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예컨대 5번 교향곡 아다지에토 악장에 나타나는 종장 형태...의 성격은 길게 잡아늘여지는 첫머리에서, 시간 진행을 정지시키고 음악을 억눌러 뒤돌아보게 만드는 머뭇거림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종지 모델들에 필수불가결한 요인들은 말러가 전반적으로 선호했던 하행 2도 진행이다...전체적으로 말러의 음악은 하강하는 성향을 보여준다. 말러의 음악은 체념한 듯, 음악 언어의 중력에 의해 흘러 내려가는 물매에 몸을 맡긴다. 그렇지만 그 물매는 말러가 표현의 영역으로 전유함으로써, 통상적인 조성적 연관 속에 있을 때는 결여되어 있었던 풍부한 표현의 농담으로 채색된다.”(테오도르 아도르노, <말러 - 음악적 인상학>, p.106-7)
https://youtu.be/D_JyDU1423Y
기분이 너무 가라앉기 때문에 할 일이 있을 때 들으면 안 되는 이 곡 -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 나는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한 이 버전을 무척 좋아한다.
비엔나와 베네치아. 두 도시는 묘하게 계속 만난다. 앞 글에서도 이야기했던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이 곡이 나오기 때문이다! (토마스 만의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소설가로 나오지만 비스콘티 감독이 음악가로 바꾸었다) 리도섬의 문 닫은 호텔, 그곳에 토마스 만이 있었고, 루키노 비스콘티가 있었고, 완벽한 타지오였던 비요른 안데르센이 있었다.
말러를 찾아 비엔나에 온 건 아니지만, 비엔나에서 말러를 들을 기회가 있다면 큰 기쁨이겠지? 하지만 여름엔 비엔나 필하모닉의 연주가 없다고 한다. 7월 말에 잘츠부르크에서 클래식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하는데 날짜가 안 맞고, 일부러 준비해서 거기 갈 정도로 음악팬은 아니다. 음악에 크게 조예가 있는 것도 아니고, 미술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이 사실. 하지만 음악의 도시 비엔나에 왔으니 작은 연주회라도 하나 참석할까 싶던 차에, 성 슈테판 성당에서 미니 콘서트를 한다길래 표를 샀다.
재밌는 건 레퍼토리가 비발디의 <사계>였다는 것. 또 이탈리아다! 기왕이면 오스트리아 음악가의 곡을 들었으면 했지만(비발디 이전에 바흐의 바이올린 콘체르토도 한 곡 연주했다), 연주 자체는 생각보다 무척 좋았고, 성당의 넓은 공간에 소리가 잘 울려 퍼졌다. 비록 두 번째로 저렴한 표라서 연주자들 모습이 잘 안보였지만 ㅎㅎ
이후 레오폴트 미술관에서 말러를, 그리고 그의 부인이었던 알마를 또 만났고, 말러가 예술감독으로 있었다던 오페라하우스의 야경을 보았다.
그러나 비엔나의 진정한 스타는 모차르트였다. 말러도, 쇤베르크도, 하이든도 아니었다. 어디에나 모차르트가 있었다. 쇤부른 궁전을 구경할 때 오디오 가이드에서 “이 방에서 여섯 살 난 모차르트가 처음으로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했습니다”란 설명이 나오자 나도 모르게 오오! 하고 감탄사가 나오더라. 성 슈테판 성당에 대한 가이드북의 설명에서도, “여기서 모차르트가 결혼했고, 여기서 그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라고 되어 있었다.
- 베니스라는 영어 이름 대신 베네치아라는 원래 이름을 불러주기로 했으니 비엔나도 빈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데, ‘빈’은 한국어로 의미가 있는 단어다 보니 쓰기가 좀 불편하네. 그나저나 난 여기 가기 전까진 비엔나의 줄임말이 빈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알파벳 자체가 다르더라. Vienna. Wien. 전자는 어쩐지 가벼워 보이는데 후자는 묵직해 보인다.