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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hoes Jul 20. 2022

우크라이나를 위하여

유럽여행

(여행시기 : 2022.7)


비엔나에서, 베네치아에서, 그리고 이탈리아 곳곳에서, 러-우 전쟁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다. 떠나기 전 들었던 영국발 소식 때문에, 지리적으로 거리가 있는 한국에서보다는 이 전쟁이 확실히 유럽 전역에 미치는 여파가 상당히 크다는 걸 실감한 터였다. 막상 가보니 떠나기 전에 생각했던 것만큼 확연히 드러나는 것은 없었지만(옆 나라에서 전쟁이 터져도 삶은 계속되는 것이니), 스쳐가는 여행자의 눈에도 공공장소에 걸린 반전 슬로건이나 건물 밖에 내건 우크라이나 국기가 종종 눈에 띄었다.


비엔나의 성 슈테판 성당에 걸린 반전 슬로건. 첨탑 옆에도 있었다.
곳곳에서 이렇게 우크라이나와의 연대를 표현하고 있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도 전쟁의 여파가 미쳤다. 자르디니의 러시아관이 전시가 없는 채 닫혀 있었다. 비엔날레 측에서 불허했나 싶어 검색해보니 러시아 큐레이터와 두 명의 작가가 자진해서 사임했다고 한다. 내가 러시아관에 가까이 가자 근처에 있던 경찰 두 명이 손으로 X자 표시를 하며 고개를 젓는다.


닫혀있던 베니스 비엔날레 러시아관


윔블던 테니스 대회를 비롯해서 유럽 곳곳에서 운동경기나 문화행사 등에 러시아의 참가를 금지하는 일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전쟁은 푸틴과 러시아 정부가 일으켰는데 개인들의 기회까지 막는 게 옳은 일인가 싶었지만, 그만큼 전쟁이 무섭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추리소설 같은 데서 얻은 얄팍한 지식에 의거하자면, 일단 전쟁이 나면 적성국의 국민들은 모두 적으로 취급된다.


그리고 ‘점잖은 전쟁’ 따위는 없다. 전쟁 소식을 일일이 찾아보진 않았지만, 잔인한 민간인 학살에 대한 기사들을 포털에서 몇 번 보았고(물론 애초에 민간이건 군인이건, 전쟁 자체가 미친 짓이지만), 중립국을 표방하던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려 한다는 뉴스를 한국을 떠나기 전 들었다.


유럽처럼 나라들이 다닥다닥 붙은, 넓지 않은 곳에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라는 악몽까지 있으니, 예민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유럽이 정말 작은 땅이라는 걸 이번에도 실감했다. 비엔나에서 베네치아까지 비행기로 1시간 10분밖에 밖에 걸리지 않았다. 비엔나로 돌아갈 때는 로마에서 비행기를 탔는데, 그 경우도 1시간 40분이면 도착하는 것이었다(비엔나 - 베네치아는 야간열차도 있었다. 너무 피곤할 것 같고 비행기 값이 워낙 싸서 비행기를 탔지만).


‘하나의 유럽’은 완전히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역사적, 문화적 근거를 갖고 있다는 걸 유럽에 돌아다니다 보면 느끼게 된다. 반면 ‘하나의 아시아’는 없다. 동남아시아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동북아시아는 그렇지 않나. 언어부터가 많이 다르다. 예전, 프랑스에 유학하고 있던 친구와 스페인을 여행했을 때 대충 말이 통하던, 그런 정도의 유사성이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항상 유럽을 기준으로 한 분류법이나 개념을 아시아에 적용시키고 있을까. 복잡한 생각이 단순한 진실을 덮어버리는 건 아닐까.


아침마다 미친 듯이 치솟는 달러화 환율을 보면서 미국에 송금할 일을 걱정하다가, 우리가 여행 갔을 때 유로화가 좀 내린 걸 확인하고 안도를 했다. 아직 세상이 흉흉한데 너무 서둘러 길을 떠났나 싶기도 했지만, 원하는 만큼의 태평성대가 오는 날은 어차피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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