 물가는 한국의 거의 두 배였다.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지만 일일이 환산하다가는 못 다닐 것 같아서 둘째 날부터는 그냥 환율은 잊어버리기로 했다. 응 그냥 몇 크로네구나 이러고 다녔다.


숙소 외관, 지하철역, 숙소 옥상. (이상하게 실내를 찍은 사진은 없다)


여기까지 쓰면 코펜하겐이 좋지 않은 기억을 남겨준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묘하게도 나는 쓸쓸한 여행지를 좋아한다. 황량하고 어두운 곳은 항상 나의 흥미를 끌었다. 물론 코펜하겐이 쓸쓸하다고 해도 도시이고 한 나라의 수도인 만큼 결코 황량하고 어두운 곳은 아니었다. 도시 중심부는 아기자기하다고 부를 만한 분위기였다. 서유럽의 유명한 도시들에 비해 화려하지 않았지만, 단정하면서도 섬세한 느낌이었다. 녹슨 청동 지붕의 곡선 장식들과 소박한 네모 창들이 섞여 있었다. 관광객이 제일 많이 온다는 뉘하운은 알록달록 파스텔조의 색채였고, 뇌레브로 거리의 가게들과 건물들은 독특하고 귀여웠다.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니 심지어 햇살이 좋은 날도 생각보다는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기억에 남아있는 코펜하겐은 차갑고 쨍한 느낌의 도시였다. 겨울이 시작되려는 시기에 가서였는지도 모른다. 북유럽이라는 이름, 그 이름이 주는 이미지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에 가보지 않아서, 북유럽의 대표 나라가 덴마크가 된 것 같다. 위도로 따지면 큰 차이가 없는 스코틀랜드에는 백야가 없는데 덴마크에는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이유가 뭘까). 백야. 그거야말로 북구의 상징이니까.


코펜하겐에 살아보겠냐고 누가 묻는다면 사양하겠지만, 쓸쓸한 곳을 좋아하는 여행자에겐 매력적인 곳이었다. 찬바람 부는 거리를 걷다가 들어간 카페에서 마시는 따뜻한 커피는 한국에서보다 몇 배나 귀하게 다가왔다. 북유럽 나라들의 커피 소비량이 전 세계 1위라던데(한국보다 더 많다니!) 그 이유를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곳에서는 인간적 온기가 갖는 가치가 풍요로운 곳에서보다 훨씬 클 것이다.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40분 정도 정도 가면 험레벡(Humlebeak)이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여기에 루이지애나 미술관이라는 아름다운 미술관이 있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나는 미술관 자체보다는 바다를 향해 있는 정원과 미술관 가는 길의 소박한 동네 풍경이 더 인상적이었다. 하늘은 흐렸지만 공기는 맑았다. 비어있는 것 같은 한적한 풍경이었고, 바람과 비의 냄새가 났다.



언젠가 덴마크에 다시 간다면, 시골을 더 여행하고 싶다. 덴마크에 다시 갈 일이 있을까 싶긴 하지만. 다시 갈 것 같지 않아서인지 더 아련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차가운 북쪽 바다의 느낌이 나는 공기. 흐린 하늘. 따뜻한 빵과 커피의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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