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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hoes Dec 26. 2020

홋카이도, 시레토코 고코(知床五湖)

일본

(여행시기 : 2017.7)

여행 다녀온 후 같은 곳에 갔다 온 사람들의 여행기 읽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홋카이도 동부 지역은 여행기가 별로 없었다. 마치 동쪽으로 가지 못하게 결계(?)라도 쳐 놓은 듯, 도동 지방(홋카이도 동부를 이르는 이름) 여행기는 드물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취향이나 행동에 간섭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상당히 아쉬워서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왜! 도동 지방에 가지 않는거죠? (물론 다 이유가 있겠지만) 거기 홋카이도의 정수가 있는데!

하긴 나도 어떤 가이드북에서 이 지역의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도동 지방을 여행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호츠크해, 겐세이카엔, 아바시리, 시레토코 고코, 센모 본선, 구시로, 구시로 습원, 오비히로... 도동 지방의 모든 곳이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7월의 청명한 날씨와 맑은 공기로 여행은 무척 쾌적했다. 게다가 시차도 없으니. 저질체력의 나도 이때 유난히 기운이 솟아서 종일 걸어도 피곤한 줄을 몰랐다.

우리는 아바시리에서 시레토코 고코(시레토코 다섯 호수)를 보러 다시 동쪽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시레토코 샤리(知床斜里)에서 내린 다음 호수 지역까지 다시 버스를 타고 간다. 시레토코 샤리라는 이름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이것이 아이누어라는 걸 알았다. 시레토코 = 땅의 끝자락. 샤리 = 갈대가 자라는 곳.



호수 지역으로 들어가기 전 버스 정류장 안내소에 귀여운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포스터는 예뻤지만 시레토코 국립공원은 불곰이 사는 곳이라고 해서 좀 긴장했다. 우리가 갔던 7월에는 5개의 호수가 모두 개방되어 있었지만, 봄 가을은 불곰이 특히 많이 활동하는 계절이라서 1,2호만 개방한다고 한다.

산으로 들어가기 전에 '불곰 회피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사람의 침입이 불곰을 놀라게 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센터 교육자분이 말한다(정확히는 한국인을 위해서는 종이에 쓴 안내문을 나눠준다). 불곰이 사람을 공격하는 이미지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문득 깜짝 놀랐다. 그렇구나. 맞네. 여긴 불곰의 집이고 침입자는 인간인 것이다.

곰이 알아서 사람을 피하도록 호이 호이 소리를 내고 박수를 치면서 걸어가라고 한다. 우리 앞에 걸어가던 가족 중 꼬마들이 우리보다 더 열심히 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줘서 귀여웠다. 우리만 그랬던 건 아니었겠지만, 곰을 안만났으면 하는 마음이 70퍼센트, 만났으면 하는 마음이 30퍼센트였다. (만나진 않았다. 만약 곰을 만나면 더 이상 전진하지 말고 왔던 길로 돌아 나오라고 한다)

시레토코 고코는 평범한 내 표현 능력으로는 도저히 묘사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절대로 사진발이 아니다. 홋카이도의 자연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카메라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호수하면 어쩐지 넓고 광막한 곳만을 떠올렸는데, 이 신비한 호수들은 산속에 아기자기하게 숨어 있었다.



관광객들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이곳을 압도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연이었다. 그러나 미국 서부처럼 생명을 말살할 것 같은 위협적인 자연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처럼 오밀조밀한 자연도, 그렇다고 열대지방처럼 동물적인 힘에 넘치는 자연도 아니었다. 청량하고 싱싱하고 쨍한 느낌의 자연이었다.


7박 8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날짜여서, 후라노/비에이도 과감히 생략하고 삿포로에서 바로 아바시리로 이동했다. 후라노/비에이도 언젠가 가보면 좋겠지. 삿포로에 좀 살아보면 어떨까, T와 그런 이야기도 했다. 홋카이도는 모든 게 크고 넓어서, 홋카이도 대학의 광활한 캠퍼스를 걷다가 오타루까지 다녀온 날, 우리가 걸었던 총거리는 무려 15km였다.

홋카이도의 서늘한 매력에 대해서 우리는 그 후로도 종종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후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일본 불매운동이 벌어지면서, 또 아베 정권이 후쿠시마에서 나온 오염토를 전국에 버리고 농산물도 전국에 유통시킨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일본에 다시 가려는 생각을 버렸다. 홋카이도의 청정한 자연과 신선한 음식들, 평온한 그들의 삶을 망쳐놓은 사람들에 대해 분노해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언젠가 다시 도동 지방에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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